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방에 앉아, 하루를 되짚는 것만큼 비효율과 감정의 요동을 주는 것은 없다. 하지만 매일 그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배가 되어 어느 날 한꺼번에 터지는 불상사를 일으킬 수 있기에 방 안에 앉아 사색을 즐기는 시간을 나름대로 충분히 갖는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다 보면 나를 꾸짖는 일을 쉽고, 그 끝에 마주하는 것은 비판이다. 자신을 비판하고 그 비판의 내용을 수용하며 인정하는 것은 때로는 남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보다 큰 용기가 필요했고, 그 용기가 사그라들지 않게 유지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집에 돌아와 내 취향일지도 모를 무채색으로 가득한 옷장을 보며 갑자기 변화한 일상들에 회의감이 몰려 주체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달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모든 것이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색으로 가득 차 있었던 나의 삶은, 어느 순간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그 속에 숨어있던 나 자신을 발견하게 만들었다.
미팅을 앞두고 베이지 색 옷을 구매하며 내심 새로운 변화를 기대했지만, 그 변화가 준비가 안된 나에게는 어색함과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어딘가 모르는 미로길에 접어든 사람처럼 나는 계속된 불안을 생성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나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순간을 포착한 듯한 느낌이었다. 살아가면서 많은 혼돈과 중심을 잡아가며 살아가는 보통의 생각을 가진 한 명의 인간이 자신을 가장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결정적인 계기를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또한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는다는 것 자체도 자신의 본질을 잃거나, 어긋나게 하고 있다는 뜻과 같았고, 미팅 당일 옷에 쏟았던 커피의 얼룩은 오히려 나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게 만들었다.
미팅 자리에서의 내 모습은 어쩌면 나의 본질을 한참 벗어난 겉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미술작가로 이해하고 있었고, 나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을 꾸며냈는지 모른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면의 나를 꾸짖어야만 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정말로 추구하는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그동안 내가 무채색 옷을 입고 살아왔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며 나 자신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스스로의 비판시간은 끝도 없이 계속되었고, 시간은 점점 흘렀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검열하고, 다시금 정체성을 찾는 행위를 매일 반복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그대로 행하고 있는 나에게 나름의 위로를 건넸다.
그러나 비판은 나를 멈추게 하지 않았고, 스스로의 비판을 원동력으로 삼으려 방 안 구석에 가장 불편한 자세를 취해 나를 감싸야만 했다. 결국 나는 미팅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얻었고, 그것은 나에게 또 다른 도전을 안겨주었으니 말이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간 미팅에서의 실패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려는 나의 의지를 그나마 칭찬한다. 동시에, 그 자리에서 나의 불완전함을 이해해 준 업체 사람들에게도 고마움을 느꼈다. 그들은 내 능력과 열정을 선택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좋아했던 일로 바꾸게 만든 세상의 흐름을 생각했다. 나는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할 수 없는 일들을 떠올리며 그 과정에서 가장 가늘고 딱딱한 말의 몽둥이를 만들어 스스로를 자책하며 구박했고, 세상에 대한 불만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듯 마무리는 자신을 감싸 안아야 했다. 그저 살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비록 지금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살아가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본질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스스로에게 인정해주고 싶었다.
나는 이제 내 안의 나를 꾸짖으면서도, 남들을 감싸 안아야 하는 인간이 되었다. 그것은 나에게 큰 성장을 주며 타인을 바라보는 감정과 시선, 자신을 대하는 엄격한 태도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어쩌면 세상은 나에게 계속해서 맞지 않는 옷을 입게 할지도 모르지만 이 모든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비록 그날 베이지 색 옷을 입으며 나의 본질에 맞서 작은 반항을 했지만, 자책을 통한 이해와 자신의 굳건한 태도를 만드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날 이후 나는 지금까지도 본질에 대해 매일같이 생각하고 사색을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