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트럭킹 25일차
Day 25
2025년 9월 23일, Serengeti National Park/Ngorongoro, Tanzania
1. 세렝게티 국립공원 2일차 feat. 응고롱고로
아주 조그마한 딕딕 두 마리와 얼룩말 무리를 만나면서 하루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어떤 동물을 봤는지 세세하게 기록하다가 너무 많아져서 관두었다. 그저 환상적인 자연의 축복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랍고 감사한 하루였다. 영양(사슴과), 표범, 멧돼지(품바) 등 수많은 동물들이 살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나라를 방문한 느낌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벌판을 바라보며 달리는 기분이 상쾌하다. 나무보다 키가 큰 기린과 얼룩말이 나란히 함께 서 있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백 마리가 넘을 것 같은 버팔로 무리들과 가볍게 달리며 노는 치타와 어슬렁거리며 걷는 하이에나, “꽤 멋지게 생긴 동물인데 왜 정이 안 가지?” “아무래도 거북목 때문 아닐까?” 라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드라이버가 “it's elephant time.“ 이라고 말하자마자 눈앞에 수십 마리의 코끼리가 나타났다. 매일 오전 같은 시간에 그곳을 지나가는 코끼리 무리라고 했다. 사파리 트럭이 그들의 진로를 막았는지 두 대의 차 사이로 지나가려는 코끼리들이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정말 코 앞에서 자동차 범퍼를 스치고 지나가는 코끼리와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조금 귀찮아하는 표정 같기도 하고. (인간이 미안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순간에 아주 작은 코끼리가 자동차 앞부분을 툭툭 치며 장난을 치고 지나갔다. 그저 경이로운 장면들뿐이었다. 얼룩말 무리들을 지나서 아프리카 트럭킹 27일 중 가장 가까이에서 기린을 만났다. 늘 먼 곳에서 바라만 봤었는데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나뭇잎을 뜯어먹는 혀와 독특한 무늬까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루나씨는 육지 동물 중에서 기린을 가장 좋아한다. 동물원 말고 진짜 자연에 사는 기린을 가까이에서 만나는 것. 오랜 소원이 이루어졌다. 어른(?) 코끼리가 아기 코끼리를 위해 나무를 부수는 장면까지, 어디에서도 상상해 본 적 없는 동물들의 생활을 원 없이 경험할 수 있었다.
풍경이 그린에서 브라운으로 바뀌는 순간 또 다른 설렘이 시작되었다. 사파리 트럭으로 하루 종일 달려도 계속 새로운 곳이다. 덤불 속에 느긋하게 앉아있던 치타와 그림 같이 줄지어 서 있는 기린들, 언덕 위에 우뚝 선 가젤의 모습. 사슴과의 동물은 정말 너무 많아서 아무도 더 이상 감탄하지 않는다. 여행을 하면서 오랫동안 바라던 것들이 당연한 일상이 되고 있었다. 특별한 순간들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순간, 언젠가 이 시간들을 열렬히 그리워하게 될 것이었다.
평화로운 풍경을 배경으로 먹은 점심이 참 맛있었다. 화려한 빛깔의 새들이 아름다웠다. 작은 노랑새가 겁도 없이 점심을 빼앗아 먹으려고 테이블 주변을 총총 걸어 다녔다. 화장실 때문에 들른 휴게소 같은 곳에는 핑크와 블루 색깔을 함께 가지고 있는 신비로운 도마뱀이 살고 있었다. 너무 힘들어서 그만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지만 어쨌든 하루 종일 이어지는 일정이었다. 놀라고 감사하고 행복해하는 데도 힘이 든다ㅋㅋ
오늘의 베스트는 당연히 코끼리와의 교감이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달리던 버팔로 무리와 코 앞까지 다가온 기린도 잊을 수 없어ㅠ
2. 가장 깊은 밤
가장 큰 만족은 한참을 함께 꺅꺅거린 후 혼자 마무리하는 고요한 시간에 온다. 아프리카 트럭킹 27일 통틀어 가장 추운 밤이었다. 다들 패딩을 준비해 왔다. 나만 아무것도 없지.. 맨투맨과 가을용 야상을 껴입고 담요를 덮고 자면 하룻밤쯤은 버틸 수 있다. 밖에 서서 대화를 시도할 경우 온몸이 덜덜 떨리는 날씨였다. 고도가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적당한 저녁식사에 곁들인 남아공산 레드와인이 근사한 밤이었다.
멋진 하루를 보낸 모두의 마음이 들떠 있었다. 하루를 끝내지 못하고 있는 여러 영혼들과 함께 술게임을 시작했다. 베스킨라빈스 31을 하고 제로까지 하려고 했지만 다들 31 게임에 푹 빠져서 다음 날까지 게임이 이어졌다. 술게임을 해 보면 꼭 천재가 1명 있는데 이번에는 영국인 D였다. 처음 하는 게임인데 어떻게 한 번을 안 틀리더라.. 다음 날에는 영어 대신 각 멤버의 모국어로 게임을 이어갔는데 루마니아어와 한국어에 당황하며 계속 지기만 하던 영어권 원어민들의 반응이 너무 웃겼다. 사소한 걸로도 행복해지는 밤들이었다.
텐트 가까이에 버팔로가 출몰하기도 한다는 심바 캠프 사이트. 오늘 밤에는 어디선가 얼룩말 무리가 나타나서 우리들의 밤을 축복해 주었다.
세렝게티, 가장 깊은 산 속, 가장 깊은 밤, 가장 깊은 영혼까지 안아줄 것 같은 곳에서 잠이 들었다.
@ Simba Campsite
Johannesburg to East Africa Overland Safari & Participation Camping (27d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