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트럭킹 13일차
Day 13
2025년 9월 11일, Chipata, Zambia - Kande Beach, Malawi
0. 아침 루틴
아프리카의 아침은 붉다. 오늘은 아직 깜깜한 새벽 5시에 일어났다. 간단히 양치와 세수를 하고, 백팩과 베개와 슬리핑백을 정리해서 란도에 실어둔다. 자리는 매일 돌아가면서 바뀐다. 매트리스를 란도 근처에 옮겨두고 텐트메이트 에밀리가 짐을 정리하는 동안 해가 뜨는 풍경을 가만히 바라본다. 아름다운 자연 안에서 잠들고 일어나는 행복을 만끽하고, 함께 텐트를 정리한다. 우유에 시리얼과 바나나를 넣어서 아침을 먹고, 짧은 시간 동안 전체 짐을 정리한다. 큰 짐을 란도에 올리고 식기와 식재료는 상자에 넣어서 보관한다. 화장실을 한 번 다녀오면 모두 자리에 앉아서 출발 준비. 선크림을 바르고 벌레 물린 자국 때문에 붉어진 피부에 연고도 바르고 란도에 앉아 조금 더 잔다. 멋들어진 비치 리조트 캠프사이트에 가는 날이다. 약간의 필수품 쇼핑과 화장실 브레이크를 포함하여 오후 4시경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한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도로 사정은 더 나빠진다. 마냥 행복했다가 죽도록 피곤했다가, 들쑥날쑥하던 몸과 마음이 차분해졌다. 새로운 풍경과 경험을 따라서 이제야 편안하게 흘러갈 준비가 된 것 같다.
1. 지루함의 반전
너-무 지겹다. 란도에서 내려서 텐트를 치고 주변을 둘러보고 와이파이를 찾고 간단한 저녁을 먹는 모든 행위는 아름답지만, 이동은 너-무 지겹다. 오늘은 웬일인지 오전 내내 아주 깊게 잠들었다가 화장실 브레이크로 차가 멈출 때마다 날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일어났다. 어젯밤 수면의 질이 좋지 않았나 봐. 그런데 아직 점심시간도 되지 않았다. 에밀리, 나 유투브가 그리워ㅎ
인터넷이 없는 곳을 여행한다는 건 때로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는 디지털 디톡스.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위한 환경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는데, 나는 지금 약간 숨이 막힌다. 쇼츠와 릴스가 필요해. 인스타그램 스토리와 쓰레드가 필요해. 우리는 그동안 알게 모르게 무엇에 중독되어 있었던 걸까. 디지털 디톡스가 너무 길어서 괴로운 날.
우연히(?) 좋아하는 작가님의 책을 발견했다. 이번 여행을 위해 12권의 전자책을 주문했고 그 중 몇 권을 선택해서 꾸준히 읽고 있었는데 오늘따라 조용한 시골 생활을 즐기는 미국 작가의 에세이가 맘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머지 책들도 그저 그래.. 책도 없고 인터넷도 없고 간식도 없는 시간을 한껏 죽이며 방황하다가, 다시 한번 책목록을 봤더니 놓친 책이 있었다(!) 표지가 너무 어두워서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산문집. 단어와 문장이 아름다워서 꼬박꼬박 챙겨보는 작가님의 파리 생활 산문집을 읽으며 다시 한번 회복되는 영혼, 오늘도 일희일비하는 평범한 하루.
