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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반림 Sep 10. 2024

03. 이혼 이야기 속 숨죽였던 나날들

 어느 설문에서 본인이 가장 많은 화를 낸 존재가 누구냐는 질문에 1위로 뽑힌 것이 '엄마'라는 그것을 본 적이 있다. 그 글을 보며 나는 어떠한가 하고 생각해 보니 나 또한 가장 많은 화를 낸 존재가 엄마였다. 그런데 왜 그동안 엄마는 그다지 큰 화를 내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어릴 적엔 컨트롤이 안 되는 나를 포기하려 선택한 외면이었을까, 자신보다 지식이 낮아 그저 이해하려 했던 것일지 생각했지만 이것은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부모란 자식에게 화를 낼 수 없는 것 같다.


 우리 집은 예전에 내가 되고 싶었던 가족의 모습에서 점점 멀어졌다. 누나는 피아노를 하는 사람이었고, 제법 잘했다. 내가 살던 동네에서도 가장 잘했으며 전국에서 3위를 차지하고도 속상하다고 울 정도로 재능이 있는 사람이어서 어릴적부터 집보다 피아노 학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리고 아빠도 사업을 하셨기에 늦는 날이 잦았고, 엄마도 말한 대로 어린이집 원장으로 일이 바빴다. 일은 점점 많아 내가 집으로 돌아올 때는 아무도 없는 찬기로 가득한 집만이 나를 반겼다. 변화를 눈치채고 있을 무렵, 엄마와 아빠는 하루가 멀게 다투고 내 생일엔 아빠가 안경을 집어 던지며 싸우는 것을 봤고, 그 기억은 지금까지 내 인생 최악의 생일로 뽑힌다.


 이젠 엄마 아빠까지 서로 말을 안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빠는 얼버무리는 성격을 가져 이번에도 얼버무리려 했지만, 엄마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엄마는 하루가 다르게 집에서 말하는 횟수가 줄었다. 그렇게 이상한 교류가 흐르던 어느 날 외할머니가 집으로 오셨고, 거실에서 엄마와 외할머니가 얘기하는 소리를 방안에서 쥐 죽은 듯이 듣고 있었다. 두 분 다 흐느끼며 대화하고 있을 때 작은 고모가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고모의 등장은 우리 집의 해체를 선언하게 되는 순간이 되었다. 외할머니는 고모가 오자마자 흐느끼는 엄마를 대변하며 '이제 내 딸이 이혼하고 싶대요.'라며 고모에게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얘기했고, 이혼이라는 이야기를 방에서 듣고 있던 나는 눈물이 흘렀다. 이혼의 뜻을 정확하겐 알지 못했지만, 대충을 알고 있던 터라 헤어짐을 뜻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못 들은 척하고 싶어 옆에 놓아진 외로운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고모와 할머니가 떠나고 엄마가 나를 불러 '엄마 아빠하고 이혼할 거야. 괜찮아?'라고 물었다. 나는 간신히 멈춘 눈물을 다시 흘리며 채 대답을 하지 못하고 방으로 돌아와 간단한 짐을 챙겨 집 밖으로 나갔다. 속이 얼마나 답답하던지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여유도 없어 계단으로 향했고 굴러떨어졌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지만 아파서인지 이별을 직감해서인지 그 자리에 누워서 몇 시간을 울어버렸고, 이웃집 아줌마가 나와 나를 달랬다.


 이날 처음으로 가족이라는 것도 언젠가 헤어질 수도 있겠구나 라는 것에 정신이 팔려 가족에게 나를 감추기 시작했다. 나는 밖으로 돌기 시작했고, 집은 점점 아수라장이 되어갔다. 이혼이 확정된 것이 아니었기에 엄마 아빠는 매일 싸웠다. 결국 두 사람은 그렇게 싸우길 6개월 뒤 이혼했다. 그 과정에 나는 배제된 듯 내 의견과 상태를 묻는 사람은 없었다. 외로움은 친구들에 더욱 기대게 했고, 당시 나와 비슷한 처지를 지닌 친구와 함께 시간을 많이 보냈다. 당시만 해도 '이혼 가정' 이라는 말은 다소 무거운 주제였기에 비슷한 친구와 얘기를 나누는 것밖에는 말할 곳이 없었다.


 친구와 나는 그렇게 힘든 나날을 집 근처 큰 도서관 정자에 누워 한숨으로 밤이 오길 기다렸다. 우리의 밤은 굉장히 좋은 기억이었다. 왜냐하면 밤까지 싸우던 부모님의 격양된 목소리들로부터 피신 할 수 있었기에 정자에서 밤이 오는 것을 보고 헤어지는 순간엔 안도했다. 이혼의 과정에서 나는 상을 받아도 말하지 않았고, 학교를 가는 시간을 새벽 5시로 앞당겼다. 부모님도 부모의 역할에서 개인적인 감정들이 앞서고 있었기에 나를 돌볼 여력이 없었을 테니 나는 짐을 덜고자 매일 집 앞에서 기도하며 밖으로 나섰다.



*이미지는 핀터레스트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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