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반림 Sep 12. 2024

나에게 잘 버텼다고 말할 용기

 내가 예술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때가 문득 떠오른다. 레이어가 하나하나 쌓이는 것이 내 생각엔 인생과 비슷했다. 그것이 굳이 고된 나에게 더 큰 고됨을 선사할 예술을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나는 아직 미비한 예술을 하는 사람이지만 언젠간 레이어가 쌓여 그것마저 괜찮아질 것이라 믿는다. 이젠 제법 실수하며 사는 나조차도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해졌으니, 스스로를 더 믿기로 했다.


 보상은 달디 달았고, 더는 없을 것 같은 만족을, 또 다른 한쪽엔 먹먹함을 주었다. 전시의 종료됨은 당분간 나의 활동이 중단됨을 선언하는 것 같았고, 그 예상은 아쉽지만 맞았다. 현실로 복귀한 나는 한동안 전혀 작업물을 만들지 않았고 일에 전념을 다 했다. 그것은 세상이 나에게 준 보상에 대한 내 나름의 고마움을 나타내는 표현이었다. 세상과 나는 서로를 이해하고 있는 듯 이제는 많은 자극을 서로에게 주지도, 무언가를 원하지도 않게 되었고 오로지 나는 '나'로서 세상은 세상으로서 그저 단순한 동력에 의해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삶의 동력에 대한 것을 이제야 조금 알게 되었지만, 그것을 멈추는 것도 배워야 함을 알고 발전하려 한다.


 이 내용의 당시 기억들만 나열해도 '참 내가 어떻게 버텼지?'라며 스스로에게 대견하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아마도 힘든 상황에서 허리를 부여잡고 절대로 무너지지 않으려 발버둥 쳤던 것이 도움이 되었던 모양이다. 가뜩이나 세상살이도 힘든데, 예술가가 되기 위해 걷는 길까지 추가하려니 힘듦이 두 배로 늘어났지만, 그것마저도 선택은 본인의 몫이었기에 감내해야 했다. 나는 그 길에서 전에도 그랬지만 여전히 자주 길을 잃곤 한다. 어떤 날에는 지나치게 나만의 세상에 갇혀 해나가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나만의 세상은 돈이 되질 않으니 상업적 목적을 가지고 예술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것처럼 말이다. 예술만이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것은 나에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함으로 유지하고 싶다.


 전시가 종료된 후에 재미있는 현상들이 많았다. 전시를 보고 여러 군데에서 연락이 왔고, 그 내용들은 내가 한 작업 방식을 가지고 자기 업체의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해달라 부탁했고, 또 다른 연락은 음악 스크리닝 쇼의 들어갈 영상을 만드는 것, 또 다른 하나는 갤러리와의 전속 계약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중 영상을 만드는 것 외에는 택하지 않았다. 이유인즉슨 내 노하우를 녹인 작업 방식을 공개하길 원하는 업체의 무리를 들어줄 의사가 없었고, 갤러리와의 계약 역시 아직은 스스로가 농익지 않았기에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 정중히 거절했다. 물론 그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계약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나 스스로를 속이게 할 것 같아 보류한 뒤, 결정했다. 훗날엔 미련이 남았지만, 현실에 어느 정도 만족했다. 계속된 외주 요청은 나를 안정권에 들어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해 줬으니 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와 고통은 따랐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도 난 그 일들을 하고 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정신이 미치거나 혹은 육체가 죽어야만 미완의 단계를 벗어나 완성이 되듯, 내 예술의 세계에서도 그 일들을 위한 과정을 거쳐 미완의 세계를 언젠가 완성할 것이다. 나에게는 그래도 자신을 믿을 힘이 있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무게는 견딜만하다. 시간이 혹은 과정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길 바라며..., 또 이 글이 언젠가 넒은 내용으로 세상에 공개되길 바라며... 그렇게 나는 무늬만 예술가가 되었다.


마침.

이전 13화 마침표 뒤엔 늘 여백이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