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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한 휴가, 진짜 마음대로 쓸 수 있을까?

넷플릭스·토스·당근마켓의 실패와 진화

by 최누리

1. 기대와 현실

무제한 휴가제도는 자율성과 신뢰를 상징하는 제도적 장치로 주목받아 왔다.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복리후생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출퇴근 시간의 유연성, 재택근무, 무제한 휴가와 같은 제도가 기업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형식적으로는 이상적인 제도로 보이지만, 실제 조직 내에서 이 제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실제 운영 사례를 살펴보면, 무제한 휴가제도는 기대와 다르게 구성원의 실질적 사용률이 낮고, 제도를 유지하지 못하거나 후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율을 전제로 한 제도가 오히려 눈치, 불안, 성과 압박과 결합되면서 제도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쉬지 못하는 역설적인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2. 무제한 휴가제도가 작동하지 않는 이유

넷플릭스는 무제한 휴가제도를 글로벌하게 확산시킨 대표적 사례다. “규칙이 없는 것이 규칙”이라는 방침 아래, 일정 승인 없이 휴가를 사용할 수 있으며, 비용 집행조차 상사의 결재 없이 자율적으로 처리하는 구조를 채택했다. 이는 구성원의 책임감을 전제로 한 자율 기반 경영 철학에서 비롯된 제도였다.


초기에는 제도가 안정적으로 운영되었으나, 조직 규모가 확장됨에 따라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했다. 일부 직원은 비용 지출 한도 없음과 같은 자율 원칙을 오용했고, 장기 육아휴직 제도의 축소 등 제도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무제한 휴가 또한 실제 사용률이 낮아지며, 제도의 이상과 실천 간 간극이 뚜렷해졌다. 자율은 조직문화의 성숙도를 전제로 작동하지만, 그것이 전 구성원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내면화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토스는 수직적 조직문화가 공유되는 상황에서 무제한 휴가제도를 도입했다. 승인 절차 없이 구성원이 자율적으로 휴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지만, 실제 운영에서는 ‘눈치 휴가’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또한 고성과 중심의 평가제도 하에서 자율이라는 명분이 구성원에게는 압박으로 작용했다. 성과를 기반으로 한 보상체계는 오히려 구성원으로 하여금 휴가 사용을 자제하도록 만들었다. 블라인드 커뮤니티 등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무제한 업무”, “쉬면 뒤처진다”등의 표현은 조직 내부의 실제 분위기를 반영한다. 이처럼 제도 자체는 자율을 표방하고 있지만, 구성원 경험은 그것과 다르게 작동하고 있다.



복리후생은 인재의 유입과 유지를 위한 핵심 전략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두 기업의 사례는 무제한 휴가제도가 어떤 환경에서는 오히려 부담이나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제도가 기대와 달리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자율에 대한 조직 내부 기준이 불균형적으로 적용되었다는 점이다. 넷플릭스는 구성원에게 큰 폭의 권한을 위임했지만, 모든 직원이 동일한 수준의 책임감과 판단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 비용 집행과 휴가 사용 모두 자율에 맡겨졌지만, 명확한 가이드라인이나 피드백 체계 없이 운영되면서 내부 신뢰를 흔드는 사례가 발생했다. 이는 자율 설계에 앞서 조직 내부의 자율 운영 능력을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그에 맞는 보완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둘째, 조직문화와 제도의 방향성이 일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토스는 무제한 휴가제도를 자율적 복지로 설계했지만, 동시에 강한 성과주의와 수직적 커뮤니케이션 문화가 공존했다. 형식적 자율과 실질적 압박이 충돌하면서 구성원은 휴가 사용 자체를 불이익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그 결과 제도는 의도한 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자율은 문화적 기반 위에서만 실현 가능한 가치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셋째, 성과관리 체계와 자율 복지의 철학이 충돌한 구조다. 토스의 경우, 고성과자에게 높은 보상을 제공하는 구조와 결합된 자율 제도는, 결과적으로 성과 압박 하에서의 자기통제 강화 수단으로 작동했다. 구성원은 실질적 자유보다는 책임과 불안을 내면화하며 휴가를 자제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되었다. 이는 제도의 본래 목적이 조직 성과 향상이라는 틀 속에서, 구성원의 회복과 재충전을 뒷전으로 밀어낸 구조적 모순을 드러낸다.


이와 같은 사례들은 무제한 휴가제도가 단순한 복리후생 정책이 아니라, 조직의 가치관, 관리 방식, 성과 인식 전반과 연결되어야만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제도가 갖는 이상적 메시지가 현실의 운영 방식과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구성원은 혼란과 불신을 경험하게 된다. 복지 제도가 오히려 조직 내 긴장과 불균형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당근마켓의 전략적 전환

당근마켓은 무제한 휴가제도를 비교적 일찍 도입한 국내 기업 중 하나다. 직급 없는 수평적 문화, 영어 이름 사용, 슬랙을 활용한 비계층적 소통 방식 등 자율성과 평등을 중시하는 조직문화를 기반으로, 일정 공유만으로 자유롭게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해왔다. 제도의 표면적 특징만 놓고 보면 넷플릭스와 유사해 보이지만, 운영 방식과 결과는 차이를 보인다.


