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찌르며 도전하듯 치솟아 오른 우람한 레드우드의 군집, 그 사이로 군대 도열하듯 터널같이 어두운 수림을 빠져나가면 무심한 채로 경계를 지키며 흐르는 검은 잉크빛 강물이 바위에 부딪쳐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고 다시 굽이치며 달려간다. 강물이 세력을 거두고 쉬어가는 듯 서행하여 쌓아 놓은 모래톱이 하얀 곡선을 그리며 개울과 숲을 구분을 짓는다. 이름 모를 앉은뱅이 들꽃들로 수를 놓은 넓은 들판이 카펫처럼 펼쳐지고 병풍처럼 둘러친 진녹색의 울창한 레드우드 숲이, 피어오르는 하얀 뭉게구름과 어울려 한 편의 드라마를 연출할 때 나는 우와! 우와! 연발하며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목구멍 저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신음 같은 탄성을 토하고 만다.
더 무엇을 위해 어디로 달리고 있는 걸까? 스쳐 지나가는 진풍경들에 아직 만족지 못하고 세상의 아름다운 모든 것에 굶주린 양 달리고 또 달린다.
몇 해 전 은신이가 부부동반 여행에 홀로 다녀온 오레곤주 쿠즈베이 여행. 너무 좋아 꼭 한번 나를 데리고 가 보여주고 싶다고 수 차례 언급이 있었고 이제 곧 70이라는 숫자가 매사를 헤아리는 기준치가 되어 더 늦으면 어려워질 수 있다는 막연한 조바심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전과 달리 은퇴로 인해 가장 여유로운 일정을 잡을 수 있었다. 나로서는 홀로 계획하고 감행하기 쉽지 않은 도전인데 다행히도 수차례 다녀온 친구들 세 커플이 함께 해서 오래전부터 계획하고 준비한 8박 9일의 장거리 자동차 여행이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떠나기 전부터 흥분되고 설렘 없이 여느 평일과 같이 담담한 마음으로 여행 첫날을 맞이했다. 어렸을 적 소풍 가기 며칠 전부터 마음 설레며 흥분해 밤잠을 설쳤던 그 시절과 비교한다면 내 심장이 굳어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 덕분에 잠도 잘 자고 에너지 충만으로 떠날 수 있었다.
5번 프리웨이로 진입하자 민둥산이 사막을 가로지르는 완만한 유선형 도로를 롤러코스터 타듯 미끄러지며 오르내린다. 귀가 멍 하여지는 귀 막힘 현상을 느끼도록 오르고 또 올라 큰 재를 넘으니 광활한 평야가 예전 70미리 시네마스코프 영화를 보듯 펼쳐진다. 베이커즈필드! 제빵사의 들. 지명에서도 언급하듯 끝이 안 보이도록 수많은 과수나무와 농작물들이 차창 옆으로 빠른 필름 돌아가듯 스쳐 지나간다. 이 처럼 넓고 광활한 농토를 관리하고 수확하여 미국 아니 전 세계에 먹거리를 댄다 하니 농부들에 대한 경외심이 느껴진다.
최종 목적지는 선세트 베이 주립 캠핑장. 오레곤 주 해변가에 자리한 그야말로 캠핑장의 모든 것을 구비한 최적의 장소이다. 이곳을 예약하고자 몇 달 전부터 새벽 1시까지 잠 못 자며 3-4명이 컴퓨터와 시각을 다투며 자리를 잡아야 하는 경쟁이 심한 곳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전문가 호성 씨가 한몫을 담당해 우리가 운 좋게 들어갈 수 있었다.
17첩 상? 아니 미국에도 그런 음식점이 있다고? 명구 형 왈, 티브이나 소문으로 들은 전라도에서 나 찾을 수 있는 그런 식당이 이 미국 중부도시 새크라멘토에 있다며 꼭 다시 한번 들르고 싶다 하여 사실 확인차 중간 기착지로 정했다. 사실이었다. 정갈한 반찬이 총 17개, 수육과 전골을 시켜 오랜만에 푸짐한 점/저를 즐겼다. 추측하기로는 이 식당주인이 전라도 출신이 아닐까 점쳐본다. 여행의 반을 차지한다는 식도락, 만족할만한 코스였다.
내륙에서 해변가 지역으로 들어서니 점점 초록색들이 시야를 물들이고 나무들의 고저도 높아지며 민둥산 이를 벗어나니 산 세도 거칠어지고 장엄해져서 록키산맥이 뿜어내는 정기를 느낄 수 있다.
