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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반림 Sep 10. 2024

01. 빠르게 자란 마음의 그림자

 엄마는 너무 딱딱한 성격을 가졌다. 원래부터 조금 성격이 여성스러웠던 어릴 적 나를 강하게 키우고 싶다는 게 목적이었는지, 나에게 유독 강하게 대했던 날들이 많다. 예를 들면, 맞벌이하는 우리 부모님은 나를 돌볼 여유가 없었는데 그것에 대해 땡깡을 부릴 때면 달래주는 것보다 혼을 내는 경우가 더욱 많았다. 어릴 적엔 이해라는 개념도 몰랐기에 또다시 혼이 난 상황만이 견디기에 괴로워 눈물을 흘렸던 적이 많다. 이렇게 다소 여자아이 같던 나에게 엄마는 온갖 운동을 시키셨다. 태권도, 유도, 축구, 검도 등 많은 운동을 시켜 내 성격을 조금이라도 남성스럽게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운동을 배우고 있음에도 나는 끈 하나 제대로 묶지 못해 눈물을 흘리고 검도 학원에 가지도 못하고, 작은 강아지를 너무 무서워해 달려서 집에 가기 일쑤였다. 강인한 정신력은 세상에선 별로 생기질 않았고, 초등학교 저학년 내내 도련님 같은 느낌으로 자랐다. 그래도 승리욕이 있었던 성격이라 지는 것을 싫어했기에 체육대회에서만큼은 달리기를 꼭 잘하고 싶어 하던 천진난만한 한 아이였다.


 엄마는 어린 나에게 이기는 방법보단 즐기는 방법을 가르치고 싶어 했지만, 나는 이기는 것이 더욱 즐거워 이기기 위한 수단들과 방법을 연습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때론 무리한 행동으로 친구들을 혹은 선생님을 다치게 하거나 마음에 상처를 주는 행동을 많이 했다. 그럴 때마다 차가운 엄마의 시선과 꾸지람은 모든 것이 나의 잘못으로 이어졌구나!' 하는 자책으로 빠지게 했다. 그 자책은 모든 것에 의욕을 잃게 했고, 나는 어릴 적부터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인 양 항상 무엇을 하든 자신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나에게 책을 주며, 읽길 권했고 평소 고전문학을 좋아했기에 관련된 책들을 많이 읽었다. 책은 생각보다 재미없지만 다른 날 읽으면 재미없던 부분들이 와닿는 특이한 경험을 주는 것이기에 같은 페이지를 반복해서 읽는 것을 좋아했다. 물론 독후감을 쓰는 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마감이 다가오면 힘들었지만, 그 시간은 나에게 있어 인생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비록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인생도 재미와 재미없음의 반복이겠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고 이내 나는 아주 조금 인생이라는 것을 추측하고 있었다.


 너무 빨리 세상을 보는 눈이 떠져서일까, 많은 어른이 '애늙은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사람은 자라가며 배우는 것이라는 걸 지금은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그 당시 나는 자라가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빨리 배우면 좋은 것으로 생각했다. 어른들을 흉내 내는 것을 좋아하고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엄마는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교회에서 통성기도를 하고 있을 때, 입으로 내가 나이답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비록 웅얼거리는 듯한 기도를 하고 있었지만 단번에 들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그런 내가 싫어서 그 말이 더 잘 들린 것이라 여긴다. 나는 그때 엄마의 눈물을 처음으로 봤고 그렇게 슬피 우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지만, 위로하는 방법을 잘 몰랐기에 애써 외면했다. 하지만 그 기도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루하루 더 애늙은이처럼 변해갔다. 혼자서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을 기록하고, 라디오를 들으며 감성을 찾는 것이 좋았다. 덕분에 또래 친구들은 나더러 책 좀 그만 읽으라고 말을 할 정도니 더 이상 굳이 설명은 필요 없는 듯하다. 단편적으로 들으면 내가 굉장히 바른 아이로 자란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것은 바른 아이로 자란 것이 아니라 아이답지 않게 자란 아쉬운 광경이었다.


 생각은 나를 입 다물게 했고, 생각은 어린 나에게 부정이라는 것을 가까이 두게 했다. 그걸 보는 엄마는 자신의 역할에 한계점을 본 것처럼 나에게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게 두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엄마의 불안한 눈을 본 적이 있다.



*이미지는 핀터레스트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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