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독서노트
요즘 어디서나 자주 접하는 말 중 하나가 '철학'이다.
어디서나 이 "철학"없이는 살기 힘들다. 오직 이윤과 수익만을 추구하는 기업들도 자사 기업문화 및 기업 아이덴티티(Corporate Identity), 추구 가치를 홍보할 때 '기업철학'을 제일 먼저 내세우고, 정치하는 사람들은 '정치철학'을 논하고, 일상생활 속 개개인들도 따로 퍼스널 브랜딩(personal branding)을 하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개성과 가치관을 주장할 때 '자기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삶의 방식과 관점, 그런 주관적 스탠스를 표출하기도 한다. (여기서 필자가 필자만의 어떤 "개0 철학"을 논하려는 것은 전혀 아니다.)
먼저 오랜만에 이렇게 '책리뷰 & 독서노트'로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을 좀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다.
필자의 브런치 매거진 <행복에세이>에 발행한 [고상하지만 난해한 철학책 바로 덮게 만든 글 한 줄]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행한 이후로 필자는 최근 철학 관련 책을 거의 손에 잡지 않고 있었다.
평소 필자의 부족한 소양(素養) 탓이겠지만 일견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는 철학적 이론의 배경과 논거들의 나열이(특히 참고문헌과 각주footnote가 너무 많아) 선뜻 철학서적을 쉽게 손에 잡지 못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읽어보고 싶은 책이 있었는데 좀체 손에 잡을 시간적 (실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 그 책을 들었다 놨다만 반복했었다. 그러다가 급기야 올해 초에 "책을 읽는 데 스스로 부담을 주고 (서평과 감상문을 쓰고 발행하는 데도)" 스스로 완독의 동기부여를 위해 여기 브런치스토리에 발행하는 어느 글에서 필히 독후감을 올리겠노라 스스로 호언장담(豪言壯談)하며 미리 "예고"까지 해 두게 되었다.
그 책이 바로 철학자 '악셀 호네트'(Axel Honneth)가 쓴 [인정투쟁]이었다.('사월의책' 출판, 문성훈• 이현재 옮김. 한글 번역본 초판 2011)
시중 일반서점에 재고가 없어 출판사를 통해 어렵게 구한 한글 번역본을 최근 다 읽었는데 서평은커녕 여태까지도 짧은 독후감조차 쓸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혹시라도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예고"운운한 필자의 호기(豪氣)[만용]를 아직까지도 기억하시는 독자(작가)분들께 알려 드릴 겸 (그나마 그 앞선 발행글에 공개적으로 "예고"를 선언한 덕분에 어떻게라도 읽기는 다 읽었으니) 늦게 거칠게나마 그에 관한 필자의 짧은 소회(所懷)를 여기 기록해 두려고 한다.
독일의 철학자 악셀 호네트(Axel Honneth)가 1992년에 발표한 [인정투쟁](Kampf um Anerkennung. new edition 2003)이라는 책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의지는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이라든가, "모든 사회적 투쟁은 인정을 둘러싼 투쟁이다." 등으로도 익히 유명하다.(출처: [어떤 단상 6] by The Happy Letter)
그런데, OMG! 이 책은 첫 서두부터 '청년 헤겔'의 이론이 등장하는데 (필자의 일천한 소견으로는) 그냥 부담 없이 쉽게 읽을 수 있는 교양서적은 아닌 것 같았다.(블로그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숏폼이나 사진과 글들을 포스팅하면서 "인정받기"를 바라는 심리적 기저와는 다른 차원인가?)
어쨌든 이 책 전체 구성은 총 3부로 되어 있는데 특히, 인정투쟁 이념의 역사적 출현을 다루는 1부, '헤겔의 근원적 이념'과 2부, 인정투쟁 이념의 체계적 현대화를 설명하는 '사회적 인정관계의 구조' 부분은 오랜만에 필자를 잔뜩 긴장하게 만들었다.(읽은 지 얼마 채 지나지 않아 두통약을 찾게 되었다.)
