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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 관리자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by 노사임당

연락이 왔다.



나도 예상했던 거다. 아니 이번에는 왜 이리 연락이 늦을까 걱정 아닌 걱정을 하는 중이었다. 나를 잊었나. 많은 사람과 연락을 주고받는 존재이니 나 하나쯤 건너뛰어도 상관없어서인가. 별별 생각까지는 아니라도 몇 가지 생각은 떠올랐다.


글을 발행하는 것은 근육과 같다는 내 글 근육 관리자의 문자가 왔다. 이런 관리자는 나처럼 규칙과 계획과 흐름을 생각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즉흥적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무척이나 필요하면서도 귀찮은 존재다. 그래, 필요하다는 점에 방점을 찍어야 하지만 채근하는 문자 자체는 리 반갑지 않다.



우선순위에서 꽤 밀렸다. 먼저 의령 전시에 쓸 그림을 그렸다. 먼저(신장 결석 때문에) 병원을 갔고. 동화책 제작 수업을 수강 중이니 거기에 들어갈 그림을 먼저 마무리했다. 방통대 중간 과제도 어쨌든 제출했다. 피곤하니 먼저 자는 게 좋겠다는 판단도 자주 했음이다. 기타 등등 여러 일들에서 글은 가장 앞 순위를 내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를 미루고 이틀을 보내고 사흘을 넘기다 보니 떠오르는 감정이 있었다.


글을 쓰면서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변화를 나 또한 겪었다.


잔 속의 태풍처럼 나 자신만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파괴의 감정들이 어느 순간 글이라는 전선을 통해 외부로 유출되기 시작했다. 속 태풍은 휘몰아치는 동력으로 더욱 많은 것들을 뒤섞고 성질을 변화시켰고 엉뚱한 곳에 내동댕이쳐대었다. 태풍이 머무는 자리인 나는 나다움, 상대에 대한 배려, 사회생활 자체가 힘들었다. 곤란을 겪곤 했다. 책을 읽으면서 눈이 지나간 자리를 뇌가 인식하지 못해 문장이 이해되지 않듯, 사람을 앞에 두고 그가 하는 말이 이해되지 않곤 했다.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무리에 섞이지 못하기도 했다. 내 속의 소용돌이가 그저 조용히 지나가길 바라는 수밖에 없던 수동적이고 겁먹은 채였다. 그런 태풍이 어딘가로 힘을 빼자 시작되었다. 수해복구처럼, 굴착기로 잔해를 걷고 무너진 건물을 세우듯 내 속에서도 무언가가 움직였다.


제자리를 본 적도 없던 감정들이 제 자리를 찾는 모습, 그 질서 정연한 모습이 편안하게 보였다. 잠깐 잃어버렸던 애착 베개를 찾은 것 같은 기분이랄까. 글로 쏟아내고 뱉어내지 않으면 잠들지 못하던 날들이 먼일처럼 느껴진다. 글로 퇴마를 하듯 짧고도 굵게 빠져있었다. 그렇게 글에 매달리고 붙잡으며 뒷발로 떨쳐내려 했던 태풍이 일본으로 비껴가고 있다. 나에게 오지 않으니 피해도 없이.


글을 가끔 쓰지 않는다. 이러다 겨우 붙은 노가다 근육(이쁜 근육이 아닌 습관이 만들어 낸 생활 근육 모양의 글 근육)마저 사라지면 어쩌지. 걱정도 아니 되지 않았다. 불안이 아예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리라. 그럼에도 내 마음속 평화를 무엇으로 표현할까. (글로...)


태풍의 진로를 바꾸기 위한 글쓰기만을 할 뿐이었다. 그것이 좋고 나쁘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출판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얘기를 해주겠다던 어느 작가의 책에서다. 그 속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대단한 문호처럼 명문을 쓸 수도 없고 그런 재능도 없다. 겸손을 떨기 위한 말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다. 내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확신하니까.

글은 재능이 있는 사람만 써야 하는 게 아니다. 물론 재능이 있는 사람이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와 지식을 줄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재능은 없지만 할 말이 있다면. 어떤 분야에서 나름대로 성공을 경험했다면 그 영역에 있어서는 누군가에게 할 말이 많을 테다. 그걸 나만 알기보단 알리고 싶다는 욕구가 점점 커질 테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글을 쓰고 싶다.'

그러한 용도로 글을 쓴다는 건 대단한 명문일 필요도, 재능으로 빚어낸 아름다운 단어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니 필요한 사람에게 유용한 책을 쓰는데 망설이지 마라... 는 식으로 나는 받아들였다. (실은 어떻게 하면 읽히는 책을 쓸 것인가에 관한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름다움으로 무장한 글로 공감을, 영감을 준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 하지만, 그러한 글이 아니더라도 글쓰기를 사랑한다면, 쓴다는 일에 끌림을 느낀다면 감정을 건드리는 글뿐 아니라 뇌를 건드리는 글도 해봄 직하지 않겠나. 그렇게 글이 확장된다면 어떨까. 모든 주제와 목적이 '내 마음속 평화'에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나눌 수 있는 글'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런 의도라면, 그림에 재능도 없던 내가 어떻게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내 마음속에 행복한 기분이 얼마만큼 물감처럼 퍼져나가는지, 재능이라는 게 그림을 그리는데 얼마나 무용했는지, 즐거움과 잘하려는 마음이 얼마나 서로를 견제하는지 같은 걸 말할 수 있으리라. (소소하게는 무슨 붓과 어떤 종이가 당신의 재능템이 되는지도 말이다.)


마음이 잔잔하다. 스트레스도 없다. 물론 해야 할 일은 많은데 갑자기 몸이 아픈 바람에 몇 가지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 마무리 지으려 한다. 글이 준 나의 성장이다. 글이 준 선물이 변화시킨 일상이다.


받은 선물을 잘 사용하고 있다. 더 이상 진열대에 세워진 멋진 물건에 슬퍼하지 않는다. 내가 가졌으니까. 더 이상 내 마음을 흔들지도 않으니 다른 극처럼 끌리던 마음도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으로 변환되었다. 이대로 글을 잃어버리는 건 아닐지 생각할 만큼 말이다. 그래서 멈추어 서 있다. 내가 쓰던 글을 얻기 위해 태풍을 부르는 길로는 가지 않을 걸 아니까. 내가 얻은 선물로 만들어낸 나의 작은 세상을 소개하는 건 어떨까.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곳을 본다. 가보지 않은 길도 갈 용기가 생겼을까.


망설이는 건, 아직 누구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아버님 팔순이라 삼천포 식당에 갔습니다. 밥을 먹고 나와 잠시 골목을 순찰했네요. 시간을 30분만 줬으면 골목을 좀 돌았을텐데.. 조금 아쉬웠습니다^^벌리길.

진주에 있는 헌책방, 소소책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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