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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던 길에 서 있는 이유

좀 깁니다요

by 노사임당

방통대 문학상 발표 났습니다. 에세이 부문 가작이랍니다. 웬 경사랍니까?(뭐 아시다시피, 동네 잔칩니다. 이름이 문학상이라서 노벨 문학상이니 신춘 문예, 지 문학상이 퍼뜩 떠오르시겠지만 아니 아니 아닙니다. 방통대 학생만 응모 자격이 있었던 상입니다..어쨌든, 당선과 가작만 뽑으니 2등. 축하만 받겠습니다.ㅎㅎ)


제시어:내 삶을 바꾼 선택

KNOU위클리 -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당선작 원문 공개합니다. 좀 길고 지루하니 좋아요만 누르셔도 좋습니다.ㅋㅋ


여간해서는 하지 않던 행동이다, 저녁을 차려야 할 시간에 집을 비우는 건. 익숙하지 않은 동선과 행동으로 시간을 꽤 허비했다. 어디로 갈지, 무엇부터 해야 할지를 몰라서다. 처음 해보는 일은 이럴까 저럴까? 머릿속으로만 재다 생각의 부피를 키웠고, 그렇게 맡겨진 선택이라는 짐은 어려운 것도 아니면서 시간을 뺏었다. 과감하게 본업에 눈을 감고 나온 패기와 달리 나에게 맡겨진 자유이자 선택, 선택의 자유는 당황스러우리만치 우물쭈물하는 나를 목격하게 했다. 제법 시간이 지났다. 8시다.


망설이고 주춤거리다 들어온 참이다. 혼자서 들어온 찻집에서 무얼 먹어야 할지 물어볼 사람도 없어 무작정 무언가를 시켰다. 어린 자식에게 먹일 생각으로, 자식이 무얼 좋아할지 생각하며 시키던 메뉴에서 온전히 나만을 생각하며 시킨다. 낯설다. 이런 일들이. 무슨 일에든 어떤 상황에서든 처음은 있는 법, 특별할 일도 아니다. 나를 위한 시간을 내는 건 앞으로 계속해야 할 일이다. 의무라도 해도 좋을 만큼 말이다. 굳이 아이들의 독립까지 가지 않더라도 혼자만의 시간은 가져야 한다.


포기하려 했다, 이 글을. 완벽할 수 없다면 시작도 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살아온 내게 완전하지 않을 것이 뻔한 글로 무슨 공모전이랴. 대단한 글들이 모일 곳에 글을 내겠다니. 떨어질 공모전에 뭐 하러 번거롭게 내려 하는가. 혼자 핀잔을 주었다.

아이를 보살피고 가정을 관리한다는 주부의 본업은 끝도 없고 완전한 상태도 없다. 그러니 제대로 해놓지도 않은 본업을 두고 집 밖에서 딴짓한다는 게 내키지 않았다. 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저걸 하겠다고 하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달까. 완벽할 수 없다면 하지 않던 많은 일이 떠오른다. 준비가 부족하다고, 나는 아직 안 된다고 판단하고 지레 눈 감아버렸던 많은 선택지가 실은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완벽해야 한다는 핑계로 피하기만 했던 많은 문들이 뇌리를 스친다.

그래, 기회라는 문마저 만져보지 않던, 완벽주의를 표방했던 나는 겁쟁이다.



몇 년 전 이웃이 이사를 왔다. 누가 이사를 하든 오든 타인에게 관심이 없던 나는 그 사실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 그런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런 무관심한 관점을 바꾸는 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잠이 많고 예민한 편이다. 잠이 많다는 건 어느 뇌과학자의 강연에서 들은 바에 따르면 창의력이 높은 사람의 특질이라고 하던데 그건 어디까지나 그 사람이 그런 모습을 드러냈을 때나 강조할 수 있는 특징일 뿐, 평소의 모습으로만 보자면 그저 게으른 인간쯤으로 취급되기에 십상인 습성이다. 예민한 것도 섬세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의 섬세함이 아닌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예민하다면 그건 섬세보단 신경 예민으로 비치거나 까탈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 성향이다.


