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인간의 명상일기 21
눈을 감고 자리에 앉았다.
요즘 출근 전 3시간 정도가 확보되는데
딱히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다 집을 나서는 것 같아
뭘 해야 하나 고민이다.
운동을 해야 하나.
눈을 감고 이런저런 상념 속을 돌아다니다가
유독 끈질기게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 글자를 발견했따.
'헤어지면 어떡하지'라는 글자였다.
그 글자를 가지런히 세워두고 멀리로 보내보았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멀리, 더 멀리.
그렇게 거리를 두고 보니 그 글자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글자였다.
내것이 아니구나.
그동안의 어리석음과 묘한 안도감에 눈물이 나왔다.
그것은 아무 힘도 없는 아무 의미도 없는 글자에 불과했는데
내가 그것을 굳이 나에게로 끌고 와서
자리를 내어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멀리에 세워두고 바라보고 있으니
그 글자는 갈수록 힘이 없어지고 허물어져갔다.
저 글자를 이만큼이나 지탱해온 것 역시 나 자신이었다.
안녕.
너는 아무것도 아니었어.
잘가.
오늘 나는 '헤어지면 어떡하지'와 작별했다.
또 찾아올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조금 더 거리를 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긴다.
깨달은 것을 금방 까먹어버리는 나지만
깨닫고 또 깨닫다보면
그 깨달음의 자리가 만들어질 수도 있는 것 아닐까.
헤어지면 어떡하지가 한 자리를 차지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