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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지코에서 가을을

EP. 10

by 추설

나는 맥주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당연하죠.
그쪽도 저를 감정 없는 바보로 봤나 봐요?”

그는 정말 의아하다는 얼굴을 했다.
나는 그 표정이 억울해서, 말을 이었다.

“뭐예요, 그 얼굴은.
저도 연애해봤거든요?
얼굴도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고,
키도 여자치고는 큰 편이고… 인기 많았다고요.”

말 끝이 조금 작아졌다.

“지금이야 뭐…
일에 치여 살다 보니까,
그런 건 좀… 오래됐지만.”

아주 잠깐, 어색한 공기가 스쳤다.
그가 먼저 말을 건넸다.

“알았어요. 그렇다고 뭐 기죽을 필요는 없지요.
쥐구멍에 숨을 듯한 목소리네요.”

얼굴이 뜨거워졌다.

“쥐구멍은 또 무슨 쥐구멍이에요. 참.”

그는 대답 없이 입꼬리만 올렸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그보다, 그쪽은 정말 친구가 하나도 없어요?”

그는 듣자마자 시선을 내렸다.
잠깐 생각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없다니까요.
그쪽이 보기에도 그런 사람처럼 보인다고 했잖아요.”

말투가 약간 날카로워졌다.

“미안해요.
그런데… 사실 없다고는 해도, 정말 친구가 한 명도 없는 사람을 실제로는…”

“없다니까요. 굳이 있을 필요를 못 느낀다고요.”

그는 맥주캔을 옆으로 밀었다.

“그만하죠. 다른 얘기 해요.”

괜히 물어본 것 같았다.

“정말 미안해요. 놀리려던 건 아니었어요.
그냥… 자연스럽게 제 얘기를 꺼내려다 보니.”

그는 나를 잠시 바라보다 말했다.

“아뇨, 저야말로 미안해요.
저는 진짜 친구 하나 없고, 혼자 지내는 걸 좋아해요.
그러다 보니 그런 부분에서는 대화 상대가 못 돼서… 미안해요.”

나는 더는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했고,
맥주캔을 들어 올려 한 모금 마시고는 내려놓았다.

방 안이 조용해지니,
창밖으로 빗소리가 조금 더 선명하게 들렸다.

그가 입을 열었다.

“뭔데요.”

“네?”

“그러니까, 뭔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요?”

나는 조금 당황했다.

“아… 아니에요.
그쪽이 불편한 얘기인 것 같아서.
이 얘기는 이제 괜찮아요.”

그는 한쪽 눈썹을 살짝 올렸다.

“괜찮다니요.
괜히 궁금하잖아요.”

나는 웃음을 삼켰다.

“… 정말 별거 아니에요.
그냥, 저도 인간관계 별로 없어서…
괜히 공감 비슷한 거 하려다가.”

그는 맥주캔을 내려다보았다.

“그런 얘기, 괜찮아요. 불편한 거라기보단…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요.”

그를 보고 있으면
호기심이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또 물어보고야 말았다.

“실례가 안 된다면…
혹시, 무슨 일 있었나요?”

그는 그제야 입꼬리를 올려 피식 웃었다.

“오늘, 실례되는 질문 참 많이 하시네요.
하지만 이번 건… 정말 말하기가 조금 어려워요.”

맥주캔을 한 번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나중에, 그쪽이랑 제가 또 만날 일이 있다면.
그때는 생각해 볼게요.
아마… 그런 일은 없겠지만.”

그 말에 조금 시무룩해졌다.
그래도 괜히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뭐예요, 그렇게 딱 잘라 말하면 제가 너무 궁금하잖아요.”

그는 고개를 살짝 젓더니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별로 대단한 얘기도 아니고, 재미도 없을 테니까.”

나는 더 묻지 않았다.
그저 맥주캔을 들어 올렸다.

“그럼 일단… 짠이라도 한 번 더 할까요? 괜히 분위기 가라앉았네.”

그는 짧게 웃었다.

“그러죠.”

맥주캔이 가볍게 부딪히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나는 취기 때문인지
그와 좀 더 가깝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낯간지러운 말을 건넸다.

“있잖아요, 저기 그…”

“네?”

“그…”

“뭔데요, 또 말을 왜 하다 말아요?”

나는 숨을 한번 고르고 말했다.

“괜찮으면…
저라도 괜찮다면, 친구 할래요?”

그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답했다.

“아뇨?”





표지.jpg '모지코에서 가을을'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이야기 『세상에 없던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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