당근마켓의 무제한 휴가는 고급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전략적 수단이었다. 경쟁력 있는 초봉(약 6,500만 원)과 결합된 이 제도는 자율과 책임을 동시에 부여하고, 구성원이 스스로 업무와 휴식을 조율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 조성을 목표로 했다. 2022년 기준으로 회사는 적자를 기록했지만, 사용자 수와 매출이 모두 증가하며 장기 성장 가능성을 입증했고, 이는 유연한 내부 운영 방식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당근마켓 역시 다른 기업들과 유사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고성과에 대한 기대와 빠른 성장의 압박 속에서, 일부 구성원은 무제한 휴가를 실제로 자유롭게 사용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성과를 중심으로 한 피드백 문화와 고용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맞물리며, 휴가 사용에 있어 심리적 제약이 생긴 것이다. 이로 인해 제도 자체의 실효성에 대한 내부적 재검토가 이루어졌다.


2024년, 당근마켓은 무제한이라는 추상적 개념 대신, 연간 25일 유급휴가라는 명확한 기준을 도입하였다. 이는 일반 기업의 연간 휴가 평균인 15일보다 약 60% 많은 수준이며, 실질적인 휴식 권리를 보장하고자 하는 조직의 의지가 반영된 조치였다. 제도를 전면 폐기하지 않고, 구체적인 수치를 명시함으로써 자율성과 예측 가능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방식으로 전환한 셈이다.


당근마켓의 선택은 무제한 휴가제도가 가진 철학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운영 방식을 전략적으로 조정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조직문화와 구성원의 실제 경험 사이에 간극이 발생했을 때, 이를 인지하고 구조적 대응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구성원이 제도를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도록 명확한 기준을 보완적으로 제시한 점은, 복리후생 제도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평가할 수 있다.





4. 복리후생 제도의 작동 조건과 성공 요인

무제한 휴가제도는 단지 자율이라는 가치를 내세우는 것만으로는 실질적인 복지로 기능하지 않는다. 동일한 제도를 운영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마다 다른 결과가 나타난 이유는, 복리후생 제도를 둘러싼 조직의 구조와 문화, 실행 방식이 각기 달랐기 때문이다. 세 기업의 사례를 종합해보면, 복리후생 시스템에 필요한 조건은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도출할 수 있다.


첫째, 복리후생 시스템의 명확성과 일관성이다. 무제한이라는 표현이 주는 상징성은 크지만, 실제 운영에서는 일정한 사용 가이드라인이 존재하지 않으면 제도가 모호하게 작동할 수 있다. 넷플릭스와 당근마켓의 초기 사례처럼, 휴가 사용의 주체를 구성원에게 전적으로 위임할 경우, 활용 여부는 개인의 성향이나 팀 분위기에 따라 편차가 커진다. 반면, 당근마켓이 연간 25일이라는 기준을 도입한 이후 구성원의 심리적 장벽은 낮아졌고, 제도 활용의 예측 가능성은 높아졌다. 이는 자율과 명확성 사이의 균형이 제도 실효성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준다.


둘째, 조직문화와 복리후생 철학의 정렬이다. 자율성을 기반으로 한 복리후생 제도는 구성원 간의 상호 신뢰, 수평적 소통, 상사의 리더십 태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토스의 사례에서 보듯, 수직적 조직문화나 강한 성과 압박이 병존하는 구조에서는 제도의 본래 취지가 무력화될 가능성이 크다. 자율은 단지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조직 전체가 ‘쉬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공유할 때 가능해진다. 제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문화적 토대가 뒷받침되어야 하며, 구성원이 심리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 함께 조성되어야 한다.


셋째, 성과관리 체계와의 조율이다. 무제한 휴가제도는 성과 중심의 평가 구조와 충돌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넷플릭스와 토스는 모두 고성과를 중시하는 구조 속에서 자율 제도를 운영했으나, 실제로는 ‘자율을 누리는 사람보다 일하는 사람이 인정받는다’는 인식이 강화되었다. 반면 당근마켓은 일정 기준을 설정함으로써 성과와 휴식의 균형을 도모하려는 시도를 했다. 복리후생 제도가 성과 관리의 한 축으로 흡수되지 않도록 하려면, 성과와 휴식이 상호 보완적이라는 철학이 성과 평가 기준에 반영되어야 한다.





5. 실제로 경험되는 복지

복리후생 제도의 성패는 그것이 어떤 문화 속에서 어떻게 운영되는가에 달려 있다. 자율과 신뢰를 표방한 무제한 휴가 제도라도, 구성원이 실질적으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복지로 기능하지 않는다. 보여주기식 복리후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운영 기준의 명확성, 문화적 수용성, 성과체계와의 정렬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넷플릭스는 자율을 제도화했지만, 오히려 개인의 기회주의적 오남용 문제를 경험했다. 토스는 위계 중심 문화와 제도의 충돌로 자율성이 위축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반면 당근마켓은 무제한 휴가의 철학은 유지하면서도, 연간 25일이라는 명확한 기준을 도입해 실효성을 보완했다. 제도 자체를 버리지 않고, 현실에 맞는 방식으로 조정한 사례다.


복리후생은 단순한 혜택이 아니라, 조직이 지향하는 인재상과 문화를 구체화하는 전략적 수단이다. 핵심은 구성원이 그것을 체감하고, 주저 없이 활용할 수 있는가에 있다. 복리후생 제도는 조직문화와 구성원 경험 사이를 정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작동한다. 이제 복리후생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작동하느냐’의 문제다. 이름만 있는 제도가 아니라, 실제로 경험되는 복지가 지속가능한 중소벤처기업의 경쟁력을 결정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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