그런데 새로 이사 온 사람은 나의 이런 특징을 모두 활성화했다. 새벽 5시부터 5가족이 뛰어다니기 시작했고 고성이 오갔으며, 하루도 빠짐없이 가구가 부서지는 소리를 냈다. 시도 때도 없이 부엌 등을, 텔레비전마저 흔들더니, 책장에 잠자던 책들을 춤까지 추게 했다. 내가 예민하니까 그런 걸까? 이 정도는 참아야 할까? (나의) 과민과 (그들의) 과잉 사이에서 정답을 찾듯이 고민하는 것까지 스트레스였다. 새벽 두 시에 시작하는 빨래까지 잠잠해지는 3시경, 겨우 잠을 청해 보지만 하루 9시간은 자야 하는 내게 새벽 5시부터 다시 시작하는 지진과도 같은 진동은 불면의 밤을 여는 서막이었다.


몇 년간의 갈등으로 머리는 하얘지고, 떨어진 면역력으로 묘기증을 비롯한 피부와 몸 여러 곳의 이상 증세, 내 정신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타협이든 합의든 협상이든 대화로 풀어보려는 시도를 선행해야 하는 법, 그런 것도 이해 못 하냐는 윗집의 일갈에 나는 집을 나갈 수밖에 없었다.


매일 집을 나가 돈이나 쓰고 살 형편도 아니고 왠지 비겁해 보여 내키지 않았다. 명분 있는 외출이어야 했다. 겁쟁이일망정 도망이나 치는 비겁한 실패자 같지 않아야 했다. 일을 하자. 돈을 벌기로 했다. 물론, 오랜 경력 단절로 날 찾지 않으니, 누구에게나 열린 곳이어야 했다.

경력도 묻지 않고 받아 준 슈퍼마켓 계산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사람에게 상처받은 마음은 밀려드는 손님에게 절로 움츠러들었고, 나를 공격하러 오는 듯 보여 무서웠다. 계산하며 실수라도 할까 손님이 그만 오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집이 아니면 어디든 좋겠다는 마음으로만 나온 일터에서 숨죽이던 내게 어느 날 누군가 말을 걸었다. "이삐야, 콩나물 좀 주까?" 사람에게 더는 상처받지 않겠다며 꽁꽁 싸매고 있던 내게 검은 봉지 속 콩나물이 고개를 들었다. 통통한 콩나물이 움츠렸던 몸을 펴고는 숨을 토하듯 인사를 보냈다. 봉지 주인이 보여준 친절. 그건 검은 봉지처럼 속내를 감추던 내 마음의 매듭을 풀었다.

내 속에 숨었던 뽀얗고 통통한, 사람을 향한 호기심과 친절을.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나보다 더 빨리 마음을 열며 다가오는 손님들과의 만남이 늘수록 출근하는 내 얼굴에 웃음도 는다는 걸 알았다. 갑질 손님도, 술 먹고 행패를 부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러고 나면 슈퍼에서 산 음료를 쥐여주며 위로를 건네는 손님이 어딘가에 있었다.


사람이 인간관계에서 소외되면 삶의 의욕이 꺾인다. 그런 내게 손 내밀어주던 손님 덕에 나는 조금씩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그런 시간이 하루이틀 달을 넘길수록 내 마음속 애정과 의욕이 발아하는 걸 느꼈다.

그와 동시에 집에 있는 시간을 줄여야 하는 이유도 여전했으니, 지옥은 장소가 아니라는 말은 내 상황을 표현하는 말이었다.



이 우울함이 길어진다면 어떻게 무기력해지는지를 경험으로 안다. 좋은 사람들과의 교류가 나를 연명하게 하더라도 원인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내 연명치료는 고비를 맞는다.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있지만 이것저것 일상의 일들도 해야 하긴 마찬가지다. 처리해야 할 고지서, 아이 학교 문제, 고장 난 가전제품에 시간을 주며 나는 내게 중요한 것을 슬그머니 놓친척했었다. 하지만, 모른 척 넘길 수 없는 시간이 왔다. 나는 정신과 치료를 결정했다. 내게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3살 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 이후 언제나 함께였던 우울함이 어느 틈에 기지개를 켜며 웃고 있었다. 나는 살고 싶었다.

정신과에 전화를 걸어 상담을 신청했다. 정신과 상담이 정신적 증상을 없애주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그건 삶을 이어가겠다는 다짐이자 나를 다독이려는 출발선이다.


