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방법에 대하여

: 여행을 통해 세계에 대한 나만의 심상지도를 채우다

by 윤슬

이영민 작가의 「지리학자의 인문여행」은 고등학생 때의 내가 지리교육과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해준,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책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해외로 여행을 다니는 삶을 동경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선택할 때도, 해외여행을 8박 10일로 다녀올 수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을 결정했다. 여행을 다니며 다양한 문화적, 자연적 경관을 경험하는 삶이 멋있었고,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나 어렸을 때의 나는 여행을 좋아했지만, 여행을 잘할 줄은 몰랐다. 그런 내게 진정한 여행의 방법을 입문시켜준 책이 바로 「지리학자의 인문여행」이다. 이 글은 여행에 대한 나의 생각의 변화를 담은 기록이다.



여행과 관광의 경계에 대해

2018 미국 수학여행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여행을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자세로 대했다. 그래서 여행을 다닐 땐 항상 예쁜 옷을 입고, 공들여 화장을 하고, 유명한 포토 스팟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여행을 다녀온 내게 남은 것은 모두 “나”를 중심으로 구성된 기억들뿐이었다. 나의 시각에 집중해서 여행지를 바라보느라, 장소에 담긴 지리적 맥락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 모습이 파편화되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여행의 요소는 여행자, 여행지, 현지인으로 구성되지만, 나는 여행자만을 생각한 여행을 해온 것이다. 고등학교 때 미국의 서부와 동부를 횡단했던 여행을 회상해보면, 높은 빌딩과 바쁘게 지나치던 사람들의 모습은 어렴풋이 기억이 나지만 그곳이 어디였는지,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어떤 말투를 가지고 있었는지 등의 지리적인 정보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미리 공부를 하고 여행을 다녔다면, 미국에 대한 나만의 심상 지도를 채울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진한 아쉬움이다.


여행은 제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을 이해하고 경험한다. 그렇기에 여행은 경계의 안쪽과 바깥쪽을 비교하지 않고, 현지 주민들의 입장에서 문화를 이해하고 경험한다. 다름을 한 발짝 떨어져 확인하고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만들어낸 현지 주민들의 노력에 공감하고 그 결과의 가치를 이해하는 것이다. 반면에 관광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상태에서 여행지의 낯선 볼거리와 이색적인 즐거움을 즐긴다. 색다름을 향유하는 것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멀리서 여행지의 독특한 환경과 문화를 바라보고 뿌듯함을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결국 나는 “관광”을 해왔다. 관광버스 안에서 빠르게 바뀌는 차장 풍경을 바라보며, 이곳이 한국과 다름을 실감했고 시시때때로 내가 외국의 있음을 확인하고자 했다. 그래서 나와 그 장소의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을 찾는 것에 주력했고, 문득 다른 점을 발견하면 마치 엄청난 것을 발견한 탐험가가 된 듯한 기분을 즐겼다. 하지만 다름을 매번 확인하는 행위는 나를 피곤하게 했고, “외국”임을 매번 상기시키는 행위는 낯선 공간에 놓인 나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내가 관광밖에 할 줄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매번 패키지 여행에 포함된 관광 버스만 타고 다니다가, 싱가포르 여행을 갔을 때 직접 그곳의 지하철을 타본 적이 있다. 싱가포르의 지하철을 타려면 종이로 된 티켓을 발급받아야 했고, 에스컬레이터는 속도는 중심을 잡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하지만 지하철 내부는 한국과 큰 차이가 없었고, 바쁘게 삶을 살아가는 현지 주민들의 모습은 이곳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매번 관광버스에서 한 발짝 떨어져 현지 주민을 바라보면서 여행지로서의 특별함을 상기시켜왔다면, 싱가포르의 지하철을 직접 타본 경험은 이들의 삶과 함께하는 듯한 기분을 주어 새로운 즐거움을 가져왔다. 그동안 해외의 관광지를 모두 여행자의 시각에서만 바라보고 그곳의 가치를 정해왔다면, 싱가포르의 지하철은 여행지와 현지인의 시각에서 그 장소를 바라본 경험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그들의 삶의 터전을 잠시 경유해가는 손님이었고, 그들이 그 공간의 주인이었다.


여행을 하는 것과 관광을 하는 것은 한 끝 차이인 것 같다. 여행지와 현지 주민을 멀리서 편하게 바라만 보고 그들과 교류하지 않는다면, 이는 잠깐의 낯섦을 일탈처럼 즐기는 관광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직접 그들과 함께하고 겸손한 손님의 자세로 여행지를 바라본다면, 이는 낯섦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여행이 될 것이다.