자동차 바퀴가 쉬지 않고 돌아가듯 우리들의 이야기도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연극 공연 시 막이 오를 때 새로운 막이 커튼 뒤로 삐죽 보이듯 새파란 하늘에 맞닿은 태평양 바다의 검은 지평선이 살짝 보이더니 점점 우리 눈앞으로 물결치는 검푸른 바다가 다가오기 시작한다. 이제 또 다른 막의 내용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어떤 등장인물, 어떤 이야기들이 우리 앞에 펼쳐질까 약간의 설렘을 안고 비릿한 해풍을 맞으며 해안가 도로를 달린다.
선세트베이 주립 공원 캠핑장!!! 그야말로 수많은 느낌표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최상위급 캠핑장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하루라는 뜨겁고 눈부신 시간들을 끝내고 안식하러 들어가기 전 붉은 태양쇼가 마지막을 장식하는 곳이다. 바다가 육지로 움푹 들어와 커다란 호수처럼 자리 잡은 만에 지평선 양옆으로 어두움이 내린 바위산이 둘러싸고 있어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무대정면이 더욱 돋보이도록 꾸며진 초대형 무대를 방불케 한다. 공연시간은 5분에서 10분 , 8시 10분 경이되면 관람객들이 하나둘 바다를 향해 입장한다. 연인끼리, 친구들과 함께, 청소년 입장가 영화관처럼 아이들 손을 잡고 나란히 앉아 너도 나도 카메라 속에 순간순간을 새겨놓는다.
밀려오는 파도소리가 사운드 트랙 효과처럼 입체적으로 들려오고, 소금기 섞인 선선한 바람이 붉게 물든 내 뺨을 스치며 부드러운 애무를 하면 나도 모르게 눈부신 붉은 노을을 만끽하고자 태양을 향해 얼굴을 들이대며 사르르 눈을 감는다.
뜨거운 태양과 종일 함께했던 바닷물도 헤어지기 아쉬운 듯 바다 한가운데 삐죽 서있는 바위에 부딪혀 파도를 일으키며 떠나는 붉은 태양을 향해 손짓한다. 온종일 저 높은 곳을 차지하고 그 누구도 바로 눈을 들고 쳐다보지도 못하게 하던 그 교만함을 접고 어느덧 수줍은 듯 홍조를 띠며 수평선 아래로 반쯤 잠길 때 관람객들이 입을 모아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 5 4 3 2 1" 그리고 "해피뉴 데이"를 외치고는 그들도 하루를 마감하고자 삼삼오오 짝을 지어 돌아가는 무리들 위로 붉게 물든 선세트 베이 주립 캠핑장이라는 간판이 바다를 향해 서있다.
우리가 캠핑을 다녀온 지는 언 25년 전 일 것이다. 은신이가 캠핑의 모든 것을 불편해해서 그때 이후로는 가고 싶어도 생각조차 못했다. 그런데 이곳은 예외였다. 침대며 온방시설, 전기불, 화장실도 모두가 갖추어져 있어 작은 모텔 수준 방갈로로 여기서는 여트라고 부른다.
문을 나서면 벤치와 캠프파이어 화로가 있어 캠핑의 메인이벤트인 춤추며 타오르는 불춤을 감상하며, 삼겹살, 조개, 굴, 고구마, 옥수수, 호박전, 게 그리고 마시멜로까지 구워 먹으며 밤이 새도록 이야기가 펼쳐지는 집합의 장이다.
이 캠핑장이 특이한 점은 바로 자연과의 소통이다. 그 안의 사람과 나무와 동물들과의 소통뿐이다. 기계문명에 길들여진 우린 그곳에서 조차 텐트 안에서 숲 속 길을 걸으며 자연을 외면하고 그 기계에 매여있을게 뻔하니까 그래서 외부와의 단절을 선택한 것 같다. 전화도, 에스엔에스도 아니 된다. 급한 일이 있으면 10여분 거리로 나가야 가능하다. 그래서 때를 따라 방문한 곳은 바로 월마트. 오고 가며 쉬어가는 휴게소? 다시 말해 문명혜택 지역이었다.
빈자리 없이 꽉 찬 캠프그라운드에 활기가 느껴진다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숲의 공기와 자연을 만끽하는 모습을 볼 때 우리의 자녀와 손자, 손녀가 떠오른다. 언젠가는 이곳에서 함께 그런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부부처럼 보이는 한 커플이 저녁을 마친 후 손깍지 끼고 다정히 산책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평온을 남기며 지나간다.