여러 선생님과의 상담으로 내 근원적 아픔의 출처를 알게 되었다. 원가족에게서 분리되지 못한 내 자아와 대인 관계에서 기인한 아픔이라고 했다. 경도 우울증이 어린 시절부터 지속되었다는 말과 함께 불안을 조금이나마 낮추기 위해 약물치료를 병행하자고 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내 슬픔의 원류를 전문가의 입을 통해 들으니 희뿌연 얼굴로 겁을 주던 괴물이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나는 탯줄을 끊지 못한 채 독립이라고 생각한 걸 했고 어디를 가든 그 줄에 메여 금세 되돌아가는 아픔을 가지고 살고 있었던 거다. 거기에 사람 사이 마찰은 미열을 만들고 때로는 고열로 앓게 했다. 막연해서 더욱 무서웠던 괴물의 실체를 알고 나니 피하고만 싶던 고통의 근원을 마주할 용기가 났다.



상해 가는 음식을 처박아 두고서 차마 열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던 지난날이었다. 없다고 생각하며 살고 싶던 그 실체가 구더기가 기어다니는 손도 댈 수 없을 무언가가 아니라 그저 비우고 씻으면 냄새마저 며칠 사이 사라질 쓰레기라는 인식. 또 생길 쓰레기지만 살아있기에 생기는 쓰레기이니 처리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왔다. 이전까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겁 없는 생각에 슬며시 웃음이 났다. 나답지 않은 긍정적인 태도였다. 그렇게 상담하던 어느 날 선생님이 말했다. 치료 비용에 대한 부담과 지난한 과정을 설명하며 선생님은 상담을 권하기도 그렇다고 그만 오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보통은 정신과 치료를 권하지만, 나의 경우는 치료로 차도가 눈에 띌 정도로 보일지도 미지수인 데다 길어질 상담에 비용도 만만치 않을 거라며, 돈 문제에 신경 쓰는 나를 배려해서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병원은 아무래도 비용이 걱정이었고 그건 내 정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정적 문제를 일으켜야 하는 모순을 불러왔으니까.

그래 내가 우울증이었음에도 지금까지 살았다면 그리고 지금까지의 우울한 나와 이별하기 위해 정신과를 찾을 정도의 마음 상태라면 나는 변해야겠다.


변하고 싶다는 표현을 처음 쓰고 보니 이미 내 속엔 변화의 많은 조짐이 있었다. 변화를 위한 선택을 한 나 자신의 마음가짐을, 평생을 상상만 하던 정신과를 방문한 사실부터 말이다. 한두 달 오고 말 상담으로 건드릴 상처는 아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 고통이 내 세상을 파괴하는 침입자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는 상처와 아픔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상처를 덧나게 하는 일을 멈추자. 나는 내 속으로 파고드는 생활과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봄이었던 계절은 색을 바꾸는 여름을 지나고 있었다.


고통과 거리를 두려는 방편으로 나는 도서관 무료 수업을 신청했다. 그 무료 수업은 글쓰기였다. 오래전 내게 글쓰기는 신세 한탄의 한 종류였다.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할 것들을 외치는 도구 말이다. 그러니 글쓰기라고 해봐야 다시 읽을 일은 없었고 아름답지는 더더욱 않았다. 그렇게 써놓고 나면 별로 후련하지도 않고 오히려 더러운 것을 본 양 기분만 찝찝해지곤 했다. 하지만 글쓰기 선생님이 제시하는 주제에 따라 잔잔하게 깔아주는 음악을 배경음악 삼아 내가 소설의 주인공인 것처럼, 영화의 주연인 양 무언가에 관해 쓰다 보면 남의 이야기인 듯 내 속 얘기를 쓸 수 있었다.


혼자였다면 화만 내다가 욕만 하다가 말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줄지도 모르는 조금은 정제된 글로 쓴다는 건 새로운 경험이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경험을 주었다. 누군가의 권유였으나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는 다독임을 해가며 쓴 글은 정신과 상담으로도 풀 수 없었던 답답함을 해결해 주었다. 아무 때나 상담실을 달려갈 수도, 전화기를 들 수도 없는 두통에 통하는 글쓰기였다. 나의 현재 상황과 그걸 느끼는 내 마음을 적기 시작하니 내 마음이 객관적으로 보였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처지지만 나라는 사람이 뱉어놓은 나의 아픔을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볼 기회는, 흔치 않다. 그렇게 나는 나의 상담사가 되었다.


