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상하잖아! 다시"가 아니라, 그래서 좋아.

드라마 <키스는 괜히 해서!> 리뷰는 아닙니다만 2

by 꿈마

"식상하잖아! 다시"

혼자 가슴앓이를 하던 남주인공 지혁이 드디어 다림이 유부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자신을 속인 것이 괘씸했지요. 9화에서 화가 안 풀린 지혁은 일부러 다림이 써온 초대장 문구를 계속 다시 써오라고 지시를 내립니다. 이유는 식상하다는 것이었지요.

신데렐라 스토리, 가난하고 힘들고 어려워도 밝은 캔디 같은 여주인공, 재벌이지만 아픔이 있고 순정적인 남주인공, 그 외에도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클리셰가 들어있는 드라마 <키스는 괜히 해서!>에서 이 대사가 나오다니요. 꽤나 아이러니하면서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클리셰란 인쇄 연판을 뜻하는 프랑스어 cliche에서 온 말로 드라마, 영화에서는 지겹고 예측 가능한 진부한 설정, 표현을 뜻합니다.

'뻔하다 뻔해.'

드라마 보면서 이런 생각 한 번쯤 안 해보셨나요? 식상하고 뻔한 내용,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리셰가 계속 쓰이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는 맛이 주는 익숙함과 편안함


먹는 이야기를 해볼까요? 가령 최현석 셰프가 요리해 주는 고급 레스토랑 요리, 진하고 중독성 강한 마라의 맛, 온갖 산해진미로 차려진 음식을 매일 매 끼니마다 바꿔가며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볼게요. 색다른 맛이 주는 쾌감에 도파민이 팡팡 터지겠지요. 하지만 계속된 자극 속에서 어느 날 문득 내가 아는 맛, 지극히 익숙한 맛이 한 번씩 생각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된장찌개 같은 뻔한 맛 말이에요. 뻔한 엄마의 집밥이 그리울 때가 있는 것처럼 기억 속에 아는 맛이 주는 익숙함과 편안한 느낌이 있지요.


누구에게나 통하는 이야기


'에이~ 그걸 누가 몰라?' 하는 생각이 드는 뻔한 말을 예로 들어볼게요.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 '힘든 것도 다 지나간다.' '사랑하며 살아라.'

이런 말들이요. 누구나 들어봤고, 누구나 알고 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쉬운 말속에 때로는 진리가 있습니다. 진리는 누구에게나 적용되지요. 그래서 다 아는 말이지만 누구에게나 통하는 이야기가 됩니다.


내 인생이 바로 클리셰


'꽃길만 걸으세요.'

이 말처럼 내 인생에 탄탄대로만 펼쳐진다면 어떨까요? 생각만으로도 매우 짜릿하겠지요? 하지만 그런 일은 거의 없습니다. 갖은 고생을 겪고, 장애물을 만나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게 우리의 삶입니다. 주인공에게는 늘 주어지는 고통이 있지요. 우리 모두는 크건 작건 제각각의 고통을 안고 삽니다. '왜 나만 이래?'라는 비극의 주인공 같은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삶의 클리셰입니다. 바로 삶이라는 인생 드라마가 만들어놓은 클리셰이지요.


그래서 클리셰로 가득한 <키스는 괜히 해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습니다.

어쩌면 이 드라마 속에,

어디서 본 것 같은 익숙한 데서 오는 편안함과,

나를 구원해 줄 누군가에 대한 판타지 같이,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누구에게나 통하는 이야기와,

나의 아픔과 별 다르지 않은 우리의 뻔한 인생이 녹아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한 마디로 <키스는 괜히 해서!>가 재미있는 이유를 이렇게 정리해 볼게요.

"식상하잖아! 그래서 좋아."


(물론.. 장기용 배우가 멋있다는 플러스알파의 이유도 있지요.. 있습니다. 네.. 있고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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