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입는 여자'
청바지 한 벌 쯤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 않을까.
나 역시 톤별, 기장별, 핏별로 다양한 청바지를 갖고 있으며, 계절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즐겨 입는다. 이렇게 청바지는 남녀노소 누구나 일상적으로 착용하는 가장 대중적인 옷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나는 이전 글 『7화. 청바지를 입고 맥주 한잔』에서 청바지를 다룬 적이 있다. 청바지는 본래 17세기 이전 항만 노동자와 선원들이 입던 실용적인 작업복이었다. 거친 노동을 마친 이들은 청바지를 입은 채로 항구의 펍에 들러 맥주 한 잔으로 고단함을 달래곤 했다.
이러한 청바지의 문화는 이후 하위문화로 이어지며 의미를 확장했다. 특히 1960년대 후반 하드 모드(hard mod)에서 성장한 스킨헤드(skinhead) 문화가 대표적이다. 초기 스킨헤드는 자메이카 출신 흑인 노동자들과 영국 항구 도시의 백인 항만 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은 육체노동을 기반으로 한 거친 기질을 공유했고, 노동의 고됨을 잊기 위해 함께 펍에서 맥주를 즐겼다. 그들의 몸 위에서 청바지는 노동과 연대 그리고 자유의 상징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청바지는 단순한 노동복을 넘어 청년 문화의 언어가 되었다. 1960~70년대에 히피와 반전 운동 속에서 청바지는 평화·자유·반전의 상징으로 재호명되었다. 몸이 직접 말하는 옷, 저항을 몸으로 표현하는 옷이 되었다.
한편 청바지는 섹시함을 드러내는 가장 강렬한 옷이기도 했다. 타이트한 청바지는 허리–엉덩이–다리 라인을 자연스럽게 드러내 신체를 강조했고, 이는 곧 섹슈얼한 매력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리바이스(Levi’s)와 캘빈 클라인(Calvin Klein)의 광고는 이를 잘 보여준다. 청바지를 입은 여성 모델은 몸의 곡선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데님을 통해 관능적이고 주체적인 이미지를 구축했다. 영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 속 마릴린 먼로 또한 터질 듯한 데님 팬츠를 통해 강렬한 관능미를 과시했다.
하지만 청바지가 언제나 자유만을 상징한 것은 아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호메이니(Ayatollah Ruhollah Khomeini) 체제가 들어선 이란에서는 청바지가 문화적 오염으로 간주되었다. 국가의 정체성이 반(反) 서구·반미 정체성을 중심으로 재편되며, 청바지는 미국 대중문화와 자유주의적 삶의 방식, 성적 자기 결정권의 상징으로 해석되었다. 특히 여성에게는 서구적·세속적·중성적 복장으로 간주되어 착용이 금지되거나 강력히 단속되었다.
이란 정부는 여성의 옷차림을 도덕과 순결의 문제와 연결시키며 몸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는 루즈한 멘토(manto)와 폭넓은 바지 그리고 히잡을 강요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몸에 밀착되는 청바지는 국가가 규정한 ‘도덕적 복식’을 어긋난 위험한 옷으로 여겨졌다. 1980-90년대 초반에는 거리에서 청바지를 입은 여성들이 체포되거나 폭력을 당한 사례도 있었다. 이때 청바지는 더 이상 노동이나 자유의 상징이 아니라 금지된 근대성의 기호였다.
청바지는 이처럼 자유와 금기라는 상반된 위치를 오가며 시대의 긴장 속에서 재해석되었다. 우리 사회에서도 1970년대 소위 한국식 히피라 불리던 청년들이 청바지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자 이를 불온시하는 시선이 존재했다. 결국 청바지는 공간과 시대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품는, 입는 사람의 위치와 시대가 얹는 의미를 드러내는 하나의 서사적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