우선 책 앞부분에 인정투쟁의 주된 이론적 배경을 설명하는 부분과 예나 시기의 청년 헤겔과 미드*(G.H. Mead. 미국 사회학자, 철학자)가 주장하는 정치철학적 단초를 제공하는 공통점과 차이의 논거를 상술한 대목은 여기서는 생략하고자 한다.
다만, 저자는 독일 사회학자 한스 요아스(Hans Joas)의 글을 인용하면서 "인간 주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상호주관적 인정이라는 경험 속에서 형성한다는 사상을 미드의 사회심리학처럼 자연주의적 사고 전제 아래서 일관되게 발전시킨 이론은 없다."(p. 144)라고 강조하고 있으며, 청년 헤겔의 인정투쟁 이론과 사회심리학자인 미드의 역할, 즉 "인정과 사회학"이라는 개념으로 '미드에 의한 헤겔 이념의 자연주의적 변형'을 비교 및 구분해두고 있음을 밝혀둔다.
필자가 읽고 싶었던 책을 간곡히 꼭 읽을 요량으로 공개적으로 "독후감" 글을 발행하겠다고 공언한 대가는 호되고도 컸다.
이렇게 철학적 배경을 가진 '인정'개념과 '인정과 사회학'이라는 주제의 화두(話頭)와 담론(談論)에 좀 딥하게 관심 있는 독자(작가)분들 중 아직 이 책을 안 읽어보신 분들은 (나중에 이 책을 접하실 기회가 생긴다면) -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 전반부인 1부보다는 일단 바로 중/후반부(2 & 3부)부터 먼저 읽고 나서 전반부는 그다음에 접근하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3부에는 '도덕과 사회발전'이라는 화두로 지금까지의 사회철학적 전통의 자취들을 살펴보는 사례(마르크스, 소렐, 사르트르)에 관한 구체적 설명과 바로 '무시와 저항'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사회적 갈등의 도덕적 논리(도덕과 사회발전)"(이 말은 바로 이 책 표지에 나와 있는 소제목이기도 하다)에 관한 저자의 철학적 논거와 깊이 있고 설득력 있는 사유를 현실적 토대 위에서 잘 서술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책 후반부에 저자의 주장과 그 결론이 보다 이해하기 쉽게 상술되어 있다.)
그래서, 일상에 바쁜 분을 위해 한 줄 요약을 한다면?
필자는 이 책을 한 줄로 요약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주요 키워드를 말하라면 이 책의 출판사 '사월의책'의 한글 번역본 뒤표지에 인용된 저자의 주된 화두(話頭)와 개념(p.301 참조)을 들 수 있다 ;
“인간 주체는 인정으로부터 자기실현의 기회를 갖는다.”
이 책은 "모든 사회적 투쟁은 인정을 둘러싼 투쟁이다"라는 명제를 관통하는 담론을 펼치며 “사회적 무시와 모욕, 이에 대한 분노로부터 모든 정치적 저항의 동기가 등장한다”라는 저자의 주장과 그 근거 및 배경을 논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이 책은 첫 출간(1992년)된 후로 많은 화제와 논쟁을 불러일으켜 왔으며, 저자 또한 이 책의 특별판(2003) 출간시점 기준으로 "인정의 토대: 비판적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는 새 첨언(添言)을 통해 그동안 이어진 다양한 관점의 이견 및 반론에 대한 반박과 보충 해명(解明)을 덧붙이기도 했다.
바쁜 일상생활을 하면서 저마다 어떤 유명한 철학책을 관심 갖고 읽거나 또는 도중에 덮는 이유는 다들 다양할 것이다.
