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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반림 Sep 08. 2024

비워내고 온기로 채우기

 언젠가 글을 쓰게 된다면 꼭 하고 싶었던 말들이 있다. 어느 정도의 만족은 지금의 나를 벗어나게 해주는 데 도움을 준다. 다소 무거운 문장일 수 있지만 언젠가 꼭 말해야만 한다고 여겨 아껴놓고 있었다. 비록 내 나이가 30이라 적은 나이에 불과하지만, 항상 사색을 즐기고 고전을 탐구하는 성격을 지녀 생각보다 많은 생각과 사상들을 갖는 것에 집중했기에, 이 말들을 언젠가 전하고 싶었다. 나의 프리랜서 생활과 예술가로서의 생활은 둘 다 모두 애매모호하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스스로 만족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불만족 속 발악이다. 불만족을 계속해서 반복하다 보면 세상은 나를 등지고 사람은 나를 외면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경험을 항상 하게 만들고, 모든 것에 단절되어 제대로 된 의미들을 찾을 수 없게 했다. 나는 오해하기 일쑤였고, 그것들이 정답인 것처럼 모든 것들을 바라보는 멍청한 시선을 가진 사람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모든 '탓'을남에게 돌리는 다소 핑계로 가득한 사람이 된 나를 발견하는 일들이 잦았다. 하지만 그 끝엔 항상 나만이 남기에 모든 '탓'이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고 그것은 나를 구렁텅이로 빠트리는 멍청한 말이었다. 스스로 말을 자주 하곤 하지만 자신의 현 상황과 판단들이 만족하지 못하는 삶일 때 그 말은 그다지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인간으로서 불만족을 갖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것에 지배당해 세월을 흘려보내다 보면 후회와 과거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 차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처럼 나의 일생도 후회와 연민으로 가득 차 있기에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을 무렵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삶의 윤택과 조금의 나음이 가끔은 스스로를 위로해 주지만 언제까지나 그것이 위로의 목적을 유지할지는 미지수다. 진정한 프리랜서로 스스로를 인정했을 때 비로소 나는 불만족을 벗어 던질 수 있었다. 그저 나의 현 위치와 현재의 밭을 가꾸기 위해 메어있던 감정의 경계선을 허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허물이 나의 남아있는 모든 감정을 대신 해주진 않지만, 그것을 자양분 삼아 한 단계 나아가는 성장의 도구로 만들 수 있었고 그것은 어느새 내 무기로 변해가고 있었다.


 만족은 사실 별것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작은 이득과 작은 손해가 반복되는 삶에서 가치를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그것의 역할을 다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모든 과정에서 실패로 가득했던 인생들이 반대의 입장에서 보면 이득으로 가득했다. 프리랜서를 하는 것이 예술 활동엔 지장이 있었지만, 프리랜서 활동은 나의 금전적 문제를 해결해 주고, 그로 인해 마음이 쓰이는 곳들에 지급도 할 수 있어 나름의 또 다른 만족을 주었던 것처럼 우리의 모든 삶이 불만족에서 비롯해,  만족을 가리는 가림막이었던 것 같았다.


 어느 정도의 깨달음을 얻고 그제야 더 이상 연민을 벗어, 또 다른 형태의 작업자인 프리랜서로서의 구축을 원하고 있었다. 항상 느끼지만 무언가 목표를 세우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구축 단계가 가장 힘들 듯이 예술을 녹여 프리랜서로 구축하려다 보니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영상, 콘텐츠 등 제작 작업에 내 예술적인 것을 클라이언트의 요청과 어떻게 부합할 것인가, 혹은 어느 정도의 시장 견적과 내 시장 견적이 만날 때 가장 합리적이면서 만족할 수 있을까 등 많은 구축의 단계를 거치는 동안 나는 그래도 예술을 함으로 인해 내 프리랜서 생활이 더욱 빛날 수 있을 거라 확신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일을 구했다. 일을 제대로 하려면 명함도 필요하기에 새벽에도 출력을 해주는 곳에 가서 서둘러 명함을 제작했고, 그 명함이 헛되지 않도록 열심히 명함을 돌렸다. 아무리 디지털이 발달했다곤 하지만 발로 뛰는 것만큼 더 나은 것은 없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감정으로 교류되며 나와 같은 부류라 느낄 때 생각이 나는 것처럼 일도 그러했다.


 적극적인 행동과 만족하는 마음을 지니기 시작하니 입만 웃고 눈은 웃지 않던 나는 사라지고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더욱 자유로워졌다. 표정엔 많은 변화가, 삶에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 많은 연락을 돌린 탓인지 금세 명함은 동이 났고, 눈코 뜰 새 없는 외주 일정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림을 그리던 공간을 잠시 접어두고 내 책상을 옮겨 책상을 닦았다. 굳이 그림 그리는 곳으로 옮기려 했던 이유는 그나마 남아있는 기름 냄새와 물감 냄새는 나의 '초심'이었기에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나중에 버려지지 않기 위한 수단이었다. 냄새가 가득했지만 서둘러 책상 위를 정리하고 컴퓨터를 옮겨 외주의 일정을 정리하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으니, 문 틈 사이로 날 쳐다보던 우울과 좌절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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