베이지색 조끼를 입고 자원봉사자로 허드레 뒷일을 하는 머리가 하얗게 쉰 할아버지, 할머니의 얼굴에 활력이 넘치며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닌 남을 위해 헌신하는 노동의 자부심이 환히 웃는 미소에 피어남이 또한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을에 모락모락 모닥불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격 액티비티는 게이블 (맛살조개류 ) 채취다. 크기가 큰 대합보다 조금 더 큰 조개로 이곳 갯벌에 서식하고 있어 많은 여행객이 이를 위해 찾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라이선스도 사고 삽과 장화도 가져와 만반의 준비를 해서 간조시간에 맞추어 물 빠진 갯벌로 나갔다.
나간다고 누구나 다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경험이 있는 명구형과 호성 씨가 기술을 발휘한다. 여자들과 초보인 나는 조개가 남긴 구멍을 찾다가 누군가가 " 심 봤다 " 소리치면 달려가 산삼뿌리를 캐듯 조심스럽게 그리고 신속하게 모래구덩이를 판다. 이놈이 어찌나 빠른지 조금만 지체하면 모래 속 깊이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던지네스 크랩 ‘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해물시장에서 사고는 싶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아 선뜻 손이 안 가는 해산물 중 하나 일 것이다. 이를 직접 잡아 원하는 대로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야심 차게 통발을 빌려 닭다리를 미끼 삼아 배가 정박한 포구에서 바다로 던지면 한 번에 대여섯 마리씩 엉기어 올라온다.
하지만 문제는 규격과 암수에 달려있다. 암컷은 무조건 놓아줘야 하고 수컷은 주어진 자의 규격에 못 미치면 이 또한 가져갈 수가 없다. 만일 이를 어기면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경험담 섞인 조언이 있었다. 부푼 기대를 가지고 더 멀리 그리고 힘껏 던진다. 열댓 번의 시도 끝에 겨우 두 마리만 규격을 통과해 간신히 가져올 수 있었다.
여행의 또 다른 묘미 중 하나는 맛집을 찾아 그곳만의 맛을 즐기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때를 따라 열리는 쿠즈베이 화머스 마켓이 시골 읍내장이 열리듯이 시내 한 복판에 길거리를 차단하여 매주 수요일마다 열린다 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나섰다.
고유의 특산물과 해안가에서 채취한 조개껍질로 제작된 기념품들을 눈구경하며 붐비는 인파를 헤집고 다니다가 각종 후드트럭이 모여있는 곳에 다다르니 시장기가 몰려온다. 내리쬐는 태양아래 서성이며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 칠리 핫도그가 눈에 들어왔다. 오가는 인파의 소음과 함께 들려오는 시골동네 밴드의 흘러간 팝송가락이 더욱 구미를 돋우어 주었는지 서서 먹은 칠리 핫도그, 왜 그리 맛있었던가? 같이 먹던 창욱 씨도 감탄을 표시한다.
그리고 또 하나 새로운 경험은 집으로 향하는 길목 알카타라는 아주 작은 마을 호텔에 머물며 쉬어가는 중간지점에 때 마침 명애 씨 생일을 맞아 명구형이 한턱 쏜다 하여 그럴싸한 식당을 에스앤에스로 탐색했는데 마땅한 식당이라곤 2개밖에 없는 작은 마을이었다. 그중 이름이 소금이라는 씨후드 레스토랑을 선택해 GPS를 따라 찾아갔다. 이전에는 공작소로 사용하던 장소를 레트로 감성을 주고자 흔적을 남기며 현대의 감각을 더한 그런대로 신경 쓴 백인들 위주의 식당이었다. 메뉴를 펼쳐보니 가격 또한 만만치 않아 보였다. 한턱낸다 큰소리친 명구형은 우리가 가격에 주눅 드는 느낌을 보았는지 더욱 큰소리로 마음 놓고 주문하라고 우리를 재촉한다. 창욱 씨는 가격을 보고 엄두가 안 났는지 오더를 못하고 있으니 부인 명주 씨가 안타까워하는 눈치다. 기대를 갖고 기다리다 나온 음식은 쿡킹 매거진에서나 볼 듯한 프랑스 셰프가 아름답게 장식한 디쉬처럼, 한국사람 식성으로는 세 숟가락 이면 끝낼 양의 앙증맞은 디쉬였다. 맛은 있었지만 가격대비? 나는 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시골 변두리라고 얍잡아 본 걸 후회 하며 내가 중심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 나를 발견했다.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켜며 문을 열어보니 땅과 잔디가 촉촉이 젖어있어 밤새 내린 비가 아직도 부슬부슬 바람에 날리며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도보로 바다의 비경을 보며 트레일 코스를 섭렵하는 날이다.
