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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아이가 없었다면...

by 벨라Lee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모든 부모의 공통적인 감정일 거예요. 하지만 육아에 지치고 마음이 닳아 없어질 것 같이 극한에 몰려 힘에 부칠 때, 한 번쯤은 저와 같은 생각을 해본 적 있지 않으신가요?


'나에게 아이가 없었다면 지금쯤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이 때문에 어려움을 겪거나 괴로운 심리일 때가 아니더라도 그냥 한 번쯤, 내가 지금의 위치와 상태가 아니라면 과연 오늘, 이 시간,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을 하며 살고 있을까 궁금할 때가 있었어요.


저는 아이 엄마이니까 '아이가 없다면'을 가정해서 생각해 보려고 해요.


일단 저는 직장에 다니지 않았으니 남편이 회사에 가고 나면 아침 6시 반부터 빈 집에 혼자입니다. 아니, 강아지랑 둘이겠군요.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필사를 하겠죠. 영양제를 챙겨 먹고 고 30분 후 두유나 우유로 빈 속을 달래요. 그리고 10시나 11시쯤 아침을 챙겨 먹습니다. 밥이 될 때도 라면이 될 때도 있고 그날그날 집에 남아 있거나 먹고 싶은 음식들을 주섬주섬 챙겨 먹을 거예요. 그리고 하루 종일 독서를 할 것 같아요. 중간중간 배가 고프면 과일이나 과자, 음료수, 냉동식품을 꺼내 먹거나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아니면 나가서 외식을 하고 올 수도 있겠죠. 집에서 독서하는 것이 지루하면 서점에 나가 책들을 쭈욱 살펴보고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며 구입을 한 다음, 맛있는 점심을 사 먹고 혹시 계절에 바뀌고 마땅히 입을만한 옷이 없다면 티셔츠나 니트 한 벌 때쯤 사서 들어올 것 같아요. 아, 때로는 친구들을 만나서 수다를 떨고 식사를 하겠죠. 그리고 저녁까지 다시 독서를 하다 오후 6시쯤 신랑이 오면 같이 저녁을 먹거나 이미 먹고 왔다고 하면 저 혼자 저녁을 챙겨 먹을 거예요. 따로 음식 만들기는 귀찮으니 다시 배달 음식을 시켜 먹거나 짜파게티나 냉동음식을 데워 먹을 지도요. 그리고 샤워를 한 다음 따끈한 차와 함께 다시 독서를 하다가 잠이 들 거예요.


이렇게 지내다가 매일이 너무 무료하고 지겨워지면 비행기표를 끊어 훌쩍 한국을 떠날지도 몰라요. 새로운 세상에서 다양한 것들을 보고 듣고 경험하면서 행복하고 기쁜 일도 있겠지만 집을 떠난 고생도 하고 어려움도 겪으면서 다시 또 한국에서 살아나갈 원동력을 얻을 거예요. 일상의 따분함을 변화시키는 데는 여행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여행을 매년 나가다 보니 역마살이 낀 건지, 아니면 진정한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건지 모르겠지만 여행이 너무나 좋아졌어요. 귀찮게 짐 꾸리고 낯선 곳에서 자고 먹는 것 별로 좋아하지 않는 집순이에게는 진짜 큰 변화지요. 여행이 좋아졌는데,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는 자유의 몸이라는 게 너무 좋네요. 마음이 동하면 또 비행기 예약부터 할 겁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시간들, 매일의 나날들.

상상만 해도 자유의 날개가 얼마나 가벼운지 알 것 같아요. 내가 책임질 것이 없고 그저 누리기만 하면 되는 세상이니 이것이야말로 유토피아 아닌가요. 누구도 내게 뭐라 하는 사람 없고, 누구도 내게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귀찮게 떠드는 사람 없으니 저보다 행복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요. 해요, 해요! 해요???


아... 근데 방금 전까지 진짜 날아갈 것처럼 홀가분한 마음이었는데 저 혼자 행복하려니 왜 자꾸 아이 얼굴이 떠오르는 거죠? 엉성한 상차림으로 영양가도 없는 음식들로 하루하루를 때우는 저의 모습도 불쌍해 보여요. 아이가 있을 때에는 아이 챙겨주느라 골고루 영양소 생각해서 힘들어도 이것저것 없는 솜씨 있는 솜씨 다 끌어모아 밥상을 차려줬거든요. 여행도 신랑이랑 재밌게 알콩달콩 다니면 즐거울 것 같았는데 아이와 이 좋은 곳들을 같이 봤으면 진짜 좋아했을 텐데, 라고 생각하니 목이 메어오는 거 있죠. 우리 부부만 멋진 것 보고 먹으니 아이가 자꾸 눈에 밟혀서 눈물이 마구 차올라요. 바보가 됐나 봐요. 아이 없는 세상을 마음껏 상상해보려 했는데 결국은 제가 알아서 아이를 떠올리고 있어요.


아이가 원래 없었으면 모르는데, 이미 있던 아이를 지우고 다른 세상을 생각하려니 처음에는 신이 났는데 점점 울적해지는 엄마의 모습으로 서 있네요. 오늘의 '만약에'는 실패인 것 같아요. 그냥 아이랑 신랑이랑 저랑 셋이서 함께 행복하게 사는 매일을 그려야겠습니다. 상상하기 어렵다는 걸, 저는 아이에게서 아직은 자유롭지 못한 영혼이란 걸 깨닫고 갑니다. 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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