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 타코와 츄러스

멕시코시티 7일차(마지막날)

by 여행하는 루나씨



Day 8



2025년 10월 30일, 멕시코시티 7일차



도미토리 생활의 꽃. 남이 설정한 알람에 나만 일어나기-ㅁ- 현재 시각 6:15am 알람 5회째인데 너는 왜 안 일어나냐.. 나쁜 쏴람.. 다음날에는 옆 침대 쓰던 사람이 곧바로 달려가서 그녀의 알람을 꺼 버렸다. 일어나지도 않을 거면서 왜 그렇게 일찍 알람을 맞춘 거냐.. 너 이 색히 진짜 나쁜 색히..



1. 브런치, 오믈렛이냐 쌀국수냐


오늘의 계획은 브런치를 먹고, 국립인류학박물관을 관람하고, 무려 SNS에서 알게 된 혜정을 만나는 것이다. 국립인류학박물관과 차풀테펙 공원 근처에서 맛집을 검색해 본다. 날씨가 으슬으슬한데(루나씨 기준 최적 기온은 섭씨 28-29도라서 동남아시아가 아니면 어디든 춥다) 쌀국수를 먹을까 아니면 우아하게 비싼 브런치를 먹을까 고민하다가, 센트로에서 이동해서 브런치를 먹고 국립인류학박물관을 방문하는 데 적절한 동선 안에 있는 브런치카페를 골랐다. 부지런히 움직였으면 박물관에 갈 수 있었을 텐데(못 감), 왠지 모르게 늘어지는 날이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지, 게으르게 아침을 시작한다. 구글 검색 후 당연히 메트로 환승이라 생각하고 움직였는데 중간에 한 번 버스로 갈아타야 해서 아침 먹으러 가는 길이 아주 복잡했다. 처음 겪는 환승이라 버스 표시인지 메트로 표시인지 전혀 알 수 없었고,,, 비슷한 색깔 메트로를 탔다가 엄한 데 다녀오기도 했다;; 그래서 안 그래도 게으른 아침인데 점점 더 시간이 밀리는 사태 발생. 겨우 도착한 브런치카페는 비싸고 평범한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르타도 한 잔으로 시작하는 아침이 꽤 맘에 드는 날.




2. 차풀테펙 공원에서 만난 서프라이즈


멕시코에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제대로 발음해 본 적 없는 차풀테펙. 글을 쓰다 보니 동네 공원 이름처럼 익숙해지는 게 신기하다. 원래 국립인류학박물관에 가야 하는 일정이었지만 한없이 게으른 몸과 마음으로 인해 시간이 점점 지체되었고 막상 박물관에 도착했을 때는 대기줄도 꽤 길더라. 그래서 그냥 여유 있게 차풀테펙 공원만 둘러보기로 했다. 산책 겸 넓게 돌아다닐 계획이었는데 입구 가까운 쪽에 다람쥐인지 청설모인지 귀요미들이 놀고 있었다! 정기적으로 먹이를 주는 사람이 있는지 다들 훈련된 강아지처럼 사람을 따랐다. 물론 강아지보다 적극적이어서 루나씨는 너무 무서웠어!!! 사진이나 영상을 찍으려고 가까이 다가가면 먹이를 주는 줄 알고 손을 향해 전진하기 때문에 귀엽다고 생각하는 마음과 무섭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왔다 갔다 혼란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귀여워! 찹찹 걸어가는 발걸음과 나무를 향해 호로록 날아가는 모습과 나뭇가지를 타는 여유로움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약속 시간이 가까워져서 바로 출발. 혼자 자전거를 타 보기로 했다.




3. 미슐랭 타코


차풀테펙에서 약속장소까지 가는 길은 멀고 자동차가 많았지만(!) 어렵거나 위험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만 중간에 한번 길을 잃었는데 일방통행 도로밖에 없어서 자전거를 끌었다가 탔다가 한참을 돌아야 했던 게 좀 힘들었을 뿐이다;; 약속시간 여유 있게 출발했다고 생각했는데 딱 맞춰서 도착. 혜정과 그녀의 동행 수진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고 혜정과 나는 계속 반말을 했기 때문에 함께 말을 터야 하는 수진의 동공지진..ㅋ 그녀와 루나씨의 나이 차이는 꽤 컸고(물론 혜정과도 만만치 않게 차이 난다), 루나씨는 나이 어린 사람이 편한 대로 해라, 수진은 나이 많은 사람이 편한대로 하는 게 맞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약간은 어색하게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ㅎ 놀랍게도 이후 플라야델카르멘에서 수진을 다시 만났는데 그때는 그냥 서로 높임말 하게 되었다는 결말. 루나씨는 진심으로 서로 반말도 괜찮은데 아무래도 나이가 어린 한국분들은 많이 어색해하는 것 같다. 야자 해도 되는 어른이 되는 게 꿈인데 다들 내 맘 같지 않아서ㅋ



