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기대를 해도 실망으로 자리할 땐 그것은 작은 기대를 무색하게 할 만큼 크게 다가온다. 그것은 마치 연인 사이같이 기대하게 하고 실망하길 반복한다. 모든 원하는 일은 기대하고 무리를 하고, 그 일을 완벽해 해나기 위해 멈추질 못하고 너무 많은 몰두를 한 나머지 힘을 빼는 방법을 모르게 된다. 그러다 보면 그 결과는 완성도가 오히려 떨어져 보일 때가 있다. 분명 오랫동안 공들인 것이 더 낫다는 말들에 대한 합의적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물론 모든 일이 그런 것이 아니고 디자인, 시각예술의 영역에서 이야기다.
첫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밤낮없이 일했다. 자동차 관련 영상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무언가 잘하고 싶다는 생각에 스스로 무리함을 택했다. 더 이상 나올 것도 없다고 느낄 만큼 나를 갈아 넣었고 결과물은 나름대로 안정적이고 업체에서 원했던 대로 완성이 된 듯 보였다. 나는 전송까지 완료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때부터 엄청난 또 다른 시작의 문을 연 셈이었다. 업체는 내가 보낸 영상을 순식간에 확인했고, 아침부터 부재중 전화가 5통이 와있는 걸 확인했다. 피곤함에 절어있던 나는 확인하지 못했고, 일어난 순간 경악하고 말았다. 문자엔 아주 친절한 말투로 '작가님 수정 사항이 있어서 연락드립니다. 아주아주 감사하지만 연락해 주세요.' 친절에 섞인 암묵 전 협박같이 느껴졌지만 뭐 당연히 수정할 것을 알고 있었던 터라 그다지 별일 아니라 여기며 전화를 걸었다. 친절했던 전화와는 달리 엄청나게 다급한 목소리로 '작가님 결과가 너무 좋아서 하나만 더 내일까지 해주실 수 있을까요?'라는 말을 내뱉었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은 알고는 있었지만, 내일까지 하나 더 하라니…. 적지 않은 페이이긴 하지만 나는 왠지 그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내 거절에도 불구하고 업체는 갑자기 첫 외주비용의 두 배를 제시하며 나의 닫혀있던 마음을 열어버렸다. 아무래도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 엄청난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내 외주는 첫 번째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동시에 두 번째 작업으로 들어서게 했다.
역시 금융 치료가 답이었다. 선입금 50%를 입금받는 순간 피곤함은 어이없게도 내일로 미룰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3d 제작 프로그램을 켜고 한 손에는 마우스를 쥐고 한 손에는 토스트를 꽉 쥔 채 간단한 식사를 하며 작업에 몰두했고 나는 생각보다 이른 시간 안에 1차 시안들을 작업하기 시작했다. 3d 모델링 작업이 서툴렀지만, 그날만큼은 그 어떤 3d 아티스트보다 빨랐던 것 같다. 그림을 그릴 땐 받지 못했던 금액들이었기에 어찌 보면 내가 하려는 예술보다 더 성의와 깊이를 가지고 작업을 주도할 수 있었고, 2배의 페이 덕분인지 실력도 단기간에 성장하는 느낌에 한편으로는 회의를 느꼈다. 스스로 질문하기를 '내가 이렇게 열심인 적이 있었나?' 하며 물었고, 금세 '아니.'라는 대답을 만들어 버리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이미 진행된바 작업은 10시간이 채 남지도 않았으며 작업이 잘되고 있는지 확인차 오는 업체의 전화는 정말 많았다. 물론 업체 입장에서는 해결해야 하는 일정이 있기에 당연할지 모르겠으나 작업자의 입장에서는 전화하는 시간 동안 작업을 몰두하면 더 나은, 빠른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 터라는 아쉬움과 답답함이 공존했다. 이상하게도 작업을 할 때면 시간은 물 흐르듯 흐르는 미스터리 한 현상을 겪곤 한다. 내가 우주의 세계를 간접 체험하는 것처럼 나는 멈춰있고 세상은 돌아가는 듯한 영화와 같은 경험에 빠져버리곤 했다. 재밌는 것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기에 외주 작업을 할 때에도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일상적이다. 나는 외주 하는 시간만큼은 시공간의 미스터리함을 지닌 공간에 있다고 생각하며 작업하는 공간을 '우주선의 안'이라 생각한다.
내 '우주선의 안'은 최첨단 장비 따윈 없으며 고작 의자와 컴퓨터, 모니터, 의자, 공책 등 기본적인 디지털 기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그 공간만큼 순간적인 집중력과 돈을 벌 수 있는 공간은 없기에 나에게 있어 그 책상 앞은 아주 경제적이고, 머리를 쥐어짜는 공간이었다. 어찌 보면 나라는 인간의 인간다움을 만드는 곳이 바로 책상이었다.
마감의 시간은 너무 빨라 나는 종료 10분 전 완성할 수 있었다. 완성하고 메일로 전송한 순간 갑자기 몸이 부서질 듯 아파졌고, 이내 나는 감기를 얻었다. 그렇게 머리에 나는 열로 바닥에 쓰러져 있을 무렵 잔금이 입금됨과 동시에 감사의 인사가 메신저를 통해 장문으로 도착했고, 그렇게 내 첫 번째 두 번째 연달아 발생한 외주는 끝이 났다. 얼마만의 수입이었을까 순간적으로 너무나 울컥하는 마음에 흐를지도 모를 눈물을 대비하기 위해 고개를 들고 세면대 앞으로가 닦아낼 준비를 했다.
이렇게 나는 내 생계와 예술 활동을 위해 영상 제작 프리랜서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