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이 남긴 짧지만 가장 두꺼운 계절
가을이 되면 늘 그 시절이 생각난다.
햇살이 부드럽고, 공기가 달콤하던 열아홉의 가을.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지만
모든 게 그때 시작되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매일 학교와 집 사이를 오갔다.
하루는 유난히 하늘이 맑았고,
운동장에는 낙엽이 바람에 밀려다녔다.
그런 날이면
이상하게 네가 떠올랐다.
너는 언제나 조용했다.
교실 한쪽, 창가에서 책을 읽는 모습이 익숙했다.
나는 이유 없이
그 장면을 자꾸 바라보게 됐다.
딱히 말을 나눈 적도 없었는데
그냥 네가 거기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좋았다.
그 시절의 감정은 단순하고,
그래서 더 복잡했다.
좋아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매일이 그 말의 다른 형태였다.
아침 인사, 짧은 눈인사,
그 모든 게 마음의 신호였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나는 점점 불안해졌다.
이 계절이 끝나면
우리의 거리가 멀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언젠가,
“겨울 오기 전에 말해야지”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졸업을 앞둔 11월,
수능이 끝난 날 운동장 벤치에서
너는 친구들과 웃고 있었다.
그때도 나는
멀리서 바라보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그 후로 한 번도
너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을이 오면 그 이름이 마음속에서 울린다.
마치 오래된 노래처럼,
멜로디는 흐릿한데 가사는 선명한 그런 느낌.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하나의 계절을 품고 산다.
나에게 이 계절은
아직도 열아홉의 가을이다.
너를 좋아하던 마음이
아직도 그곳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흘러
우리 모두 어른이 되었지만,
그때의 공기와 냄새는 여전히 남아 있다.
창문을 열면
가을바람이 불어오고,
그 바람 속엔 언제나
너의 이름이 섞여 있다.
넌 잘 지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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