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명상은 왜 하나요? (1)편에 이어서 작성되었습니다.
1편▶https://brunch.co.kr/@tomasd/26
허무함을 이겨내려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다른 책들 속 공통적인 내용이 있었습니다.
바로 ‘참나’라는 개념입니다.
책은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내 감정이나 몸 또는 생각이 아니라고.
놀랍게도 감정이 내가 아니라는 알아차림만으로
무겁게 나를 짓누르던 허무함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혼란스럽고 답답했습니다.
나의 실체를 찾아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사전에서 정의하는 실체란
"늘 변하지 아니하고 일정하게 지속하면서 사물의 근원을 이루는 것"
늘 변하지 않는 나의 근원은 무엇일까?
뜬금없이 떠오른 질문이었지만,
이 질문은 나라고 여겼던 것들의 실체 없음을 바라보게 해 주었습니다.
내 몸도, 생각도, 감정도 모두 변하니까요
인간의 뇌는 한 번에 한 가지 생각밖에 못한다고 합니다.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생각과 감정사이에는 틈이 있습니다.
생각과 다음 생각 사이의 틈
감정과 다음 감정 사이의 틈
마치 연극 무대와 같달까요?
한 장면에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때,
무대 위는 계속해서 바뀌지만
무대 자체는 같은 모습인 것처럼요.
무대는 이 모든 것들이 흘러감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도 무대와 같은 공간이 있습니다.
저는 명상을 하면서 이 공간을 더 면밀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공간이야말로 변하지 않는 실체임을 깨달았습니다.
그제야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참나가 되었을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현자들은 진정한 깨달음은 경험과 앎의 영역이라 말합니다.
자전거 타는 법을 지식으로만 아는 것과
실제 탈 줄 아는 것은 다르듯.
'참나'라는 개념의 감을 잡았지만
여전히 그 존재 자체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글의 1편 서두로 돌아가
명상을 왜 하는지 똑같은 질문을 다시 받는다면,
저는 이렇게 답 할 것 같습니다.
저에게 명상은 나를 찾는 과정이었습니다.
생각으로 가득 찬 머리에 빈 공간을 찾게 해 주었고,
허무함에 짓눌려 살아가던 제게 근원을 찾아주었습니다.
이제는 명상이 곧 삶이자 삶이 곧 명상이 되는 단계로 넘어가야 함을 느낍니다.
아직 구체적인 방법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것이 세상 어떤 보물보다 귀중한 것임을 깨달았으므로
최선을 다해 찾아나갈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