여행, 낯섦의 미학


“여행의 핵심은 얼마나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느냐다”라는 작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여행은 얼마나 멀리보단, 얼마나 낯설게 장소를 바라보는가가 중요하다. 낯섦은 한 발짝 멀리서 다름을 비교하는 관광과는 다르다. 낯섦의 의미는 ‘장소감’의 정의를 통해 생각해볼 수 있다. 장소감은 익숙함의 여부에 따라 하나는 ‘제자리에 있는’ 느낌이고 다른 하나는 ‘제자리를 벗어난’ 느낌이다. 낯섦은 ‘제자리를 벗어난’ 느낌을 의도적으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이때 제자리를 벗어나는 것은 평소와 같은 방법으로 장소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리적 정보를 찾아가며 장소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21.04.01. 출사 기록

이 책을 읽고 직접 가까운 공원을 돌아보며 낯설게 바라보는 여행을 시도했다. 장소는 우리 집 뒤편에 있는 작은 동산으로 정해, 직접 카메라를 들고 곳곳의 모습을 담아보았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법한 곳이었지만, 낯섦의 시야로 이곳을 바라보니, 사람들이 직접 가꾼 텃밭과 운동 시설, 작은 벤치와 길게 뻗은 나뭇가지에서 쉬고 있는 조그마한 새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동안은 그저 등산을 좋아하는 어르신들이 자주 방문하는 산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다채로운 경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나의 동네에 대한 새로운 심상 지도가 그려지는 순간이었다.


일상에서 벗어나는 경험이 여행의 정의인 것은 여행을 굉장히 넓은 범주 안에서 바라본다. 비행기와 같은 교통수단을 타고 멀리 떠나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라, 주변의 지리적 정보를 새롭게 바라보는 것도 여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은 낯설게 바라보기를 실천하며 세계 곳곳에 대한 나만의 심상 지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반면에 아무리 멀리 떠나도, 그곳의 문화와 현지 주민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한 채 기존의 생활 방식만 고집한다면 이는 여행이라고 보기 힘들다. 새로운 공간에 가도 똑같은 것을 경험하고자 한다면, 세계에 대한 심상 지도를 더 넓게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여행의 세 단계

  여행지에서의 생각과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사전의 준비와 사후의 정리를 포함한 세 번의 여행이 오롯이 이루어져야 한다. 세 단계의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여행을 가기 전 국가의 기본적인 지리 정보를 알아두는 것이 필요하고, 여행 중에 전해지는 다채로운 느낌과 앎의 조각들을 부지런히 기록해두어야 한다. 여행을 다녀온 이후에는 몸에 남아있는 깨달음과 감정을 정리하고, 핸드폰에 가득 담겨 있는 여행 사진이 어떤 장소에서 촬영된 것인지를 확인하며 나만의 심상 지도를 완성해야 한다.


고등학생 때 다녀온 미국 여행에서 나는 사진을 정말 열심히 찍었다. 친구와 옷을 맞춰입고 예쁜 사진을 찍기도 했고, 박물관에서도 정신없이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녔다. 그때그때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기억에 남는 내용들을 메모장에 기록해두고, 한국에 돌아와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긴 글로 여행을 정리했다. 그래서 미국 여행은 내게 많은 기억을 아직도 은연중에 가져온다. 하지만 그때의 내가 하지 못한 건 여행지에 대한 조사였다. 미국 지도를 펼쳤을 때, 내가 어디에 방문했는지 정도는 어렴풋이 기억이 나지만, 각각의 장소가 어떤 경관을 가지고 있는지는 기억을 하지 못한다. 나의 심상 지도와 미국의 지도를 맞물리는 과정은 거치지 못한 것이다. 첫 번째와 세 번째 여행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해, 미국에 대한 나만의 심상 지도를 완전하게 만들지는 못했다는 점이 참 아쉽다.


여행의 방법은 다양하다. 어디에 방문하고, 어떤 목적으로 떠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여행이다. 하지만 여행의 진정한 의미는 세계 곳곳에 대한 나만의 심상 지도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보고 그 안에서 새로운 자신을 알아보는 것, 그러한 경험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낯설고 고단하기도 한 여행에 기꺼이 자신의 큰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 같다. 여행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여행은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나와 새로운 모습의 내가 만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내가 취한 방식만을 고집한다면 이는 휴식의 시간이 될 수는 있겠지만, 세계에 대한 나의 시각을 넓히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여행을 최대한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낯섦을 이해하고, 새로운 앎과 감정에 집중하고, 돌아온 이후 여행을 마무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책이 앞으로 내가 진정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계기이자 입문서가 된다면 좋겠다.

앞으로의 글들은 이 책에 대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적어내린 5개월간 미국 하와이에서의 교환학생과 이후 5주 동안 다녀온 북아메리카 대륙 여행에 대한 기록이 될 것이다. 6개월간 외지에서 보낸 나의 여행이 이번 기록을 통해 3단계로 잘 마무리되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한다.



참고문헌

이영민, 2019,『지리학자의 인문 여행』, 아날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