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표정 관리를 못했던 탓일까, 마치 기다렸다는 듯 금세 내 문자에 갤러리 측 답변이 왔다. '작가님, 너무 힘드시면 날짜를 바꿔드릴게요.'라며 나를 또 한 번 배려하는 모습에 나는 괜스레 미안한 감정이 생겼고, 더욱 확실하게 하기 위해 요동치는 감정을 눌러내며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꼭 같이하고 싶어요.'라며 내 전시는 열지도 못한 채 종료됨을 전했다.
생각보다 태연한 척 애쓰는 것은 힘들었다. 아마도 그 당시 나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차라리 예술을 하려 애쓰지 않았던, 그저 평범한 회사에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살 때를 말이다. 웬일인지 그날따라 내 인생이 잘못되어 버려서 이렇게 되었나 라는 안 좋은 생각들을 계속해서 했다. 평소 일종의 예방 차원에서 나는 마스크와 모자에 내 모든 것을 가리고 그 어두운 내면을 맡기는 버릇이 있었기에, 아무도 내 슬픔엔 관심이 없을 테지만 슬픔이 내 얼굴과 몸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서둘러 마스크와 모자를 썼다.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사회에서 만들 수 있는 가장 안락한 내 안식처였다. 평소 내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성격을 가졌기에 많은 사람들이 나의 의도를 모른 채 배려의 차원에서 모자와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곤 하지만 사실 그것들이 나의 모든 감정선을 막아줄 때 안정감을 느끼기에 잘 벗진 않았다. 아마도 이런 것에 의지하는 것은 내 불안과 자기방어와도 관계가 있겠지만 애석하게도 이젠 그것마저 즐기는 입장이 돼버렸다.
후회와 회상을 계속해서 반복하던 때에도 세상은 그마저도 여유를 주지 않는 것처럼 나를 미련에서 나오라 소리쳐 불렀다. 마치 나에게 시간도 감정도 허락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야속하게도 돌아간다. 저마다의 이유와 목적으로 사람들은 지나가고, 그들의 대화와 웃음소리가 유난히 날카롭게 귀에 스치는 느낌에 나는 그 속에서 너무도 작고, 무력해지며 마치 내가 이 세상의 일원인지 아닌지 아니라면 어디에도 소속하지 않는 이방인인지 점점 스스로를 의식하고 그것은 더 나아가 나에게 '의심'이라는 왕관을 쥐여주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이런 불편함 속에서 희미해져 가는 안도감을 찾고 있었다.
불안과 후회의 늪 속에서 내면의 소리가 나에게 비수를 꽂는다. '그냥 놔버려. 애쓰지 말고 흘러가는 대로 살고, 다시 돌아가 지금보다 덜 힘든 것을 선택해.'라며 자극하기를 반복했지만, 이 속삭임마저도 내게는 두렵게만 느껴졌다. 내가 만일 그냥 포기하면, 나조차도 잃어버릴지 두려웠던 것 같다. 과거의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동시에 그 길이 나를 더 어두운 곳으로 끌고 갈 것 같아 망설여졌다. 매 순간 내 선택이 틀렸다는 확신이 들 때,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날들이 그리웠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를 포기할 수는 없는 법. 예술을 선택한 것도, 회사를 떠난 것도, 내 인생을 내 손으로 책임지겠다는 다짐의 일부였다. 그때의 결단이 틀렸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지만, 그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고, 결국 나는 그마저도 견디어 계속해서 걸어갈 수밖에 없다. 그저 살아가기 위해서….
그러나 오늘만큼은 세상이, 혹은 사람이 또는 상황이 내 앞을 밀어내려 해도 그것을 멈추기 위해 잠시 이 속도를 늦추고 싶을 뿐이다. 말이다. 이 속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냉혹히 나 자신을 돌아보며 나는 그저 내 자리에서 내 속도를 유지한 채 나를 지키고 싶었다.
이 어지러운 감정 속에서도 나는 조용히 한숨으로 모든 걸 표출했고, 이내 결심했다. 비록 내가 세상의 속도와 거리가 멀어져도 혹은 세상이 나에게 허락하지 않아도 그저 좁은 길을 걸어, 때로는 느려도 때로는 멈춰도 괜찮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그날의 순간을 견디기로 말이다.
생각을 정리하니, 그나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으로 돌아왔다. 환상은 여러 의미로 자극적이고, 나를 현실의 늪에서 잠시나마 구원해 주지만 그마저도 부질없다. 현실은 현실이며, 내 하루의 끝엔 인간다운 하루를 마무리해야 하므로 쓸데없는 환상은 최대한 배척해야 한다. 집으로 서둘러 돌아와 밀려있는 외주 연락들을 처리하곤 했다. 우습게도 외주로 발생한 일들은 나를 찾는 이들이 더욱 많아지고 오히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상황들은 모두 좋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전시하지 못하는 상황에 부닥친 나에게 여전히 그들은 나를 '작가'라 칭했고, 그것이 불편해 연락의 모든 마지막 단락에 이름 옆 디자이너라 굳이 나의 수식어를 변경했다. 나는 그렇게 무언가를 잠시 잊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쓰고 있었다.
그날의 끝자락에 걸터앉은 나는 사색과 함께 인생이라는 언덕에 앉아 과거의 회상과, 안 좋은 환상들이 멀어질 때까지 그 뒤를 바라보며 내일의 현실을 어떻게 살 것인가 궁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