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기엔 방식과 환경이 모두 달랐기에 인정보단 틀림을 꺼냈다. 다름은 꺼내어 다시 깎아 끼워맞출 수는 있겠지만 틀림은 전혀 같은 문제가 아니었다. 틀린 것은 그저 틀린 것, 어떠한 사고로도 바꿀 수 없었다. 덩달아 관계의 삐걱거림 속 나는 서서히 일에도 지쳐가고 있었다. 그들은 나보다 오랜 시간 일을 해왔고 나는 기껏해야 얼마 되지 않았었기에 그들과 내 업무의 차이 또한 서로의 이해를 할 수 없는 위치였다. 하지만 일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은 월급이라는 보상이 있으니 버틸지 말지는 각자의 몫이었다. 그와 반대로 '관계'는 보상이라는 것이 없으니 버티고 말고 할 것도 없다는 말이 된다. 스스로 쌓아둔 모든 조건과 관계의 기준은 언젠가 무너진다. 유지를 위해 스스로 희생하거나 유지를 포기하며 모든 것을 포기하거나 둘 중 한 가지의 문제로 언젠가는 무너진다. 참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둘 중 하나로도 좁혀지면 안 되며 집단 전체가 정확히 자신의 다름과 상대의 다름을 모두 인정해야만 형성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아쉽게도 급진적으로 발전한 우리들의 관계는 급진적 하락을 암시했다. 딱히 서로 잘못한 것도 없고, 상처 되는 말을 한 적도 없지만 이 관계의 끝을 모두 직감했던 모양이다. 나도 언젠가 내가 이 일에 목적을 잃어버리고 튕겨 나간다면 이 관계는 무너질 것이라 생각했다. 무엇을 기대하고 바랬던 것일까, 관계의 속성 마지막은 마치 허무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허무는 무의식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가장 간결하겠지만 감정의 관점에서는 모든 것을 놓아버림을 의미한다. 억지로 참아오던 맞지 않는 관계에서 분출되지 못했던 모든 것들이 결국 통제를 잃고 허무의 단계로 향했다. 소소한 문제로는 먹는 문제, 말하는 방식의 문제 등 간단한 것부터 힘들다는 개념에서의 문제까지 다양한 문제들이 공감도 잘되지 않았다.
공감만큼 모든 인간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없다. 공감은 돈의 가치를 충분히 뛰어넘을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완벽한 타인이어도 연결선을 만들어준다. 하지만 이렇게 각별하게 생각하던 우리에게 어설픈 모양의 연결선조차도 없었던 것이다. 처음엔 그저 우리의 선이 너무 희미해서 잘 가늠이 가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선은 바닥에서 만들어져 그려진 것이 아니라 공중에서 연기와 같이 만들어지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우리는 그 연기 같은 선에 기대하고 기다리며 인내했는지 모른다. 이 관계의 내일을 위해서. 하지만 야속하게도 연기는 언젠가 사라지는 법이었고, 그것의 사라짐의 속도는 너무나 빨랐다.
불타는 마음은 연인관계에서도 금방 식는다고 말하지만,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그 불타는 관계보다 못한 연기 같은 관계를 지녔었던 것이다. 점점 대화는 단절되기 시작했고 각자의 문제들을 나눌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각자의 문제를 논할 땐 당사자를 제외한 두 명은 관심이 딱히 없었고, 자신의 문제를 논할 때만 열정적이었다. 나름의 노력을 한답시고 다시 시도했던 추억을 만드는 방법인 경험하기는 독단적 만족을 만들긴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시자를 제외한 모두는 다시 피곤함을 느꼈다. 우리는 점점 서로에게 별 기대가 없었으며 나는 완벽히 지쳐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