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하철에서

by 에솔프 ESORP

통성명은 없다. 수많은 당신들이 나를 보지도 않고 말을 건넨다. 당신의 얼굴이 말한다. 나는 듣는 쪽이다. 대각선 맞은편의 아저씨부터 시작한다. 바로 맞은편보다는 이쪽이 낫다. 높낮이를 비교하려면 옆도 아니고 정면도 아닌 게 좋다. 이 아저씨의 코는 낮지만 광대와 턱 이마가 같은 높이로 봉긋 솟아있다.

‘이 아저씨는 눕혀놓고 얼굴 위에 바둑판을 올려놓아도 되겠는데?’


본인은 크게 잘 나지 않았을지라도 주변에 그를 도와주는 귀인들이 많음이 분명하다. 어쩌면 지금 다니는 좋은 직장도 주변인의 추천으로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일주일 내내 회사로 집으로 몰고 다니는 고급차는 법인 명의일 거다. 자신의 능력이 출중하지는 않지만 능력 있는 후임들이 그를 많이 따른다. 그를 중심으로 뭉친 팀은 그의 격려로 항상 좋은 성과를 낸다. 축재(蓄財)에 서툴러 은행에서 좋은 금리로 원하는 금액을 대출받지 못하더라도 전화 한 통에 흔쾌히 돈을 빌려줄 친구가 연락처에 꽤나 있을 사람이다. 자세히 보니 팔자주름이 깊고 눈꼬리는 버드나무 가지처럼 쳐져 있다. 자주 웃었다는 증거다. 눈에 띄게 높은 곳 없이 솜사탕처럼 울퉁불퉁한 그 얼굴이 실룩거린다. 배시시 웃는다. 그와 동시에 스마트폰 화면 위에서 두 엄지가 스텝 밟는 모습을 보니 지인들과 수다를 떠는 모양이다. 몸도 둥그스름하니 성격이 서글서글하여 모나지 않을 사람이다. 어쩌면 지금도 친구들과 주말 약속을 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옆의 할머니로 옮긴다. 이 분의 이마는 예전 할머니 집 마루만큼 넓고 또 높다. 이마에서 코로 이어지는 선은 방금 매단 빨랫줄 같다.

‘집안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겠군. 저 나이에 대학은 물론이고 다른 학위도 있겠다.’

옷차림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방금 세탁소에서 배달 온 옷처럼 깔끔하고 구김이 없다. 자연스러운 옷의 윤기는 합성섬유의 요란한 광택이 아니다. 하지만 코가 낮고, 코끝과 양 콧볼이 오미자만큼 작다. 입술은 얇다.

‘아, 이러면 본인은 경제적으로 좀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섣부른 판단이었다. 눈코입이 조금 구겨지더니 하품을 한다. 인감도장만 한 입술이 벌어지는데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의 대왕 고래가 플랑크톤 먹는 장면을 보는 줄 알았다. 주먹 두 개도 들어갈 만큼 크다.


‘이야, 이 할머니는 돈도 많이 벌었겠고, 번 것을 잘 지키는 사람이겠다. 다만 씀씀이는 크지 않아 주변 사람에게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겠네.’

대중교통을 타는 이유도 차량 구매에 따른 감가상각과 제반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일 거다. 집에 있는 단 한대의 차도 초록색 번호판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람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선산을 비롯한 부동산, 과장 좀 보태면 장롱 깊숙한 곳에 갱지로 싸여있을 가장 믿음직스러운 현금. 전반적인 생활습관이 고지식할지라도 실속을 잘 챙기고 어려울 때 무덤덤한 그런 사람이겠다. 이마와 턱도 튼실하니 직사각형이다. 부모 자식이 위아래로 자신을 잘 붙들고 받치고 있어 과거에도 미래에도 큰 걱정이 없을 사람이다.


그 옆을 보니 엄마와 아들로 보이는 둘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만큼 작게 대화하고 있다. 스마트폰 얼굴 인증 잠금도 풀릴 만큼 닮았다. 모자 둘 다 조각칼로 길게 파놓은 듯한 인중의 평행선이 또렷하다. 다만 아들 쪽이 좀 더 신제품이라 베일 듯이 돋보인다.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자라고 장수할 상이다. 이 아이의 눈썹은 기다랗게 늘어져 눈(目)이 비바람을 피할 수 있을 충분한 처마다. 입술은 위아래 둘 다 두툼하여 살이 꽉 찬 홍합 같다. 공부를 잘하고 또 즐겨할 아이일 거다.


읽고 싶은 책을 샀는지 손에 서점 종이봉투가 들려있다. 지하철 바닥에 발이 닿지 않아 공중에 덜렁거릴 만큼 어리지만 산만하지 않고 차분히 잘 앉아있다. 밖에 나가자거나 특별히 부모를 보채지 않아 집에서 조용히 보내는 시간이 많은 아이처럼 보인다. 더 어릴 적에는 부모가 아이의 신발 한 짝을 찾으러 뒤로 돈 적조차 없겠다. 그의 엄마는 비록 그를 승용차에 태워 다니지는 못하지만 아들은 이른 나이에 그녀에게 고급 승용차를 선물할 수 있겠다.


이제 다시, 지하철에서만 즐길 수 있었던 소리 없는 대화의 일상이 돌아왔다. 스마트폰에 눈을 고정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얼굴을 훔쳐봐도 괜찮다. 버스는 뒤통수만 볼 수 있다.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너무 빨리 지나쳐간다. 지나가는 사람과 인사를 건네는 문화가 없어진 요즘은 응시하고 있으면 시비를 거는 줄 알 거다. 그래서 지하철이 딱이다. 별일은 아니다. 허영만 화백의 ‘꼴’이라는 만화에서 본 내용을 복습하는 시간이다. 그들의 얼굴은 항상 내게 말을 걸어온다. 오늘은 또 어떤 가정사, 과거사를 들을지 궁금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