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시티 4일차
Day 4
2025년 10월 27일, 멕시코시티 4일차
1. 얼마만의 숙취인가
숙취다. 확실한 숙취다. 물론 피로가 겹쳤다. 오전 10시부터 자전거 타고 축제 기간의 교통체증에 시달리다가 새벽 2시까지 놀았으니.. 죽을 것 같다.
12시쯤 일어났는데 물이 없다ㅠ 전에 살던 호스텔에서는 정수를 제공해 주어서 좋았는데 여기는 작디 작은 생수를 비싸게 판다;; 게다가 재고도 없음. 씻지도 않고 눈썹만 슥슥 그린 후 떡진 머리를 하고 편의점에 다녀왔다. 온 세상이 슬로우 모션, 좀비처럼 어기적 어기적 걷는다. 근처에 세븐일레븐이 있길래 태국처럼 뭔가 먹을 게 있을 줄 알았는데 마땅치 않아서 생수와 라면만 샀다. 멕시코의 생수 뚜껑은 너무 가볍고 약해서 내가 빌런이라면 여기에 주사기를 찔러넣어 약을 탈 것 같다는 엉뚱한 상상을 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키친을 확인했어야 하는데... 뭔가 해 먹기 애매한 주방이지만 나는 이미 라면을 샀다. 음식을 더 사러 나가거나 외식할 기운은 없다. 멍한 상태로 라면을 끓였다. 그런데 호스텔 키친에 포크도 없어? 도미토리는 깔끔한 편이지만 화장실, 샤워실, 키친 등의 관리는 좀 소홀한 곳이었다. 다행히 혹시 몰라서 챙겨 온 나무젓가락이 있었다(!) 이건 보부상 베프로부터 배운 팁인데 이렇게나 유용할 줄이야! 역시 JD 박사님은 배울 점이 많은 분이라고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ㅋㅋ
2. 혼자 vs 함께
혼자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발걸음이 갑자기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혼자였는데, 누군가와 함께 있다가 썰렁해지는 느낌은 여행을 아무리 많이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멕시코에 도착하자마자 꾸준히 동행이 있었다. 그제에는 코리안걸 H와 한식당, 어제는 맙소사.. 오전 10시부터 바이크 투어, 저녁에는 El dia de los muertes 퍼레이드와 새벽의 살사바까지, 도저히 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스케줄이 아니었네ㅎ 그러다가 뭔가 혼자 하려니까 괜스레 쓸쓸해지는 기분. 티오테우아칸 방문은 누군가와 함께 가고 싶어서 큰 고민 없이 가이드 투어를 신청했다. 돈이 조금 더 들기는 하겠지만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다. 식비와 숙소비를 많이 절약할 수 있는 나라라서 예산에도 문제가 없을 듯하다.
이번 여행의 이슈는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할 것인가의 문제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지난 호스텔에서 만난 바바라 같은 사람만 있다면 너무 좋겠지만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나눈다는 건 예상할 수 없는 폭탄을 들고 있는 느낌이라서.
여행하다 만나게 되는 동행을 즐기지만 선 넘는 사람은 싫다. 그래서 함부로 동행을 요청하지 않는다. 그래도 동행 요청이 오면 거의 거절하지 않는 편이다(여성 한정). 한 번 정도는 어떤 스타일의 사람이라도 참을 만하니까(?) 하지만 묘하게 어색하고 불편한 사람들이 있다. 함께 하는 시간이 시작되면서 째깍째깍..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들고 있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대화를 이어가야 할 때, 너무 괴롭다. 그래서 인간은 항상 조심스럽다. 내가 너무 예민한 사람이라서.
예를 들어 오늘 도미토리에서 만난 멕시코 여성 A. 그녀는 혼자 식사를 하지 않는 타입의 사람이었고 우연히(!) 내가 그녀의 시야에 있었다. 그녀는 영어를 못 하고 루나씨는 스페인어를 못 하는데ㅠ 그러면 어색한 저녁 시간을 견뎌야 하는데@.@ 그녀는 누구든 상관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루나씨는 “같이 저녁 먹으러 갈래?” 라는 스페인어를 알아들어버렸다;; 이후 저녁 시간은 스페인어 B1 레벨 정도의 듣기 평가 시간이었고ㅠ 섬유질 섭취를 위해 선택한 샐러드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루나씨는 빨리 집에 가고 싶었을 뿐이고... 그녀는 그 이후에도 매우 자주 DM을 보내는데, 이런 인연은 좀 사양하고 싶다. 단둘이 식사를 함께 해야 한다면 적어도 그쪽이 영어를 잘하거나 이 쪽이 스페인어를 잘해야 할 것 같다. 후하.
3. 머리만 닿으면 잠드는 사람이 되는 게 꿈입니다
오늘 너무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은 날이라서 잠이 안 오나? 늦게 일어나고 낮잠도 잤으니 어쩔 수 없다. 우당탕탕 아프리카 트럭킹 27일 다이어리를 두 편 편집하고 나니까 자정이 넘는 시간이었다. 낮잠을 너무 많이 자기는 했어.. 내일 테오티우아칸 투어 예약해 놔서 새벽 6시 30분에 일어나야 하는데 보통 이렇게 일정이 있으면 불안해서 더 잠이 안 오는 타입이라 너무 괴롭다ㅠ
문득 오늘의 저녁 식사를 돌아보니 어서 빨리 스페인어 실력이 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유투브에서 미국드라마 프렌즈와 빅뱅이론으로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콘텐츠를 찾았다! 와우! 매일 해야지~* 더불어 자기 전에 스페인어 영상을 보면 잠이 잘 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ㅋㅋㅋㅋ 20분 정도 한 편의 콘텐츠만 겨우 시청하고 기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