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이 존재하는 이유

자본주의 황혼기에 펼쳐진 거대한 도박판

by 선로 위의 상념

돈이 돈을 낳게 하는 것은 금기였다

셰익스피어의 소설 <베니스의 상인>에는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피도 눈물도 없는 악인으로 등장한다.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심장을 떼어가겠다는 악당이다. 소설 속의 고리대금업이 매우 나쁜 것으로 묘사된다. 500여 년 전의 세상에서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 일은 근대 이전에는 금기였다. 기독교 성경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이자를 받는 것은 금기시 되어왔고, 금융의 필요성이 생기자 이를 유대인들에게 맡기거나 5%까지로 제한한다. 이러한 금기는 대항해시대가 열리고 주식회사가 등장하면서 금융의 순기능이 커지면서부터 사라진다.

ems.jpg 영화 <베니스의 상인(2004)> 스틸 컷. (이미지 출처 : https://www.rottentomatoes.com)

돈이 돈을 낳게하는 것은 인류 역사상 상당한 기간동안 금기시되어온 것에는 이유가 있다. 사회 내부의 격차를 확대시키고 노동에 대한 의욕을 떨어뜨린다. 이는 공동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하면서 금융 자체를 금지할 수 없었다. 경제의 규모가 커지면서 자금의 조달이 용이해질 필요가 생기고, 자금이 부족한 곳과 여유있는 곳을 중개하는 것이 금융의 본질적인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돈이 돈을 낳게 하는 것은 어느 정도 허용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금융이 본격적으로 경제의 한 축으로 등장하면서 경제 성장은 가속페달을 밟는다. 더 큰 규모의 사업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은 주기적으로 비이성적 과열과 시장의 붕괴를 격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막거나 늦추기 위해서, 여러 가지 규제들이 등장한다. 새로운 금융상품을 그러한 규제를 완화하여 다시 등장하고, 기존에 금융으로 여겨지지 않는 영역을 금융화하기를 반복한다.


비트코인이 금융일 수 없는 이유

금융의 본질은 자금의 조달을 용이하게 해주는 대가를 받는다. 즉, 유동성의 공급과 수요 간의 미스매치를 해결해주는 역할인 것이다. 주식을 생각해보자. 회사 경영과 관련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주식을 발행하고, 이를 주식시장에서 판매하여 자금을 조달한다. 채권을 발행하기도 하는데, 이는 회사가 금융시장에서 직접 대출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채권을 가진 이에게 이자를 지급하고 만기가 되면 상환을 한다. 주로 선물 거래가 이뤄지는 원자재 시장은 원자재를 사고 팔 권리를 거래하는 시장이다. 가령 수확물을 얻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농산물은 그 작황이 어떻게 변화할 지에 대한 위험(Risk)이 있다. 그래서 그러한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서 이를 거래하는 시장이 만들어져 있다. 위험을 분산해야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시장원리가 구현된다는 전제에서의 금융의 순기능이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이러한 기능이 단언컨대 전혀 없다. 코인거래소나 이들과 직접 연관있는 회사가 아니면 비트코인이 기업활동에 도움을 주는 경우는 없다. 블록체인 기술은 온라인에서의 보안적 측면에서 활용도가 있을 수는 있지만, 가상화폐가 진짜 화폐에 준하는 지위를 갖고 기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초단위로 가치가 무제한적으로 변화하는 가상화폐가 가치를 저장하는 기능을 할 수 있는가. 누군가 물건값을 코인으로 지급하겠다고 한다면, 누군가 월급을 코인으로 준다고 하면 받겠는가.


지속적으로 논의가 되는 스테이블코인은 결국 화폐를 통해서만 가치가 보장된다는 점에서 기존 화폐의 새로운 표기법에 불과하다. 그리고 가치를 고정시켜 줄 것이라는 믿음을 확고히 줄 수 있는 주체는 국가 권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런 믿음을 만들 수 없는 경우는 2022년 루나(LUNA) 코인처럼 대규모 사기극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아니 국가 권력조차도 특정 임계치를 넘어서면 금융시장이라는 괴물을 통제할 수 없다. 이미 반세기 전에 금 태환 중지 선언으로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했던 것이 이를 보여준다. 더구나 중앙 집권적 통제를 거부하는 화폐 체계를 지향한다는 가상화폐의 이론을 주장하면서, 가치를 고정시켜 줄 권력의 존재를 원한다는 것은 극심한 모순이다.

B20221219110823737.jpg 일론 머스크가 도지코인 시세를 쥐락펴락하면서 엄청난 시세차익을 얻었던 것이 가상화폐의 본질을 단순하게 보여준다.

비트코인으로 돈을 버는 것은 결국 미래로부터 돈을 가져오는 것일 뿐이다. 내가 오늘 비트코인을 비싸게 팔아서 얻는 이득은 내일 그 비트코인을 더 비싸게 구입하는 사람으로부터 온다. 비트코인 가격이 하락하여 시가총액 수 조 원이 증발했다고 말하는 경우도, 이미 수 조 원을 갖고 시장을 나간 것이 이제서야 드러났다는 뜻이다. 주식과 다르게 실물가치랑 연동되어있지 않은데, 마치 돈이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말하는 것은 현상을 심각하게 오독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도 비트코인이 계속 존재하는 이유

이런 도박판과 같은 비트코인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가 황혼기에 접어들었다는 명확한 징후 아닐까. 결국 비트코인으로 창출되는 이익을 가장 많이 가져가는 것은 코인거래소를 위시로 한 기업들이 가져간다. 나머지 참여자들은 미래의 참여자들까지 포함해서 제로썸 게임을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런 산업을 이미 알고있다. 카지노 산업이다. 마치 쇠락한 도시를 살리기 위해 카지노가 들어서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30985_59841_1326.jpg 폐광 후 들어선 강원랜드 전경. (이미지 출처 : 시사인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985 )

자본주의는 상품이 아니었던 것을 계속 상품으로 만들면서, 그리고 시장이 아니었던 곳을 시장으로 포괄하면서 확장해왔다. 그러한 과정에서 경제성장이 이뤄지고, 삶이 개선되기도 하였다. 이제는 더이상 시장으로 팽창할 곳이 사라진 시대이고, 또는 그러한 팽창이 기후위기와 같은 생태적 한계에 직면한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가상 세계를 새로운 시장으로, 그곳에서 거래할 수 있는 새로운 상품이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전개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결과는 24시간 언제나 항상, 전세계를 상대로, 작동하는 온라인 도박장이다. 거기에 막대한 인간의 지적 에너지와 전기를 만드는 물리적인 에너지를 투입하고 있는 것이다. 비트코인의 붐이 끝이 없이 계속되는 것은 더 이상 부를 창출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동학이다.


만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원이 무한하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아니 애당초 무한하다면 시장은 끝없이 팽창하고, 새로운 소비자가 끝없이 등장하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디지털 세계에 거대한 도박장을 만들면서 이 것도 경제성장이라고 되뇌일 이유가 없다. 그러나 무한한 것도 영원한 것도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비트코인 붐은 인류가 파국으로 가는 급행열차이다. 의미없는 자원 낭비로 기후위기를 가속화시키고, 노동의 가치를 더욱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만들고, 노력을 미련한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어디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