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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지코에서 가을을

ep.15

by 추설

후쿠오카에서 모지코로 이동해야 해요.”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죠.

진짜 어이없네.”
그는 짧게 웃으며 말했다.
“그쪽 이해력이 좀 부족한 거예요.”
“… 지금 뭐라고 했어요?”
“됐고요. 식사나 하세요.”

그렇게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헤어지고는 며칠이 지나, 약속했던 날의 아침이 되었다.
공항에서 마주한 그는, 여행을 떠나는 사람의 얼굴이라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었다.
처음 봤을 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요.”
“늦는 것보단 낫잖아요. 그쪽도 꽤 일찍 왔네요? 여행이라 그런지 설레긴 했나 봐요?”
그는 귀찮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설레긴요. 애도 아니고, 그냥 가니까 가는 거죠.”
“말은 언제 이쁘게 할 건지, 진짜 한 번 보죠.”

그렇게 우리는 출국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 탑승구로 향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한참 동안 우리는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나도, 그도, 그저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가끔 그를 불러봤지만 창문 너머로 시선을 고정한 채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이 하는 건지…

시간이 꽤 흘러, 비행기를 탄 지 오십 분쯤 됐을 때였다.
구름을 뚫고 내려오자, 창 아래로 파란 바다가 펼쳐졌다.
그때 그가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이쯤이면… 한국이랑 일본, 사이쯤 되려나요. 아무것도 안 보이고, 그냥… 파랗네요.”
나는 그 바다를 함께 바라보며 대답했다.
“사이보다는 더 오지 않았을까요? 찾아보니까 후쿠오카 금방 도착하던데.”
그는 나를 보며 미간을 살짝 좁히더니 대답했다.
“아-네.”

나는 약간의 미소를 지었고, 그는 다시 창에 보이는 바다를 보며 알 수 없는 혼잣말을 했다.
“이쯤 정도려나.”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은 채 그에게 물었다.
“뭘요?”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 후 시간이 조금 더 흐른 후 착륙 안내 방송이 들리고는 우리는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해 입국심사를 마치고 세관을 넘어 공항 로비까지 왔다.
드디어, 지긋지긋한 사무실을 탈출해 해외를 왔다는 게 아이처럼 들떴다.
“저기요, 저기요.”
그는 캐리어를 끌며 나를 힐끔 돌아봤다.
“왜요?”
“우리 이제 진짜 일본에 왔네요.
그쪽 덕분에 후쿠오카까지 왔다고요. 고마워요.”
그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도착도 안 했는데요.”
“후쿠오카도 일본이잖아요.”
“가야 할 곳은 따로 있잖아요.”

그는 시계를 슬쩍 확인한 뒤, 조용히 말했다.
“일단 모지코까지 바로 이동할 건데, 괜찮죠?”
나는 피곤함이 밀려온 몸을 느끼며 말했다.
“근데… 우리 새벽부터 움직였잖아요.
피곤하지 않아요? 커피라도 한 잔 하고 가요.”
의외로 그는 내 말에 아무렇지 않게 가볍게 끄덕였다.
그 모습이 조금 낯설었다.

우리는 공항 1층에서 바로 보이는 카페로 향했다.
그가 자연스럽게 카운터 앞에 섰다.
그러고는 익숙한 일본어로 주문을 시작했다.
그 모습이 조금 놀라웠다.
이 사람이 일본어를 이렇게 유창하게 할 줄이야.
어쩐지, 모르는 얼굴을 보는 기분이었다.

다만—
가게 점원이 워킹홀리데이로 온 한국인이라는 게 유감이었다.
그가 일본어로 주문을 마치자,
점원이 한국어로 말했다.
“한국인이세요?
아메리카노 두 잔으로 드릴게요.
번호 불러드리면 왼쪽에서 받아주시면 됩니다.”

나는 작게 웃었다.
그는 괜히 민망한지, 턱을 만지며 말했다.
“괜히 일본어로 말했네요. 일본에서 일본어로 말을 하는데 한국어로 주문을 받는다니.”
“아뇨, 멋있었어요.
새로운 모습 봤네요.”
그는 아무 대답 없이 시선을 아래로 떨궜고,
그 사이 우리 번호가 불렸다.

나는 트레이를 들고 조용한 창가 자리에 앉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사람의 모르는 얼굴을 조금 더 알게 된 것 같은 기분.
그 작은 발견이,
괜히 좋았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근데, 이번 여행… 저는 워낙 급하게 온 거라 계획도 잘 모르고 따라왔잖아요.
어디 어디 갈 건지, 대충이라도 좀 알려주세요.”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컵을 내려놓고 천천히 말했다.



'모지코에서 가을을'과 이야기를 공유하는 작품 『세상에 없던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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