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태용 Nov 05. 2024

10년, 앞으로도 함께。

감성 에세이...

차가운 알루미늄 표면 위로 손끝을 슬며시 맞댄다. 열 번의 봄, 열 번의 가을을 함께 보낸 너는 이제 나의 체온을 닮았다. 전원 버튼을 누를 때마다 들리는 미세한 떨림은, 마치 오래된 연인의 숨소리처럼 친밀하다.

2014년, 처음 너를 만났던 날을 기억한다. 반짝이는 은빛 표면과 선명한 화면이 새것의 설렘을 품고 있었지. 그때의 나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불안한 미래를 마주하고 있었다. 네가 켜지는 소리와 함께 시작된 하루하루가, 어느새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키보드의 자판들은 이제 기억의 무게로 반들반들해졌다. 'ㄱ'자 키는 살짝 흐려졌고, 스페이스바는 오른쪽이 더 낮아졌다. 수천 번의 터치가 남긴 흔적들. 합격 소식을 확인하던 순간의 떨림도, 첫 발령지를 검색하던 설렘도, 모두 네 안에 깃들어 있다.

가끔은 네가 느려질 때면 미안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무거워지는 프로그램들을 견뎌내느라 숨이 가빠지는 것 같아서. 하지만 넌 여전히 묵묵히 켜지고,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순간에 그 자리에 있어준다. 새 노트북을 사라는 주변의 말들도 있었지만, 난 알고 있다. 네가 가진 것은 단순한 기계의 기능이 아닌, 우리가 함께 쌓아온 시간이라는 것을.

화면 모서리의 작은 긁힘도, 키보드의 닳은 흔적도, 이제는 모두 우리의 이야기가 되었다. 출근길에 쏟아진 커피가 남긴 얼룩, 야근하며 놓쳤던 눈물방울의 자국까지. 네 몸에 새겨진 흔적들은 우리의 역사다.

요즘도 가끔 네 전원을 켤 때면, 십 년 전 처음 만났던 그 설렘이 살아난다. 부팅되는 동안의 짧은 기다림 속에서, 우리가 함께한 모든 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2024년인 지금, 넌 여전히 내 곁에서 일상을 지켜주고 있다.

앞으로도 몇 년간 더 함께하자. 조금 느려져도 괜찮아. 네가 있는 자리는 단순한 작업공간이 아닌, 우리의 추억이 숨 쉬는 곳이니까. 열 번의 봄을 함께한 너는, 이제 내 삶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차가운 기계라고만 생각했던 네가, 어느새 이토록 따뜻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용와대? 어이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