2. Traditional dinner in a local home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한 곳을 여행한다는 건 마음이 매우 복잡해진다는 걸 뜻한다. 1 수단, 2 소말리아, 3 말라위. 란도를 타고 들어가는 길에 수많은 아이들이 손을 흔든다. 백인을 처음 보는 아이들(심지어 나는 백인도 아니지만 암튼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공책과 연필이 없어서 학교에 가지 못 하는 아이들. 마을 공동체를 꾸리고 있는 벤조의 집에 저녁식사를 하러 다녀왔다. 길가의 아이들은 내 손을 잡으며 내 이름을 묻고 자기 이름을 말하고 곧바로 자기를 도와줄 수 있는지 묻는다. 우리는 이 마을의 유일한 희망이다. 여행자들은 아이들에게 나눠 줄 공책과 연필을 샀고 기부금을 전달할 예정이며 워킹투어 등의 액티비티 비용도 마을 발전을 위해 쓰인다. 신발을 벗고 바닥에 앉아 말라위 전통 음식을 먹고 벤조와 아이들의 춤과 노래를 감상하고 자기소개 노래를 다같이 한 소절씩 불렀다. 내일은 마을을 둘러보는 워킹 투어가 예정되어 있다. 내가 뭐라고. 아이들은 우리를 신처럼 바라본다.
나는 이런 관계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부자 나라의 여행자가 가난한 나라에 가서 소소한 돈을 소비하고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은 어쩌면 비굴한 얼굴로 도움을 요청하고. 교육은 중요하니까 내가 쓰는 돈은 어떤 아이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하루 이틀 그저 스치고 가는 사람들을 보내고 난 후 아이들의 마음은 어떨까. 그 와중에 귀엽고 어린 아이들은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적당히 자란 아이들의 눈빛에서는 체념과 수치가 보인다. 한 아이의 손을 잡아주면 나머지 아이들의 실망은 어떡하지. 물론 딱히 대안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건 내가 원하는 소통이 아니다. 내가 뭐라고. 설명할 수 없지만 불편한 기분. 워킹 투어는 가지 않겠다.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마을 공동체를 바라볼 자신이 없다. 저녁 내내 입맛이 없었다.
3. 사람과 사람 사이
말라위 호수는 너무 크고 모래사장까지 있어서 희한하게 바다 같은 느낌이다. 코로나 전에는 스쿠버다이빙 프로그램도 있었다고 한다. 저녁 식사 후 강가 모래 위에 앉아 별을 본다. 마침 오후 5시부터 8시 넘어서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은하수를 둘러싼 별들의 아름다움, 조용히 하늘을 보고 싶지만 어쩌다 보니 O와 J의 사이에 앉게 되었다.
O가 물었다. 사후 세계를 믿어? 내가 믿고 있는 불교 철학에 대해 말해주었다. 생은 괴롭고 그건 욕심 때문이며 욕심을 내려놓으면 무(無)로 돌아갈 수 있다. 다시 태어나는 건 고통이니 아무 미련 없이 성불하고 싶다. 서로가 겪은 상처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렇게 훅 마음을 열어준 게 고맙고, 누군가에게 편안한 사람으로 보인다는 게 자랑스러운 밤이다.
J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이전 그룹에서 있었던 여러 갈등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J와 다른 무리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알고 있다) 그저 사람을 좋아하는 J, 그것이 너무 지나쳐서 늘 불안한 사람. 암튼 이전 그룹 멤버들의 행동은 끔찍할 정도였다. 농담 한 마디에 토라져서 대화 안 하기, 자기는 늙었다며(!) 정해진 일 아무것도 안 하기, 모두들 서로에게 날카롭고 예민한 3주였다고 한다. 다들 어떤 여행을 한 거지?
O와 J 모두 그룹 내에서 불안이 가장 높은 타입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경험을 통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사람들에게 마음이 가는 걸 어쩔 수 없는 나. 나도 누군가에게 진실하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거절당한 경험을 영혼 깊이 새겨두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누구나 필사적이다. 자기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사람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짝을 찾아서 몸집이 두 배가 되면 안심하고, 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을 원 안에 모아서 (대체 무엇을 위해?) 인기 있는 사람? 힘 있는 사람? 이 되고 싶어 한다. 나는 그저 한 발짝 떨어져 있다. 그들은 친구가 아니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적절한 예의를 차리면 된다. 그런 균형 안에서 O와 J가 나를 편안하게 느낀 것 같아서 다행이다. 내가 예전보다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확인 같은 것.
@ Kande Beach Resort Camping
Johannesburg to East Africa Overland Safari & Participation Camping (27d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