하루하루 바쁜 일상에 1992년에 출간된 책을 삼십 년도 더 지난 2024년에 굳이 읽어야 하는지 되묻을 수도 있겠지만 오늘의 우리에게도 (최소한 필자에겐)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애써 공들여 읽었다. 우리가 처한 사회공동체 속 작금(昨今)의 현실을 들여다볼 때 '시의성'(時宜性) 있는 주제인지 여부는 각자 개개인이 판단할 영역이겠지만.(일상 속에서 우리는 자주 이천 년도 더 지난 글들도 읽는다. 물론 종교이야기는 아니다.)
결론적으로 필자가 이 책을 다 읽은 소감은 비록 읽는 동안 머리는 아팠지만 다시 철학책을 손에 들어야 하는 절실함을 느끼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단지 내가 쓰는 어떤 글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철학적 토대를 문학적 기교 내지 표현으로 잘 어우러지게 하고자 함만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접하게 되는 일상 속 어떤 현상과 사건에 대한 가치판단의 기준과 행동의지의 근거를 다져나가는 데도 이 책은 일독의 가치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기 철학'이 없는 글은 불 끄진 등대요, 앙꼬 없는 찐빵이 될지도 모르니까.
필자 나름대로 밑줄 그으며 읽은 인상 깊은 구절들이 많지만 아래와 같이 "사회적 인정관계의 구조"(p.249)를 통해 저자가 요약한 부분을 여기에 인용해 두고자 한다.
악셀 호네트가 정의하는 인정 방식은 크게 3가지로 정서적 배려, 인지적 존중, 사회적 가치 부여로 나누어져 있다.
먼저 정서적 배려의 인정 방식에는 개성의 차원으로 '욕구 및 정서본능'이 해당되며 이에 대한 인정 형태는 '원초적 관계'(사랑, 우정)가 해당된다고 한다.
둘째로 인지적 존중에는 '도덕적 판단 능력'이 해당되며 여기엔 '권리 관계'(권리)가 인정 형태로 나타난다.
셋째로 '사회적 가치 부여'로서의 인정 방식은 '능력과 속성'차원에서 '가치 공동체'(연대)라는 인정 형태가 자리한다는 주장이다.
호네트의 인정 개념의 범주에는 이렇듯 사랑(정서적 욕구), 권리(동등한 상호인정), 연대(사회적 가치 부여), 바로 이 3가지가 핵심이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여기서 저자가 명료하게 지적하는 사실은 바로 이들 각각의 "인정"방식에 반하는 "무시의 형태"이다.
앞서 언급한 인정 방식 3가지 즉, 정서적 배려, 인지적 존중, 사회적 가치 부여라는 인정 방식에 반하는 "무시의 형태"를 별도로 정의하고 있는데, 저자는 각각 "학대, 폭력"(정서적 배려에 반함), "권리 부정, 제외시킴"(인지적 존중에 반함), 그리고 "존엄성 부족, 모욕"(사회적 가치 부여에 반함)을 언급하고 있다.
필자가 관심을 가지고 읽은 대목 중에 "심리적 죽음, 사회적 죽음이라는 말은 곧 ‘모욕’이라는 말로 재정립되고 축약될 수 있다."(p.256)라는 저자의 주장은 흥미로왔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온갖 사회적 갈등, 개인적 갈등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서로를 ‘인정’하지 않거나 또는 못하거나 하면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그로 인해 서로 상대방을 어떤 식으로든 ‘무시’하거나 (또는 ‘모욕’) 하면서 그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결국 인정에 반하는 무시는 '인정'을 (얻기) 위한 (또한 인정받기 위한) 투쟁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화두로 또다시 사색(思索)에 빠지며 오늘 글은 이만 줄인다.
"무시에 대한 경험에 심리적으로 동반되는 부정적 감정 반응은 바로 인정투쟁의 동기가 근거를 둔 정서적 추진 토대일 수 있기 때문이다."(p.257)
*미드 : George Herbert Mead(1863~1931),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 시카고학파의 대표적 존재이며 상징적 상호행위론‧사회심리학의 창시자.(출처 : [다음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