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그날 이후로 시간은 유난히 느리게 흘렀다. 회사 문을 나서면서, 내 마음은 어느새 두 갈래로 갈라졌다. 한쪽은 홀가분했다. 짐을 정리하며 느꼈던 묘한 해방감이 이제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다른 한쪽은 알 수 없는 불안으로 가득했다. 그들의 눈물, 그들의 침묵. 그 순간만큼은 확고한 선택이라 믿었지만, 그들의 눈동자가 내 가슴을 후벼 파듯 다시 떠오를 줄은 몰랐다.
‘어쩌면 조금 더 기다렸어야 했을까?’
이 질문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를 위한 선택이었으니 후회할 이유가 없다고 스스로 다짐했지만, 마음은 자꾸만 그들과의 마지막 순간으로 되돌아갔다. 내 손은 차가운 문 손잡이를 잡고 있었지만, 그때 나는 이미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은 분명 상처받았을 것이다. 내게 전하고 싶었던 수많은 말들을 억누른 채, 차가운 침묵 속에서 우리 모두는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천천히 길을 걸었다. 발걸음은 가볍지만, 내 마음은 마치 무거운 돌덩이를 끌고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길거리엔 사람도 많지 않았다. 가로등 불빛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고, 그 길 끝엔 아무것도 없었다. 목적지도 없는 발걸음이었다. 그저 나 자신과 마주하기 싫어 길을 떠나는 것이었다. 가슴속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그날의 감정이 요동치고 있었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피하려고만 했을까?
내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했던 것은 그들과의 관계였을까, 아니면 나 자신에 대한 부담감이었을까. 오랜 시간 동안 쌓인 책임감과 스트레스가, 결국 나를 이 자리까지 몰고 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떠난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날 회사에서의 마지막 순간, 그들과 나눈 대화는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반복되고 있었다.
‘이젠 더 이상 같이 무언가를 하기 힘들어요.’
이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분명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정확히 전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 그 순간의 나는 너무 무책임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무거운 책임을 피하고 싶어서 내뱉은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눈물은 그저 내 이별에 대한 슬픔이 아니었다. 아마도 내가 젊음이라는 핑계로 모든 걸 도망치듯 정리해버린 것에 대한 실망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느낀 상처는 아마도 내가 남겨둔 미련의 흔적이었을 것이다.
집에 도착해서도 나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문을 열어 들어가면서도 한참 동안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집 안은 고요했다. 불을 켜지도 않았다. 어둠 속에서 나는 스스로와 대면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짐을 싸고 떠난다고 해서 그들과의 관계가 깨끗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침대에 몸을 던지고,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천장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는 내 마음과 닮아 있었다. 억눌린 감정들이 밀려왔고, 나는 그 감정들을 이겨내기보단 그저 몸을 맡겼다. 이젠 더 이상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 바랐던 건 자유가 아닌, 휴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떠올랐다. 짐을 정리해주던 그들의 모습이, 그리고 그들이 마지막으로 내게 건넨 말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아마 그들도 나처럼 이 일을, 이 관계를 내려놓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달리 그들은 끝까지 남아 있었다. 그들의 눈물이 그 증거였다.
그들의 눈물은 내가 떠난 후에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마도 그들은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나처럼 지치고, 나처럼 무언가를 내려놓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달리 그들은 그 자리에 남았고, 끝까지 그 책임을 다했다. 나는 그들보다 먼저 떠나왔지만, 그 순간부터 내 마음속에서 그들과의 이별은 끝나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종종 그들이 했던 말과 표정을 떠올린다. 그들과 나눈 마지막 대화, 그날의 공기, 그들의 눈물. 모든 것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 순간에 얽매이지 않기로 했다. 그들과의 이별이 나를 정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선택한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한다. 이 길이 어디로 향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다. 내가 회피하려 했던 건 결국 내 자신이었다. 그들과의 이별은, 그 관계가 끝나버린 것이 아니라 내가 더 이상 나 자신과 대면하지 못하고 도망쳤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이별은 그저 표면적인 것이었고, 내가 진정으로 떠나온 것은 나의 내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