어린 시절 다칠 때마다 반창고를 붙여주는 엄마의 손길처럼 내가 나의 고통에 반창고를 붙여준다는 건, 전혀 기대하지 않은 소득이자 때론 모든 것이었다. 그렇게 내 얘기를 들어주는 글이라는 반쪽을 만나니 또 다른 도전도 하고 싶었다. 물론 길지 않은 글쓰기 수업이 아쉬워서이지만 일부러 무언가를 찾고 애쓰지 않는 성격상 찾아서 수업을 신청하는 내 모습이 생경하긴 했다. 또 10번의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림, 똑같은 도서관 무료 수업으로 이번에는 그림이었다. 망설임은 잠시, 또다시 도전했다. 어릴 적 배 붙이고 그림이라고 그렸던 실력으로 보자면 부끄럽기만 하지만 해보고 싶었다. 매사 해야 할 이유보다 하지 않을 이유부터 찾는 내가 도전한 두 번째 시도다. 종이를 사고 물감을 고르며 신나던 기분은 그림을 그리면서 실망으로 변할 줄 알았다. 하지만 정말 운 좋게도 고래 사육사인 선생님은 우리를 춤추게 했다. 고래보다 쉬운 인간인 우리는 선생님이 뿜어주는 칭찬 세례에 진실 여부를 떠나 신이 나서 그림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그로부터도 3년이 지났다. 그때 그 교실에 있던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다는 모른다. 하지만 십여 명은 안다. 아직도 그리고 있다. 아무 기대도 계획도 없이 도전했던 미술이 내 중요한 취미를 차지하고 있다. 아무것도 모른 채 한 선택이지만 그것으로 세상을 향해 눈 뜰 수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잡초들에 리듬을 느끼고, 비단 드레스처럼 고운 색을 자랑하는 구름에 넋을 빼고 바라보다 뒤차의 빵 소리에 출발한다. 세상의 사소하고 아름다움에 눈을 뜨고 있다.


내 속으로 침잠하던, 그래서 고통과 후회로만 보였던 세상이 확장된다. 수많은 아름다움과 타인의 배려와 불의에 눈떠야 할 당위, 모든 것에 시선을 맞춘다.


그림을 그리며 나는 세상을 관찰한다. 보아야 그릴 수 있으니까, 보았기에 그릴 수 있다. 나로 꽉 차 있어 나의 아픔이 세상의 아픔이었던 과거에서 벗어난다. 내게는 전부이지만 세상 속 나는 아름다움을 담당하는 작은 점일 테다. 슬픔을 담당할 때도 있는 점일 거다. 먼지를 대체하는 존재일 때도 있으리라.



나를 바꾼 선택이 글쓰기와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말 못 할 고민, 친구에게도 하지 못하는 비밀로 묻어두었던 것을 굳이 들춰내어 나를 읽어주었다. 글을 쓰며 내 몸의 수술 자국과 멍들, 그리고 부러졌다가 아문 흔적을 들춰본다는 건, 내 아픔을 직시한다는 것이자 세상의 전부인 나를 무시하지 않겠다는 선택이었다. 그림을 그리며 들꽃의 도도함을 처음 알았고, 그저 그런 하루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사실이 얼마만큼의 기적이었는지를 깨달으며 나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걸 선택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하지만 아니다. 나를 바꾼 선택은 늪과 같았던 우울함이나 무기력에서 산 것과 죽은 것 사이의 삶을 떨치고 삶을 향해 손을 뻗은 행위다. 글쓰기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을, 그림으로 세상을 관찰하는 중인 거다. 살아있기에 산 것이 아닌 오늘의 소중함을 실감하며 때때로 감격하는 나로. 가망도 없는 공모전에 출품하려 글을 쓰고, 처음 가는 찻집에서 처음 보는 메뉴를 시킨다. 그래, 나는 오늘도 나로 살기를 선택했다.


의령 부자바위를 A.I에게 그려달라고 한 번 해봤습니다. (가지 않던 길이 아니라 하지 않던 일도 해 봅니다ㅋㅋ)꽤 산뜻하게 그려주던데요. 이게 다네요. 더 그려보라니 암만 자세히 명령어를 입력해도 그림인지 사진인지 구분 안 되는 그림만 그려놓네요. ㅋㅋ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손수 그리는 수밖에요.ㅎㅎ


여튼 대문은 에이아이버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