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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 좀 하고 살아

by 은빛영글

선배가 죽었다. 동문회 선배였다. 고작 나보다 두세 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돌아보니 2020년 연말쯤, 술기운에 안부 인사를 건넨 메시지가 마지막이었다. SNS를 통해 드문드문 올라오는 그의 일상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건 아마 상대방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가 눈을 감아진 지 11개월이 지났다고 했다. 다른 선배의 SNS에 올라온 사진 한 장에 머리가 멍해졌다. '내 나이가 벌써 그런 나이인가'하는 당황스러움보다, '나는 왜 그 소식을 이제야 접했을까?'하는 죄책감이 더 컸다.


"연락 좀 하고 살아."

"넌 내가 연락 안 하면,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냐?"


퉁명스러운 친구들의 말에도 그저 허허 웃기만 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야."라며 그들의 불만을 모른 척했다. 그럼에도 잊힐 때쯤 한 번씩 전화해 주는 고마움을 몰랐다. 나의 안부를 물어주는 그들의 상냥함을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는 무성의한 말로 덮어 버렸다.

그래서 벌받았나 보다.




방에서 갑자기 쓰러져 구급차를 불렀는데,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했다. 당시 혼자 살고 있었는지, 친구 혹은 가족과 함께였는지 까지는지 모르겠다. 그와의 소통은 2020년이 마지막이었으니까. 고작 그의 텅 빈 하트를 빨갛게 채우는 게 전부였으니까. 핸드폰 패턴을 풀지 못해 연락을 아무도 못 받은 게 아닐까, 하며 우리는 자위할 뿐이었다.

내게 만약 그런 순간이 온다면, 연락 좀 하라던 지인들의 말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바쁘다는 핑계로, 특별한 용건이 없다면 전화나 메시지 한 번 먼저 보내는 법이 없었기에, 그제야 반성할지도 모르겠다.

미안하다고, 사실 나도 가끔 생각했다고. 그저, 뭐가 그리 쑥스러웠던 건지 내겐 그게 너무 어려웠다고. 항상 먼저 연락해 줘서 고마웠다고. 그걸 당연히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한 번도 고맙다고 말하지 못했다고. 전하지 못한 말들이 목구멍을 빠져나오지 못한 채, 영원히 나와 함께 잠들어버릴 텐데.


동기들과 선배에게 인사를 하러 추모공원에 갔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인해 뿌옇게 내려앉은 안개, 그것들이 선배를 품고 있었다. 가족묘라고 하더니, 조부모님 이름 밑으로는 공백이었다. 한참 동떨어진 곳에 놓인 그의 이름을 보니, 그제야 실감이 났다.

여전히 담배 한까지 입에 물고 특유의 시니컬한 미소를 지어줄 것 같은데. 차가운 돌덩어리만 우리 앞에 놓여 있었다. 마음이 시렸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나이 마흔이 훌쩍 넘은 어린 후배들은 이런 곳이 처음이라며 우왕좌왕했다. 그 모습을 보았다면 가만히 있을 선배가 아닌데. 분명히 한 소리 했을 텐데. 그는 더 이상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았다.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요.'


마음속으로 사과를 건넸다. 그마저도 차마 입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한 건,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서였다. 내게 눈물을 흘릴 자격이 있긴 했을까. 그의 발치에 가득 채워진 누군가의 묫자리를 보며 그들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차 한잔 나눠 마신 우리는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기다리고 있는 가족에게,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 운동장으로. '우리 가끔 안부 전하고 지내자.' 따위의 지켜지지 않을 약속을 하며 서로에게 등을 돌렸다.


무소식이 희소식이 아니었음을 이제는 알겠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잘 지내고 계신가요?

우리 가끔 안부 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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