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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을 기다리는 사춘기

by 은빛영글

아침마다 보는 고등학생 무리가 있어.

언뜻 부장님을 둘러싼 과장, 대리, 인턴처럼 보이는 녀석들이라

저 정도 외모면 대체 몇 학년일까?

너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들과 비교해 봤지.

이제야 거뭇거뭇 솜털이 굵어지는 너에 비해

아침에 대강 면도하고 나왔을 그들은

한참 형처럼 보였어.

입고 있던 교복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봐도 부장님처럼 보였을 거야.


"우리 이제 이십 대야."


스쳐 지나가던 녀석들이 신나게 떠들더라.

아, 고3이었구나.

조금은 이해가 됐어.


스무 살의 설렘이 가득 찬 목소리에 내 입가에도 미소가 지어졌지.

얼마나 설렐까. 발걸음이 얼마나 가벼울까.

귀엽기까지 하더라니까.


캠퍼스 커플을 꿈꾸며 대학교 교정을 누릴 녀석도 있을 테고

또래보다 이른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녀석들도 있겠지.

편의점에서 당당하게 신분증을 들이밀며

맥주나 담배 따위를 살 수도 있을 거야.

스무 살이라는 이름이 주는 설렘과 열정이

가득 차다 못해 흘러넘치는 그 목소리에

그들의 행복한 내일을 나 역시 축복해 주고 싶었어.


동시에 안쓰러웠어.

'성인'이라는 이름 밑에 지금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할 그들의 내일이.

자기 생각과 행동에 스스로 책임져야 할 그들의 어깨가.

교복을 벗고 나면 더 무거운 족쇄가 기다리고 있는데

스무 살, 서른 살, 앞으로 더 많은 눈물과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다가올 삶의 무게 따위 모른 채 마냥 해맑게 웃고 있는 얼굴들은

이것이 지금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일 테지.

그리고 미안했어.

마냥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주지 못해

그 시간을 먼저 지낸 어른으로 미안하기도 했어.


녀석들이 지나간 자리에 네 얼굴이 떠올랐어.

몇 년 후에 너도 이 길을 걸으며

스무 살에 대해 설레겠지.


지금 나의 걱정은 아마도 네게 닿지 않을 거야.

잔소리라고,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어차피 듣지도 않잖아.


그래도 알아줬으면 좋겠어.

그 설렘을 먼저 겪어본 엄마 아빠이기 때문에

너에게 매일 모진 말을 뱉고 있노라고.

우리가 먼저 그 길을 걸어봤기 때문에

부디 너는 돌밭을 걷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설레는 그 스무 살을 걷다 넘어졌을 때

그 길이 생각보다 거칠어 주저앉고 싶을 때

네 뒤에 우리가 있다는 걸.


네 뒷모습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을게.

네가 손을 내밀면 닿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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