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이요~
소설 ‘완득이’는 숨어있기 좋은 장소로 고르기라도 한 것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학교에 다니는 고등학교 1학년, 도 완득의 성장 소설이다. 그에게는 성인이지만 작은 키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친형처럼 따르는 지적 장애인 (가짜 삼촌) 남 민구가 있다. 그들은 학교와 가까운 달동네 옥탑방에 산다.
특별한 일 없던 완득이에게 커다란 시련이 닥쳤으니, 그건 담임 똥주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개인사를 공개적으로 떠들며 평온한 세계를 뒤흔든다. 수급 대상자로 만들더니 수급품을 챙겨준다며 웃음거리로 만들기까지 한다. 적당히 담쌓고 공부도 친구도 멀리하며 지내던 생활이 똥주의 굴착기 식 담벼락 부수기로 사람들 앞에 드러난 꼴이다. 그런 똥주만 없다면 다시 나만의 세상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완득이는 똥주가 다니는 교회에서 기도한다.
“하느님, 제발 똥주 좀 죽여주세요”
지금껏 없던 캐릭터다. 담임은 완득이의 모든 걸 알고 있고 알고 싶어한다. 간섭에 폭력까지, ‘하느님은 뭐 하나 몰라.’ 저런 사람 안 데려가고. 하다 하다 어느 날은 존재한 적도 없던 엄마까지 데려온다. 게다가 베트남 사람이다. 완득이에게도 남들처럼 엄마가 있었다니, 작은 세상에 충격적인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똥주 죽여달라고 다니던 교회에서 핫산을 만난다. 완득이는 핫산과 킥복싱 장에 가게 되고 폭력을 위한 주먹질이 아닌, 운동을 위한 주먹질을 배우게 된다. 아버지 흉보는 이에게 쓰던 주먹이 아닌, 목적을 가진 운동이 되고 보니 왠지 몽글한 기분이다. 희망인 걸까. 게다가 공부 잘하는 정윤하는 왜 자꾸 눈앞에 나타나는지 똥주 때문에 자꾸 이상한 일만 생긴다. 하지만 이런 균열도 이상한 일도 영 싫지만은 않다.
카바레가 업종을 바꾼다며 쫒겨난 아버지는 지하철에서 물건을 팔려 하지만 그것마저 텃새로 중단된다. 오일장에 가겠다며 집을 나간 아버지와 삼촌, 그 사이 엄마가 반찬을 챙겨주려 오기 시작한다.
그저 학생에게 욕이나 하는 무개념 오지랖 아저씨 담임은 실은 외국인 노동자를 막 대하는 친아버지를 고발하는 개념남이었다. 교회마저 담임이 자신의 돈으로 산 건물이며 외국인 보호소 역할을 하는 장소였다. 알아갈수록 영 나쁜 사람이지만은 않아 보이는 완득이는 조금씩 똥주에게 마음을 연다.
어머니가 집에 온다던 어느 날 때마침 아버지가 며칠 만에 왔고 완득이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서로를 위해서, 완득이를 위해서 떨어져야 했던 가족의 이야기였다.
킥복싱 대회 날 엄마의 반대로 정윤하는 오지 못했고 완득이 아버지는 담임의 도움으로 댄스 교습소를 열었고 어머니는 챙기고 싶은 사람을 위해 일자리를 바꾼다. 매일 보던 교회도, 숨어있기 좋았던 달동네도 왠지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가난한 환경, 베트남 출신 어머니, 장애가 있는 아버지. 섞이지 못하는 학교라는 사회까지, 완득이를 둘러싼 환경이다. 자포자기하기 좋은 환경이자, 비뚤어지기 쉬운 조건이다. 이런 환경에서 완득이는 세상 너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질 것인가. 세상의 중심으로 걸어갈 것인가.
성장 소설의 개념을 어디부터 어디까지라고 딱 잘라 말할 순 없다. 그럼에도 소설 완득이는 세상과 분리된 섬이었던 자아와 타인의 연결을 성장소설의 형식으로 보여준다. 자아의 확장을 여러 매개를 통하여, 방황과 저항의 모습으로 진행한다.
완득이에게 싸움이란 이기기 위해 하는 것, 예의니 규칙이니 하는 것과 먼 주먹질이었다. 그런 완득이에서 지기 위해 링에 오른다는 것, 지기 위해 준비를 하라는 말은 지금껏 완득이가 살아온 인생과 정확히 배치되는 것이었다. 그건 상대를 같은 링 위에서 만난 동료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혼자 살아남기 위한 외로운 투쟁이 아니라 서로 싸우기도 다치기도 하지만, 결국은 다시 만날 사이, 서로가 치열한 삶을 인정하는 것이다.
줄탁동시라는 단어가 있다. 완득이를 두고 하는 말처럼 보였다. 언젠간 나아가야 하지만 목적을 상실한 채 안으로 침잠하던 완득이를 밖에서 건드리는 사람이 생겼고 그건 담임 똥주였다. 그렇게 시작된 알 깨기는 조그만 진동으로 균열을 키웠다. 베트남 출신 엄마와 정윤하 그리고 관장님 등등.
완득이가 성장하며 보여주는 외부를 향한 눈뜸은 나 자신의 성장과 겹치며 같은 모습을 찾게된다. 그와 동시에 완득이의 첫 길에 조마조마하게도 된다. 자신의 세계를 깨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가슴 따뜻해지는 동시에 완득이를 응원하는 이모 마음이 될 수밖에 없었다. 완득이의 미래가 왜인지 기대된다.
신장 결석으로 방통대 6과목 중에서 3과목은 과제를 내지도 못했습니다. 마침, 앓아누워있던 날과 제출일이 겹치는 바람에요. 나머지도 어찌저찌 두 과목은 과제를 내고 한 과목은 대체 시험으로 겨우 바꾸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낸 과제가 다행히 백 점(?) 받아서 기분 좋은 김에 글 한 편도 얹을 겸 올립니다^^
미 제국주의의 상장과 비슷한 버거킹과(?) 오래된 집의 조화. 진주 번화가에 있는 버거킹입니다. 오래된 집 앞마당을 확장해서 인테리어 가게로 쓰고 있어 더욱 특이합니다. 본인 집은 그대로 두면서 남의 집 고친다고... 물론 오래된 집을 저는 좋아합니다만, 이 집이 신기해서 자주 사진을 찍다가 이제야 그려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