오래전부터 은신이가 이 코스를 보며 감명 깊어 꼭 내게 보여주고자 했던 길이다. 궁금한 마음을 머금고 이슬 맺힌 수풀을 헤치며 바지 밑단이 젖는 줄 모르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 바다를 맞이한다. 움푹 파인 절벽 아래로 크기와 형태가 다른 기암괴석들이 바다를 향해 즐비하게 서있고 간헐적으로 바닷물이 밀려와 세차게 따귀를 때리듯 바위 얼굴을 치고 가면 서러움에 차서 울듯 프-아 소리를 내며 상처 투성의 시커먼 바위는 언제 그랬다는 듯 하얀 거품만 내 뱁고 만다.
들락날락, 울퉁불퉁, 이리 파이고 저리 파여 그야말로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형태 그대로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형태가 아름답다고 하는지? 아마 누구도 비례를 따지고 구도를 보며 아름답다고 하진 않을 것이다. 그냥 첫눈에 감탄사를 내뿜을 것이다.
아름다움은 자연스러움이다. 자연으로부터 온 우리는 한눈에 무의식적 감각으로 시간과 공간의 이야기가 담긴 그 자체를 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산속 해변가 옆에 도심지 공원에나 있을 법 한 관광 장소가 있어 더욱 흥미로웠다. 주립 식물원. 깎아진 절벽 위 산기슭에 자리해 바다의 해풍과 해무를 품어 앉고 있어 그곳에서 서식하고 있는 식물들이 더욱 푸르르고 싱싱해 보였다. 앞뜰 같은, 아늑하고 넓은 들판에 사슴 한가족이 풀을 뜯으며 자연의 한가로움을 선사하고 잘 가꾸어진 정원과 연못 그리고 이런 격에 맞추어 세운 유럽풍 냄새가 진한 둥그런 지붕에 아래위가 고딕무뉘로 장식된 기둥이 바치고 있어 고상한 품위를 지닌 저택을 방불케 한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아메리카 장미정원. 수십 종의 미국에서 서식하는 장미들만 모아 놓은 정원인데 거의 꽃의 크기와 색깔만 달라 보여 그냥 스쳐보며 지나가는데 한 장미가 나를 멈추어 이끄는데 어쩔 수 없이 가까이가 그 꽃과 입맞춤하듯 엎드려서 긴 시간을 보냈다. 이유는 꽃의 모양과 색깔은 차치하고 진하고 달콤한 향기였다. 다른 장미도 비교하며 향기를 맡아보았지만 그 꽃만큼은 아니었다. 아름다운 향기! 나는 무슨 냄새를 풍기며 살까? 내가 나를 제삼자 입장에서 내 냄새를 맡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여느 장미처럼 그냥 스쳐 지나가던지, 아니면 나를 피해 도망가는 구린내를 풍기지 않을까? 향기 진한 노란색 장미! 그 장미를 기억하며 살아가길 기대하며 식물원을 나왔다.
기대치 못한 한 장소가 있었는데 그것은 캠핑장 바로 뒤에 자리 한 12홀짜리 골프장인 것이다.
골프를 좋아하는 나는 단체 행동 이벤트가 끝나면 자유시간에 골프채를 빌려 쳐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기다렸다. 하도 궁금해 저녁을 마치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다가 산책 삼아 골프장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게이트가 열려 있어 여기저기 눈치를 보며 들어가 높은 나무숲 사이로 쭉 뻗어 있는 1번 홀 훼어웨이를 홀로 걸으니 잘 다듬 어딘 잔디를 밟고 있는 발밑에서부터 설렘이 올라옴을 느끼기 시작한다. 약간의 흥분된 마음을 가지고 3번 홀까지 걸어 지형지물을 익히고 내일을 기약하며 여트로 돌아왔다. 다음날은 3시간짜리 기암바위 해변가 트레일이 있은 후 피곤한 몸으로 돌아와 모두 각자의 자유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골프 치러 간다며 나서려는 순간 이를 저지하며 막아서는 게 은신이가 아닌가! 자. 유. 시. 간!
자유를 만끽하러 이곳에 와서 내 마음대로 못하게 하니!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즉각 반응으로 큰소리가 튀어나왔다. 은신이는 3시간의 트레일 후 너무 피곤하다는 이유로 막고 나선 것이다. 갑자기 큰소리가 나니 분위기가 싸 해지며 기대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를 수습코저 옆에서 같이 가자 했지만 그때는 이미 맛을 잃어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홀로 나와 뜨거워진 가슴을 진정 코져 걸었다. 한참 걸으며 생각했다. 화는 났지만 혹시 내가 못 본 체하며 나의 욕망에 이끌리고 있을 때 이를 막아 세우고 바로 세울 사람은 오직 은신이 뿐이라는 것을 , 인식하자마자 그 순간부터 다리에 피곤이 몰려옴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내 사람 내 옆에 있음을 감사하며 숙소로 향했다.
