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너들의 필독서가 있다.
아마 다시는 이 정도의 달리기 관련 책은 없을 거다.
이미 그 자체로 정석이고, 전설이다.
바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2016년 나와서 제법 오래된 책이지만, 최근의 달리기 열풍으로 다시 인기가 올라오고 있는 듯하다. 나도 정기적으로 다시 보는 책인데, 솔직히 얘기하면... 다른 달리기 관련 책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러너들을 '심쿵'하게 하는 필력과 성장형 러닝의 방향성을 제대로 보여준다.
이 책은 이미 달리기 도파민으로 충분하여 책을 유독 더(?) 안보는 러너들마저도 모두 다 빠져들게 만들었다. 나도 달리기 관련 책을 쓰려고 오랫동안 생각하고 있었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하루키 비슷한 류의 장르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나 같아도 내 책 안 보고, 하루키 거 보라고 얘기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그냥 허황된 달리기 책 집필의 꿈은 진작 접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이해한 하루키와 다른 사람들이 이해한 하루키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책을 보고 받은 메시지를 다른 사람들은 별로 생각을 안 하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그 답답함을 한 번 풀어내보고 싶었다.
혹여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의 대 소설가이다. 최근에도 왕성한 집필을 하고 있지만, 오래전에 나온 <순수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등으로 이미 엄청난 스타 작가이며, 노벨상 수상자로 매번 거론될 정도이다. 나도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 중에 한 명이다. 재미있는 건 그가 달리기를 매우 좋아하는 '찐 러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소설 외에는 다른 장르는 거의 쓰지 않는 하루키가 달리기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아 회고록을 낸 책이 바로 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이 책은 하루키가 달리기를 하게 된 계기와 왜 하는지에 대한 이유, 다양한 대회 경험과 체험을 차분하게 담아냈다.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같은 명언을 모르는 러너가 없을 거고, 참 많이 달리기 관련 SNS에 명 문장들이 인용되고는 한다.
특히 구체적인 경험을 통한 러너의 성장기를 제대로 담아냈다는 점도 장점으로 들 수 있다. 꾸준한 루틴의 러닝부터 풀코스 완주 경험과 달리기의 기원이 시작된 아테네 달리기, 보스턴 마라톤, 100km 울트라 마라톤, 트라이 애슬론 등 거의 이건 뭐 러너들의 로망과 성장의 방향성을 제대로 담았다. 하고 싶은 거 다하는 하루키 부럽다...
이렇게 생각해 왔던 나에게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루키가 아마도 나 같은 러너들을 비웃고 있지 않을까?
하루키 입장에서는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거 같다. 러닝의 다양한 경험과 끝판을 이미 다 경험한 자신을 우러르고, 나의 명언들을 인용하는 러너들을 보며 우월감을 느낀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보다 다른 측면의 비웃음도 있을 거도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건 바로 '이것들이 내 의도를 잘 모르네?'라는 차원이 아닐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내가 생각하는 하루키의 달리기의 메시지는 '부와 성공'이다. 단순히 건강해지고 즐기는 러닝이 아니라, 유익되는, 돈을 버는, 성공을 불러일으키는 달리기가 핵심이다. 시원하게 그 주제를 이미 1장과 2장에서부터 하루키는 밝히고 간다. 자신이 달리기를 시작하고 소설이 더욱 잘 써졌으며, 자기만의 루틴으로 꾸준히 건강하게 집필을 하고 있는 모습을 말이다. 만약 자신이 달리기를 했을 때 단순히 돈만 쓰고 즐기기 위한 러닝만 했다면 과연 하루키가 지금처럼 러닝을 사랑했을까? 나는 '삶의 이득이 되는 달리기'가 이 책의 핵심 주제라고 주장하고자 한다.
'아담한 공백 속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건 러너라면 거의 누구나가 다 한다. 단순한 자기만족의 러닝일 수 있다. 그게 물론 나쁜 것은 아니지만, 나의 가족과 주변, 그리고 사회적으로 지지를 얻지 못한다. 그냥 길이나 막고 폼이나 잡고 달리는 모습으로 비칠 뿐이다. 요즘 한편에서 조롱당하는 러닝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 괜히 감정이 격해진다...
본질은 성공이다. 나의 삶의 유익이며, 수익화이다. 나와 내 주변을 풍요롭게 하는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루키의 책을 보며 다시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하루키는 서문에서 '자신의 달리기 책'에 대해서 이렇게 밝히고 시작한다.
'누구나 공통적으로 잘 응용할 수 있는 '범용성'은 그다지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문장에서 오히려 하루키의 역설이 느껴졌다. '나는 이미 경험으로 깨달았다', '이 책을 보는 너희들도 과연 내 수준이 될까?'라는 의도 말이다. 달리기는 어떻게 활용하느냐 따라서 누구나 다 '범용성' 있게 적용할 수 있다. 나는 이미 그 유용성을 알게 된 러너이다.
물론 '이 하루키의 생각'은 나의 상상에 근거한 뇌피셜일 수 있다. 하지만 달리기가 주는 효과는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하루키가 그동안 만들어 온 성과들과 걸어온 길도 이를 증명하고 있다. 내가 비록 감히 '그'는 아니지만, 이를 찾아내서 '삶에 유익이 되는 달리기'와 '성공과 수익을 위한 달리기'라는 체계를 어느 정도 구축하였다. 그래서 다시 한번 '달리기 책'이라는 집필의 꿈을 도전해 보고자 한다.
누구에게나 유용한 돈 버는 달리기, 이제 우리들이 하루키를 찬양하되 '비웃어' 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