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수기-1
열네 살이 되던 해, 모든 것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여섯 해를 보낸 소학교를 떠나, 헐렁한 학생복을 입고 낯선 교문을 지났다.
칠판 냄새, 석탄난로의 매캐한 연기, 바람에 펄럭이는 교기(校旗).
그 모든 것이 새로웠다.
중등과에 오른다는 것은,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발을 들이는 일이었다.
그때의 나는 그것이 대단한 변화라 믿었다.
그 무렵 나는 세 해째 학급의 대표를 맡고 있었다.
사람들의 신임을 얻는 법을 일찍 터득한 덕이었다.
열두 살 무렵, 나는 ‘착한 아이’의 얼굴을 하나 만들어냈다.
그 가면을 쓰고 있으면, 누구도 나를 의심하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누군가 다투면 내게 와 하소연을 했고,
공책을 잊은 날이면 내 노트를 빌려갔다.
그런 사소한 친절로 마음의 문은 쉽게 열렸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를 좋은 사람이라 믿었다.
책 한 권을 빌려준 것만으로, 운동회에서 함께 깃발을 들 친구가 정해지는 걸 보면,
사람은 참 단순한 존재였다.
조금만 건드려도 곧 마음을 내보였다.
스스로 약점을 털어놓고, 내게 칼을 쥐여주는 셈이었다.
그런 나에게도 불미스러운 일이 닥쳤다.
중등과 3학년, 내가 늘 써오던 방식이 독이 된 해였다.
한 여학생과 친하게 지냈는데, 그녀에게는 이미 사귀는 상급생이 있었다.
그는 교내에서 이름난 불량한 무리의 일원이었다.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붙어 다닌다는 소문이 퍼지자,
그는 나를 못마땅히 여겼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질투쯤으로 생각했고, 금세 잊힐 일이라 여겼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복도에서 어깨를 부딪히거나
내 책상에 낙서를 남기는 일이 잦아졌다.
나는 고민 끝에 결심했다.
내 체면이 떨어지기 전에, 사람들이 나를 불쌍히 여기기 전에
내가 먼저 나서야 한다고.
그날 저녁, 그는 운동장 뒤편 창고 근처로 나를 불렀다.
해가 지고, 먼지 낀 교정은 희미한 붉은빛에 물들어 있었다.
바람에 깃발이 느리게 흔들렸고, 철제 창틀 사이로 석양이 비쳤다.
나는 그를 향해 걸었다.
심장이 쿵쿵 뛰었고, 손끝이 식어갔다.
그가 웃었다. 비웃음이었다.
그 웃음은 열두 살 무렵, 복수를 마친 뒤
내가 짖던 표정과 닮아 있었다.
그 순간, 이성이 끊겼다.
나는 달려들었다.
다시는 나를 얕보지 못하게 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주먹을 휘둘렀고, 몇 번의 충돌 끝에
그는 땅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그 얼굴을 본 순간, 묘한 쾌감이 스쳤다.
네 해 전 처음으로 누군가를 꺾었을 때 느꼈던 그것이었다.
그날 이후, 사람들은 나를
“온순하지만 결코 약하지 않은 학생”이라 불렀다.
불량배들도 태도를 바꾸었다.
아침이면 먼저 인사를 건넸고,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처럼 굴었다.
물론 나는 싸움을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상대가 생각보다 약했을 뿐이다.
그 후로는 다시 주먹을 쓴 적이 없다.
다만 가끔, 그 학생의 반 앞을 지나칠 때마다
교실 구석에 앉아 고개를 숙인 그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내 안 어딘가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꿈틀거렸다.
그건 죄책감도, 연민도 아니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쾌감과 불안이 뒤섞인, 묘한 떨림이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7444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