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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서 찾은 것

행복이라는 교과서가 거기 있지 않을까

by 노사임당

어반스케치를 배우고부터였다. 책상에 앉아 나누어준 프린트물로 그림을 그리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내가 기린 기린 그림을 상상하기도 했다. 현장에 앉아 골목과 대화를 나누며 때로는 지나가는 동네 주민까지 모아놓고 수다 한바탕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내가 손 내밀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나 이외의 것에게 최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중이다.


집을 편하지 않게 생각한 지는 5년이 되어간다. 2019년 12월부터다. 윗집의 이사와 그로부터 시작된 너무도 많은 일로 집은 홈스위트홈과는 가장 먼 곳이 되었고 세상은 정말로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깨닫는 하루들을 보내면서였다.


그렇게 골목을 돌고 사진을 찍으며 걷다 보면 모든 것이 평화로워 보인다. 무슨 수를 써도 이해하지 못할 그들만의 스토리가 있을 텐데도 나는 그 속을 볼 수 없다는 방관자, 관조자의 지위(?)를 이용해 그들의 이야기를 마음대로 만들어내었다.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빛과 나른하게 길을 걷는 길 개와, 한가한 오후를 보내는 들풀의 더없이 자연스러운 율동에 나는 평화만을 보기로 하였다.


아들의 가출, 자식의 이혼, 누군가의 병환으로 그늘진 모습 따위는 알 길 없다는 이유로 행복한 풍경으로써만 존재를 보았다. 칼 라르손의 그림을 보며 그의 불행이나 슬픔은 건너뛰고 그림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찰나의 기쁨이나 행복을 기꺼이 붙잡는 식으로 말이다. 내가 보고 싶은 모습을 보며 나는 내가 찾는 것을 잠깐이라도 보았다고 외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눈이 부시게 푸름을 자랑하는 하늘색 지붕 아래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시멘트벽들, 수없이 지고 피었을 꽃들과 살아남기 위한 애썼음에도 구태여 그 사실을 드러내지 않는 풍경에서 나는 모든 것이 그대로 있다 위안받고 싶었다. 세상 어딘가에는 평화가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싶었다. 집이란 이렇듯 고요할 수 있음을 증명받고만 싶었다.


재워놓은 아이가 깰까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될 때의 미소를 되찾고 싶었다. 새벽 2시부터 시작하는 빨래도, 5시부터 시작하는 발망치도 없는, 귀를 멍하게 만들 고요를, 언젠간 찾을 고요라는 무소음과 무진동의 예시를 찾고 싶었다. 골목 속에서는 존재하는 그것을 말이다. 손을 내밀면 닿는 갈색 벽돌집과 세 번째 시멘트색 밑으로 노랗고 초록인 색을 들키고 만 집에 있지 않냐고. 안전과 안정과 편안과 평화의 표본이 있지 않느냐 외치고 싶었다.


진부한 표현임은 인정한다. 그럼에도 진주조개가 아픔을 이겨내는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아름다움'으로만 결론 내리는 것은 잔인해 보인다. 내 안의 고통을 그림으로, 글로 바꾼 것에 대해서. 물성이 다른 것들끼리 물물교환은 해놓았지만 바랐던 적이 있긴 했나. 가끔은 글도 그림도 없이 살았던 조금은 무료하고 가끔은 무기력하고 때로는 우울하기도 했던 날들을 상상한다. 그럼에도 수없이 많은 사소하고 쉽게 웃을 수 있었던 날들을. 아주 보통의 행복했던 날들을.


골목을 걷는다. 박제된 행복을 보려 나선다. 오늘의 행복을 찾는다. 구질구질한 짐들이 정리되지 않은 모습은 정겹다는 말로 치환되기도 하는, 오래된 것들은 추억을 건드린다는 말로 미화에 열을 올리는지는 몰라도 그저 골목이 주는 고요가 좋다. 태풍이 몰아치고 천둥이 우짖는 날에 찾아 나선 골목이 없으니 나는 좋은 날 좋은 시간에 골목으로 나선 길이다. 그러니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 속 집들은 누구의 집이랄 것도 없이 '흐르는 강물처럼'의 한 장면처럼 윤색된 채 저장된다. 눈이 부시고 행복해 보인다. 폴이 플라잉낚시를 하는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노먼처럼. 질투가 나면서도 눈을 뗄 수 없다.


더없이 조용할 시간이다. 가족이 생활 전선으로 떠난 때, 낮잠이라도 자듯 아기 얼굴을 한 집들을 보러 몸을 세운다. 내 집에서는 사라졌지만 어딘가에는 있는, 집이 가진 쉼을 보여주는 곳을 보려 한다. 오히려 너무도 한결같아 지루함마저 묻어나는 곳이라면 더 좋다. 오래전에는 골목마저 소란스러웠던 동네로. 지금은 읍이니 면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망경동(망...으로 시작하는 동네의 느낌적인 느낌)이라는 이름이 주는 기록을 곳곳에 저장 중인 곳으로 향한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네가 가졌다면 훔쳐보는 것 정도는 허락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내가 언젠간 갖고 싶은 걸 당신은 가졌으니 나의 이상향을 그리는 데 도움을 좀 구하는 마음이다. 사람에게 시달리지 않는 상태로, 집에서 게으르고 늘어지고 지루할 수 있는 권리를 찾고 싶다. 아무도 없는 골목을 걸으며 나는 오늘도 골목을 그린다. 골목을 닮아가는 그림을 본다.

거의 형광색 물결입니다. ^^

골목이 화려합니다. 색감 봐~ 와우.

으렁 으렁~~

의령을 그리고 있습니다. 11월 전시가 있어요. 도서관. 좋아하는 의령 도서관에서요. 그만 그려도 괜찮겠고 욕심을 내어도 좋겠습니다만 아직 의령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다른 곳 그림을 시작할 수가 없네요. 천천히 의령 골목 더 그려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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