쿠즈 베이 지역을 떠나기 전 마지막 츄립으로 ‘ 금과 은 폭포 '로 향했다. 강을 따라오다 한강 철교 같은 철재조형의 다리를 건너 개울을 옆에 끼고 겨우 양방향 차 두대가 지나갈 만한 비좁은 도로로 1시간 이상 달린 후 비포장 도로를 맞아 누런 먼지 속을 뚫고 도착한 곳. 창욱이 왈 “ 금도끼 은도끼 폭포" 다.
폭포는 한 길로 가다가 중간에 두 길로 나누어지는데 우리는 그만 은 폭포로 향하게 돼 앞의 일행과 따로 가게 되었다. 깊은 산속 골짜기 끝에 자리한 은 폭포는 이름 그대로 은가루를 뿌리듯 넓게 퍼지며 떨어지는데 왜 금은이라는 이름으로 명시했나를 알아차릴만한 폭포였다. 흐르는 폭포밑에 앉아 신발을 벗고 차디차게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피곤을 식히며 오래전 우이동 골짜기에서 수박 띄워놓고 놀던 시절을 기억하며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금 폭포라 불리는 곳으로 가보니 높고 아름답지만 딱히 금이라고 불릴 만한 특징이 없어 은 폭포로 인해 그냥 금이라 붙인 이름이라 생각이 되었다.
항상 그날은 온다. 고대하며 기다리던 그때가 다 지나가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돌아가는 루트는 두 커플 씩 왔기 때문에 따로 떠나 알카다라는 소도시에 묵은 후
레드우드 하이웨이! 서문에서 표현했듯이 추억의 방점을 찍을 만한 드라브였다. 여기서 두 가지 사건이 벌어졌다. 그 하나는 가는 도중 산길 옆으로 검은색 어미 곰이 아직도 회색의 털이 부슬부슬한 새끼 곰 두 마리를 챙기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가능한 한 그들을 자극하지 않으려 조심스레 접근해 그들의 모습을 찍었다. 새끼 두 마리는 아무런 두려움이나 걱정 없이 그들대로 놀지만 어미곰은 주위를 살피며 새끼를 보호하고자 하는 모습이 영역했다. 세상의 모든 어미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을 위해 자기를 희생한다. 모정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아뿔싸! 우리의 종군기자 혜경 씨가 그 아름다운 숲을 떠나기가 안타까워 그 높고 우람한 레드우드를 사진에 담고자 비탈에 서있음을 망각하고 뒤로 물러서다 미끄러지며 손을 땅에 짚어 약한 손목에 금이간 것이다.
허둥지둥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근처 어전트케어를 찾았지만 주일이라 문을 닫아 응급처리 후 둘로 구릅을지어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모두들 안타까운 마음으로 혜경 씨를 위로 하지만 혜경 씨는 밝은 모습을 잃지 않고 도리어 우리에게 괜찮다며 위로를 건네준다. 상황이 의연치 못한데 의연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혹자의 태도를 버리고 웃음으로 모두의 평안과 자기로 인한 마음의 부담을 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 태도 또한 아름답다.
점심을 중간 지점, 산호세로 잡고 한식당을 찾는 도중 산호세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정목사가 떠올라 전화로 물어보기로 했다. 항상 그랬듯이 오지랖의 왕답게 식당까지 와서 생각지도 않던 선물과 빵까지 챙겨주며 아름다운 사랑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었다.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다. 어디를 가나 만나는 사람마다 그들을 통해 아름다움을
시시각각으로 볼 수 있으니.....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 떠난 여행,
맨 처음 떠날 때 막연히 길을 나섰지만 사막에서, 우거진 숲과 개울에서, 파도치는 바위와 절벽에서, 우연히 만난 장미 한 송이에서, 아픔과 고통을 감내하는 친구의 웃음에서, 함께하는 밥상에서 계획되지 않은 만남에서 ,
그 모두는 아름다움을 사모하고 아름다움을 찾고자 노력하는 이에게 보이고 찾을 수 있음을 깨달은 여행이었다.
아름다움은 달리고 달려 찾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마음을 가질 때 내 앞에서 보이고 나타나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