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지던 이름들 사이에서, 끝나지 않은 마음에 대하여
눈이 내리던 졸업식이었다.
세상은 하얗게 잠겨 있었고,
그 속에서 우리는 마지막 이름을 불렀다.
손끝이 시렸는데도 이상하게 따뜻했다.
체육관 스피커에서는 졸업 노래가 흐르고,
하얀 숨들이 공기 속에 흩어졌다.
사람들은 서로를 안으며 웃었지만
그 웃음 아래엔 모두 같은 마음이 있었다.
‘이 순간이, 정말 끝일까.’
너는 교문 근처에서 내게 손을 흔들었다.
눈이 머리카락에 닿을 때마다
순간순간의 기억들이 덧씌워졌다.
그때 나는 알았다.
어떤 이별은 울음보다 조용하다는 걸.
“사진 한 장 찍을래..?”
그 말로 시작된 마지막 장면.
너는 조금 웃었고,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눈발이 렌즈 앞을 스쳐 지나갔고
우리는 그 뒤로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졸업은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누군가를 완전히 떠나는 일은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시간이 흘러도, 계절이 바뀌어도
그날의 공기와 냄새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며칠 뒤,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가
너에게 빌려줬던 펜을 발견했다.
“돌려줘야겠다.”
그 짧은 생각만으로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결국, 그 펜은 아직도 내 서랍 속에 있다.
가끔 눈이 내리는 날이면
나는 무의식적으로 하늘을 본다.
그날의 운동장, 그때의 목소리,
내 옆에 서 있던 너의 그림자가
눈발 사이로 번져온다.
사람은 자주 잊는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그날의 교실,
그 안의 온도와 웃음은
아직 내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다.
졸업은 끝이 아니었다.
다만, 그날의 눈처럼
우리의 마음도 잠시 흩어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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