여행을 많이 하긴 하는데 남들 하는 건 다 해야 한다, 라는 마음이 전혀 없는 루나씨는 꼭 가봐야 하는 관광지나 맛집을 매우 많이 놓치곤 하는데ㅋㅋ 혜정 덕분에 미슐랭 타코 맛집에 가 보게 되었다. 오픈런 달리는 한국인 여행자 3인! 오픈 시간이 지났는데도 열었는지 말았는지 애매한 분위기여서 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어찌어찌 주문을 했다. 꽤 여러 장소에서 타코를 먹어본 결과 살사가 다양하게 준비된 곳이 탁월한 맛집이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로스 파라도스는 먹어본 타코집 중에 가장 다채롭고 맛있는 살사를 제공하는 곳이었다. 어떤 건지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모든 살사가 숨겨진 고추 때문에 너무 매워서 다들 습습, 힘들어하며 타코를 즐겼다.




4. 우연히 찾은 츄러스 맛집


타코집 주변이 혜정과 수진의 숙소 근처인 것 같았는데 동네 분위기가 근사했다. 게으름과 귀차니즘으로 인해 그냥 센트로에 숙소 잡은 나, 반성해라 진짜.. 다들 열심히 검색해서 분위기 좋은 동네 잘 찾아가는 와중에 매번 애매하게 좋은 걸 놓치는 여행.. 그게 루나씨가 하는 여행의 정체성입니다만ㅋㅋ 대부분의 경우 마음이 복잡할 때 여행을 떠나는 편이라 여행 계획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종종 다른 여행자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그런 거도 있구나! 깨닫기도 하고 그들의 계획을 훔치기도 하고ㅎ 이후 여행이 길어지고 나서는 마음이 점점 더 편안해져서 여행 계획이 좀 더 촘촘해지기도 했다. 그런 거지, 부럽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있고 할 수 있는 때와 할 수 없는 때가 있는 법.



후식으로 디저트를 먹으려고 찾아간 첫 번째 가게는 이유 없이 문을 닫았지만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이 훌륭한 츄러스 맛집이었다.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츄러스 메뉴 종류도 다양하고 공원과 접해있는 야외 테이블도 멋졌다. 얼굴이 너무 타서 위험한 지경이었지만 햇살과 초록 아래에서 앉아있는 걸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날이었다. 혜정과 수진과 루나는 여행 얘기를 나누고 공원을 돌아본 후 저녁에 소칼로 광장 바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지만 다들 너무 피곤해져서 그날 또 만나지는 못 했다. 수진과 루나는 플라야델카르멘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고, 여행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간 혜정은 언젠가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5. 멕시코시티의 마지막 밤


멕시코시티는 1주일도 모자라다는 많은 사람들의 평가에 동의한다. 다른 수도처럼 매우 복잡하고 북적이지만 멕시코시티에는 왠지 모르게 오래도록 머물고 싶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7박 8일 동안 타코는 세 번, 한식은 두 번이나 먹었다. 멕시코시티가 그렇게 한식당으로 유명하다더라ㅎ 러닝은 한 번밖에 못 했고, 여유 있게 여행 다이어리를 많이 썼다. 소칼로 광장, 벨라스 아르테스, 차풀테펙 모두 아름다웠고 차 없는 날 자전거 투어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죽은 자의 날을 둘러싼 축제 분위기에 푹 빠져들었고 테오티우아칸 투어는 힘들었지만 피라미드에 올라가서 바라본 테오티우아칸은 장엄하고 신비로웠다. 미슐랭 타코와 맛있는 츄러스의 추억을 남겼지만 똘란똥고와 국립인류학박물관은 못 갔다. 가장 중요한 곳에는 못 가는 게 루나씨 여행의 정체성이 맞는 것 같다ㅋㅋ (인도 타지마할, 파리 루브르 못 간 역사..) 3월 말,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멕시코시티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다시 돌아올 수 있으니까 괜찮..은 걸로ㅎ 그런데 왜 루나씨는 멕시코시티 왕복으로 비행기표를 샀을까.. 이쏴람아.. 아마 라틴아메리카 여행은 콜롬비아나 쿠바에서 끝나게 될 것 같은데 다시 멕시코로 돌아와야 한다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결정인가.. In-Out 다르게 비행기 예매하는 건 생각하지도 않은 허술함.. 하하하 그렇게 여행이 흘러간다. (다른 나라에서 멕시코시티로 돌아가는 비행기표가 너무 비싸지 않기를 바랄 뿐)


오늘 밤에는 커리어 고민이 깊다. 문득 주식 계좌도 열어보고 언제까지 여행할 수 있을까 머리를 굴려보고 정말 해외취업 하고 싶은 건가 스스로에게 되물어본다. 몇 시간째 생각에 잠겨있다가 자려고 하니 머릿속이 부산스러웠다. 대체 왜 갑자기 불안이 밀려왔지??? 아, 한국 사람들을 만나고 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국=현실 자아가 자연스럽게 발현된 것. 이럴 때는 이전 직장 꿈을 꾸기도 한다. 무의식이 이렇게나 솔직하고 날카롭다. 질문의 답을 찾았고 그것을 내뱉어 적었으니까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잠을 청해 보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