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본다
기다리고 있다. 일들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눈 뜬 채 멍한 상태다.
읽고 싶었던 책을 읽고
자고 싶은 만큼 잠을 자고
미루고 싶은 만큼 살림도 미룰 수 있다.
옵션으로 방통대 수업과 과제, 시험까지 모른 척해도 된다. 기다리는 동안 말이다.
하지만, 내가 기다리고 있는 무언가는 보챈다고 와주지도, 소원을 빈다고 더 빠르게 오지도 않는다.
내가 기다리는 건 그런 거다. 기다린다는 건 그런 거다.
그 무언가를 기다리게 된 건 내 의지가 아니다. 아마 만날 거라고, 언젠간 만날 거라는 예상을 하며 사는 사람은 '없다'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니 로또(사면서 될 거라고 생각하기 어려우니 비슷한 건가?)와는 다르지.
느닷없지만 익숙한 형태로 만났다. 그건 과식. 그래 과식했지. 추석 때도 그랬고 여행을 가서도 잘 먹었고 주말에 있던 조카 결혼식, 오랜만에 만난 온갖 남이 차려놓은 음식 앞에 정신을 놓았다. 그래, 뷔페에서 꽃 피웠지. 그걸 일주일 안에 다 했다. 그러한 과정을 밟는 동안 좁은 속을 가진 내 내장 어딘가는 허리띠를 찢으며 포기를 선언한 것 같다. 할 만큼 했다! 그만 먹어라 돼지야! 를 외치면서.
그러잖아도 약국에 가야지. 동네 약국 말고 어디 나를 모르는 곳에 한 번 가야지. 벼르고 있었다. 뭘 묻나, 임신테스트기지. 그걸 사려고 했지. 아닐 것이 뻔한데도. 불러오는 배 모양도 심상찮고 구역질도 나고 말이지. 셋째가 들어선 것 같다며 혼자 망상을 했는데. 뭔가 들긴 들었다. 임신테스트기에 나오지 않았을 무언가.
흠, 돌을 뱄다.
지금 내 옆구리에 있는 돌무리는 묵직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어? 괜찮은데? 숙제도 하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려볼까? 그러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신호가 온다. 약효가 떨어졌다는 신호가. 참 단순하지. 몸이 좀 나은 것 같다는 기분에 움직여보려다 또 슬그머니 소파에 기대 눕니다. 약 먹을 시간이다.
체한 것 같아 굶었다. 주말 동안 찾아오는 진통을 맨정신으로 맞으며 보냈다. 애가 나올 것 같은데... 주기가 짧아지는데, 길어지는데 하면서 말이다. 응급실 가자는 남편에게 가서 뭐 하냐, 진통제밖에 더 주겠냐며 합법적으로(?) 집만 넘겼다.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애들도 건사하라며. 통증으로 인상을 쓰며 얕은 숨을 몰아쉬면서도 밥 안 하는 게 왜 그렇게 좋던지. 웃겼다. 엄살인거지. 하려면 못 할 게 있나. 펴지지 않는 허리는 조금만 접고 설거지 하면 되지 까짓거.
휴학해야지. 버겁다. 일을 너무 많이 벌였어. 4주 진단서?(학기 중 휴학 요건) 그게 되나? 배가 4주간 계속 아플 거니까 되지 않을까?(결론적으로, 안된다) 휴학하자. 힘들다. 월요일까지 내야 하는 과제는 물론 포기. 목요일까지 추가 제출도 불가능했다. 4.4학점으로 이어오던 내 학점...이렇게 끝인가요? 아!
주말을 보내고 병원에 가 오랜만에 종합 건강검진급 검사를 받았다.
오른쪽 배와 허리가 아프다, 밥을 먹으면 더 아프다. 그래서 굶었다. 그랬더니 조금 낫더라. 구토감이 있다. 약국에 진통제를 사러 갔더니 요로결석 가능성을 얘기하더라, 20년 전에 겪은 적이 있다. 그래서 익숙한 통증이라 주말을 참을 수 있었다. 주저리주저리 간단하게(?) 상태를 말했다. 그렇게 나온 결론은 오른쪽 옆구리 근처 통증은 신우신염(결석이 신장을 긁고 자극해 염증이 생긴 상태)이고 원인은 결석.
구토감과 먹은 후 통증은 소화기계통 문제 같아서 검사를 하니 쓸개주머니를 싸고 자갈이, 토성을 감싼 돌멩이들처럼 내 쓸개를 셀 수도 없이 많은 자갈이 호위하고 있는 형상. 소화를 돕는 쓸개가 돌 공격을 받고 있으니 제 일을 할 수가 있었겠나. 남편만 쓸개 빠진 놈이었는데 한 집에 쓸개 빠진 인류가 두 명이 될(선생님은 강력 권고) 가능성이 생겼다. 이젠 놀릴 수도 없네. 쩝. 수술하면 그게 좀 아쉬울 것 같다.
기타적으로 간에 (양성) 종양이 있고 또, 다 알아듣지도 못하겠다. 일단 배만 좀 아프지 않게.. 굽신굽신.
지금 일주일째 약을 먹는 중이고 다음 주까지 더 먹긴 할 것 같다. 지난번에 먹은 약으로 혈뇨(신장을 돌이 긁어서 피와 염증이 배출)는 멈췄는데 염증 수치가 나아지지 않았다. 신장에 있는 돌은 요로까지 나와야 파석쇄술을 할 수 있다. 신장에 직접 할 경우 신장을 망가뜨리니 그렇단다. 작고 이쁠 내 돌은 5밀리라서 자연 배출이 안 되는 크기란다. 4 미리미만일 경우 4미리인 요도를 따라 몸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내 것은 참 어중간하다. 몸집을 좀 키웠구먼.
어쨌든 기다리는 중이다. 약으로 잡히지 않는 통증을. 요로를 막으려. 신장을 나와 골목을 접수할 돌을 당당히 맞고 싶지만 실은 똥 마려운 개처럼 안절부절 중이다. 이게 언제 나올 줄 알아서....
나는 아주 조금 아픈 상태고, 나는 지금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친구들은 해외여행 많이 가는데 불평도 없이 잘 지낸 둘째에게 초등학교 들어가고 처음으로 해외여행(해외긴 해외...) 대마도 갔다왔습니다. 1박 2일. 어머, 좋던데요. 가까운데 일본 느낌도 나고 깨끗하고 말입니다.
일본 전봇대 찍어주고.
일본에 가서도 낡은집만 찍고 있었습니다.
귀여운 둘째. 보이는 건물은 매표소인데 귀엽지 않나요?
깜..찍한 첫째 뒤태. 여기까지는 학교 들어가고 처음 가는 둘째의 해외여행(대마도)
오른쪽은 보수동 책방골목 사진
여기까지는 부산 보수동 인근. 어딜가나 골목 사진만 찍네요.ㅎㅎ
친정집. 오르막 첫 집이라 이 정도면 옛날 살던 집에 비해 평지집입니다.
여기는 친정 옆집들
방통대 휴학도 못하고 멍..한 상태입니다. 어째야 되나. 이번 학기 모르겠다하고 아무것도 하지 말까요? 그럼 어떻게 되지???
다음 달 의령도서관에서 하는 개인전은 예정대로 진행합니다. 그려놓은 그림으로 충분~. 그런데 그 이외는 다 엉망. 아~ 일을 너무 많이 벌였어. 어떻게든 무엇이든 억지로 할 수는 있지만 겨우 요만한 '일'에 모든 일들이 멈춤. 그럼에도 무언가를 할 힘은 평소의 성실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다 열심히 살던 저는 이렇게 무너집니다. ㅡ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