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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주 Aug 10. 2024

내리막길

2024.06.17. 월

<내리막길>    

 

새벽 

열린 창틈으로 들어온 바람

얇은 이불이라도 끌어안는다.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선들거려 긴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얼른 적응이 안 되는 남도의 풋내기.     

월요일 전철은 꾸벅이들이 가득하다.

휴일의 관성이 자꾸 끌어당기나 보다.

안산역 앞 호떡 할머니도 고개를 묻고 있다.

히잡 쓴 여인이 스쳐 지나가고

검은 캔을 왼손에 시가를 오른손에 든 중앙아시아 건달과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머리 희끗한 애 늙은이가 교차하는 모습을

편의점 계단에서 눈이 다 풀린 상 할아버지가 쌍화차에 올라간 노른자 먹듯 음미한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좁혀지지 않는 거리, 단아한 사서 선생님은 후문을 오른다.

아침부터 설설 끓는다.     

교무실 문에는 시험 기간이니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고 방이 붙었다.

아침에 자습하러 오는 아이들이 있어 서둘러 출근한다는 사서 샘은 커피를 내린다, 설거지를 한다고 바쁘다.

간식도 없는데 알아서 오는 아이들이라며.

저 양반 아무리 봐도 나와 같은 종이다.  

   

오지 않은 아이들 수소문하랴.

안 오신 선생님 수업 교체하랴.

적응하지 못한 아이, 위탁교육 보내야겠다고 문의하랴.

월요일은 다른 고민들이 넘쳐서 교무실이 터질 것 같다.     

반공일이 있었던 먼 그때가 생각난다.

이틀이나 쉬는 요즘이 얼마나 좋은데, 못하겠다고?

요즘은 일하고 힘들면 쉬는 것이 아니라 놀기 위해 산다.  

   

답답한 수연이.

아직 일차방정식 풀이가 환하게 밝아지지 않은 현민이.

더디지만 뒤로 가지는 않는다.

너무 느려서 하품이 날 뿐이다.

일차방정식의 계수에서 소수점을 떼는 일이 이렇게 어렵다니?

이해가 다 되지 않았으면서도 고개를 끄떡여 주고, 눈을 맞춰주는 천사들.

둠벙 막고 그냥 퍼낸다.

어쩌나 답이 맞으면 뒷걸음치다 쥐 밟는 소처럼 호박 벌어지는 웃는 이.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한 아이들이, 블랑코처럼 말하고.

생각지도 않은 단어에서 말이 막히고.

멀뚱멀뚱 천진하게 쳐다보는 눈빛이 맑지만, 너무 처량하다.

빨리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폭염에 버려진 사막의 선인장 같아 아프다.

왜 이렇게 또 이쁘게 생긴 거야.

아이돌 같은 얼굴은 한 학교에 한 명 보기 어렵다고 느꼈는데, 여기는 한 줄에 두 명이 넘는다.

이제 아주 검은 친구들도 간혹 보인다.     


3반. 왜 이렇게 분위기가 좋은 거야.

자는 아이 하나 없이 내 얼굴로 쏟아지는 눈빛에서 서늘함을 느낀다.

비록 문제를 푸는 손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지만.

칸의 후예가 아니라 칸이 될 것 같은 다니엘은 서너 과정을 암산으로 해결한다.

진도와 상관없이 따로 혼자 풀도록 한다.

세 시간을 연속으로 수업했더니 배가 고프다.

왜 이렇게 배가 고프냐고 했더니, “급식 맛있지요?” 한다.

내가 키가 크려는지 자꾸 배가 고프다 했더니, 모두 웃는다.

이 정도 코드인가?

어쩌면 나와 재미있게 놀아볼 수 있겠다.

비록 이번 주까지이지만.

잘하면 정해준 진도까지 끝낼 수도 있겠다.

2장의 학습지는 어렵더라도 최선을 다해 마쳐야겠다.

내리막길에 접어든 일정, 와 진짜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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