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stwood heights DR. Virginia. U.S.
이 집에 들어온지 이제 꼭 한 달이 되었다. 덜레스 공항에 내려 이 집 1년 렌트 계약을 마치기까지 2주는 마치 2달처럼 느껴졌는데, 이 집에서 산 지난 한달은 정말이지 하루같다.
집 주소가 익숙하지 않아 한동안은 휴대전화 바탕화면에 주소를 찍은 사진을 걸어두고 주소를 적어야할 일이 생길 때마다 열어보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누가 영어로 물어봐도 술술 나올 정도로 이제는 이 집이 내 집 같다. 거실과 부엌이 연결돼 있고, 추가로 방 하나가 달린 10평 남짓한 아파트. 10살 아들과 둘이 살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최대한 미니멀리스트로 살아보려고 의자도 딱 두 개, 책상 하나에 식탁 하나가 있고 방에는 싱글 침대 2개만 있다. 의자가 2개뿐이라 아이는 책상에 앉을 때와 식탁에 앉을 때 자기 의자를 계속 이리 저리 날라야 하고, 손님이라도 오시면 나는 서 있거나 아니면 쓰레기통을 의자 삼아 걸터앉곤 한다.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미니멀리스트' 대목에서 마시던 물을 뿜었을지도 모르겠다. 극강의 맥시멀리스트로 살아온 나였기에 '저 인간이 미니멀?!'하며 반신반의할 것이다. 사실 여기서만큼은 미니멀리스트가 돼야겠다고 마음 먹은 건 그닥 자발적 이유만은 아니다. 집이 좁다는 현실적 제한과 함께 내년 이맘때쯤에는 귀국해야 하는데 짐들을 싸가져가는 덴 한계가 있다는 점, 물가가 너무 비싸 한국에서처럼 함부로 사서 쟁여둘 수 없다는 점 등이 반 강제적으로 나를 미니멀리스트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집에 여백이 있으니 참 좋다. 마흔 다섯 평생 별로 느껴보지 못했던 경험이다. 친정집도 나의 첫 신혼집도 여기보다 훨씬 넓었지만 여백이 그다지 없었다. 맥시멀리스트로서의 삶은 매우 피곤했다. 늘 정리하느라 정리가 안되었고, 그 안에 있으면 쉬는 것도 쉬는 게 아니었던 것 같다. 알면서도 없애고 버리는 게 쉽지 않았다. 언젠가는 필요할지도 몰라, 내가 이걸 얼마나 비싸게 샀는데 버릴 순 없어, 하며 정리하고 쌓아놓고 또 그 정보를 머릿속에 저장하느라 허비한 시간과 에너지들. 지금은 그런 것들이 눈 앞에서 싹 사라지고 나니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음식도 먹을 만큼만, 먹을 수 있는 만큼만 사고 휴지나 세제, 그릇도 딱 필요한 만큼만 사기. 벌크로 사면 싸다고 한꺼번에 많이 사는 거, 언젠가 필요할테니 온 김에 사두는 거, 넌 예쁘니까 나랑 같이 집에 가자 등등 오랜 시간 내 안에 굳어진 습관적 사고를 걷어내는 중.
부디 1년 뒤 이 집을 정리할 즈음에도 내 시야에 들어오는 집안의 모습이 지금 이 글을 쓰며 보고 있는 모습과 다름이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