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았지만, 끝내 제일 많이 눌리는 건 Delete 키뿐이다.
몇 줄을 썼다가 지우고, 다시 써보려다 또 멈춘다.
글이 아니라 한숨만 쌓여 간다.
한 글자를 입력하는 일이 이렇게 버거운 적이 있었던가.
마치 단어 하나에도 무게가 실려 있는 듯, 손끝이 쉽게 떨어지질 않는다.
세네갈의 더위가 한창 절정이다.
공기 속엔 발악하듯 열기가 머무르고 있고, 창밖 햇빛은 종일 사정없이 내리 꽂힌다.
방 안의 선풍기는 고군분투하지만, 결국 더운 공기만 다시 뒤섞을 뿐이다.
게다가 최근 마음을 심난~하게 만드는 일들이 겹쳐, 숨을 쉴 때마다 한증막이 느껴진다.
아, 사람이여.
사람을 정의하는 무수히 많은 말 중에 지금 가장 와닿는 단어는 '보잘 것 없는' 이다.
손톱 아래 가시가 박힌 것처럼, 아주 작은 어려움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으니..
글 한 줄이 도통 써지지 않는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듯, 눈이 오면 옷깃을 여미듯,
글을 쓰는 일이 그저 자연스러웠던 때가 언제더라.
키보드를 두드리는 시간은, 내게 숨을 고르는 일과도 같았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글을 쓰는 것이 답답하다.
마음속 어딘가에 쌓여 있던 불안이 글자 사이로 스며들어 간다.
무엇을 써도 불편한 내 마음은 자꾸만 뱉어낸 글자들을 지우라 재촉한다.
그러다 보니 한 없는 회의감이 마음을 덮는다.
'글은 써서 뭐 하나..'
심란한 마음(+허기진 배)을 달래 보려 햄버거를 사 왔다.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지만, 맞다.
마음을 달래는데 맛난 것만 한 게 없다.
포장을 뜯는 소리가 유난히 시끄럽다.
한 입 베어 물자 두텁고 텁텁한 빵, 그 속에 물컹하게 찌든 기름 냄새와 함께 놓여있는 감자튀김,
그리고 짙은 검은색의.. 고기인지 뭔지 알 수 없는 패티가 입안에서 어색하게 뒤엉킨다.
평소엔 그냥저냥 먹었던 햄버건데, 오늘따라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무언가를 씹고 있다, 내 속을 채운다는 감각만 남아 있다.
그래, 유튜브를 켜볼까.
머릿속을 비우고 싶은 마음에 여기저기 채널을 기웃거린다.
화면 가득 쏟아지는 웃음소리, 화려한 자막, 인기 콘텐츠들.
하지만 아무리 웃긴 장면이 나와도 입꼬리가 오르지 않는다.
그저 모니터 속에서만 세상이 바쁘게 돌아가고,
나는 바깥 어딘가에서 조용히 멈춰 서 있는 기분이다.
뭘 해도 마찬가지였다.
햄버거의 맛도, 영상도, 그 어떤 것도 내 마음의 빈자리를 채워주지 못했다.
답답함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마치 물속에 오래 잠겨 있다가, 더는 버티지 못할 때 느껴지는 그런 답답함이었다.
다시 키보드 앞에 앉았다.
손끝이 조심스레 자판 위를 맴돈다.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
엔터.
커서.
가지런히 ASDF와 JKL에 놓인 손가락.
그러나 시동은 걸리지 않고,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있었다.
처음엔 망설임이 앞섰지만,
조금씩 글자가 하나둘 모니터 위에 찍히기 시작한다.
그 속도는 느리고, 문장은 자주 끊긴다. 지우기도 여러 번.
그러나 그 더딘 리듬 속에서 내 안의 무언가가 조금씩 풀려 나오는 걸 느낀다.
자판을 두드릴수록 마음속을 해집던 심난함이 녹여져 흘러나간다.
단어마다, 문장마다, 천천히, 조금씩.
마음이 말이 되고, 말이 생각이 되고, 생각이 손 끝에서 녹아져 나간다.
마치 오랜 장마 뒤에, 비로소 땅이 숨을 쉬듯
답답했던 내 마음에도 작은 숨구멍이 트인다.
그래, 이게 내가 숨 쉬는 방식이었지.
더디고 서툴지만, 그 한 글자 한 글자에 숨이 붙는다.
그렇게 조금씩 두드리다 보니,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온다.
‘아.. 난 글 쓰는 걸 좋아하는구나.’
심난~~ 함에 이번 주는 손 편지를 잠시 쉬고,
넋두리를 해봤습니다. 하하;
심난할 때,
마음이 요동칠 때,
손 끝이 떨릴 때,
불안할 때,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을 때,
누군가 너무 미울 때,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벽이 눈앞에 있는 것 같을 때,
폭풍 속을 걷고 있을 때.
당신은 뭘 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