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주 Aug 10. 2024

해마다 달마다 날마다

2024.06.19. 수

     

60대에는 해마다 달라지고

70대에는 달마다 변하고

80대에는 날마다 차이가 난다는 마음의 은사님은

어제도 골프를 다녀오셨단다.

너도 곧 알게 될 것이라며, 같이 골프를 시작한 여덟 명 중 네 명만 걸어서 만나신다니, 나는 계절별로 달라지니 추월은 분명 아니다. 

휴대폰으로 날아든 안전 문자.

낮 온도가 34도까지 올라가니 야외활동을 삼가란다.

서서히 뜨거워지는 운동장 가, 태극기의 어깨가 축 늘어져 있다.

화단의 오골계들도 꽝꽝이 나무 아래에 모여 땅을 깊이 파고 몸을 묻고 있다.

나는 몸에 착 달라붙은 청바지를 입었고, 먹었던 음식도 못 내려가게 혁대로 단단히 졸라맸다.

짝이 되려면 윗옷은 배를 다 가리기도 어려운 얇은 라운드 티.

나도 시간도 딱딱 맞게 절도있게 흐른다.

좀 빨리 가면 누가 뭐라고 하나!    

 

자리 뒤 교감실에서는 기간제 교사 면접이 있다.

청운의 꿈을 품은 예비 선생님들이 수시로 드나든다.

듣고 싶지 않은데, 질문과 대답들이 설핏설핏 귀에 와 속삭인다.

야무진 계획과 오랜 기다림을 끝내고 싶은 소망들이 섞여 푸짐한 한 상을 차리고 있다.

먹을 사람 생각은 어떨지 모르지만, 그래도 일단 걸게 차려야지.

많은 상을 차렸고 대접도 받아 보았다.

난 그것이 별로 달갑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면접이 필요 없이 사정한 곳만 다니고 있다.

경기도는 내가 없으면 큰일 난다며 허세를 부리면서 말이다.

곧 백수가 되는데, 아직 사정하는 곳은 없다.

노는 것은 도저히 체질에 맞지 않은데, 큰일이다.

건강 잘 살피며 몽골로 떠나는 날만 기다려야겠다.   

  

시험출제 기간, 연구부장님.

제출된 시험 원안들을 빠짐없이 꼼꼼하게 점검한다.

글자의 크기, 통일된 양식, 적절한 질문, 공정한 답의 배분........

언제 끝나시려나.

예, 아, 오,.......

새내기 선생님의 한없는 대답.

“처음부터 출제를 잘할 수는 없어요. 처음에 잘 배워야 합니다. 오류가 발견되면 바로 저를 찾아오세요.”

철저한 선배에게 수용적인 후배는 눈물이 쏙 나오게 교육을 받고 있다.

배움이 일어나는 교무실, 참 보기 좋은 모습이다.   

   

하얗게 파 뿌리가 되었어도 1반은 진도가 조금씩 늦는다.

아이들의 다양한 풀이를 소개하고 격려하다 보니 속절없이 흘러간 시간이다.

찰진 아이들의 눈빛이 딱 달라붙은 인절미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 일차방정식이라도 제대로 끝마쳐 주어야지.

러시아 천사들은 어찌할거나, 약간 포기하는 눈치인데.

많이 많이 안타깝다.    

 

선생님들을 등지고 매 쉬는 시간마다 면벽하고 있는 까불이.

내 수업에 들어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특별반이다.

아직 한국말이 서툴러서 자기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한다는 이야기. 

담임 선생님의 엄한 꾸짖음.

왜 틈만 나면 다른 아이들을 놀리느냐고 다그치고 있다.

그 엄혹한 분위기 속에도 숙인 고개에서 멈추지 않고 굴리는 눈망울.

내 눈에는 보인다.

타고나기를 까불이로 태어났는데 어쩌란 말인가?

눈치는 있어 일단 죄인처럼 고개를 조아리지 만 속으로는 또 어떻게 놀릴까 궁리하고 있다.

앞으로의 그림이 쫙 그려진다.

아가, 죄만 짓지 말고 마음껏 뛰고 놀고 소리쳐라.

돈보스코께서 말씀하셨단다.

나의 따뜻한 눈빛을 느꼈던지, 복도에서 만나면 바로 고개를 직각으로 접는다.

문을 열어준다. 

요 녀석 어디 가서든지 절대 밥은 굶지 않겠다.

제 몫은 톡톡히 하고 살 놈이여.

미리 꺾이지만 말아다오.

작가의 이전글 사서 선생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