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드라마 김부장과 함께한 아메리카노

때로는 뜨겁게,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미지근하게 마시는 아메리카노

by O Ri 작가


우리가 흔하게 카페에서 사 마시는, 얇은 크레마 층이 있는 블랙의 아메리카노 커피다.


나는 요즘 저녁에 아르바이트 하는 베이커리 카페에서 하루 한 잔의 아메리카노는 마실 수 있는 혜택이 생겼다. 그래서 아르바이트 할 때 아메리카노를 한 잔 진하게 내려 조금 마시고 집으로 가지고 온다.


주말에는 내려온 커피를 두 잔으로 나누어 놓는다.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동안,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에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


"너는 왜 임원이 되고 싶었냐?"


"왜 안됐는지, 왜 그렇게 바둥바둥 살았는지? 뭐 위해서 그렇게 살았는지 알아?"


"너 자신한테 좀 솔직해져 봐."





마지막 회에서 김부장이 임원 승진에어 탈락돼 화가 난 후배한테 던진 대사가 머릿 속에서 멤돈다.


나는 과연 내 자신에게 얼마나 솔직한지, 나는 과연 내 속을 얼마나 잘 들여다 보고 있는지, 나도 궁금해진다.






나는 왜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었을까? 나는 왜 그렇게 혼자서 아둥바둥 애를 썼을까?


솔직히 지금은, 사는 이유 같은 건 모른다. 그저 어린 아들과 절벽 끝에서 떨어지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지려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생각 같은 거 할 시간이 없다. 때때로 밀려드는 멍한 무기력함을 이겨내려 애쓰고 있을 뿐이다.


미래를 고민하고, 꿈에 대해 갈등하는 것도 그나마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먹고 살 지장은 없을 때 하는 거다.


작가로 성공하고 싶어 혼자서 아둥바둥 겁없이 도전할 때도 사실 그런 건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때는 그냥 앞만 보고 달리려 했지, 그런 생각 때위는 집어 치워 버렸던 거 같다.


젊음이 그런 건가?


20대, 30대 젊음에서는 솔직히 내가 왜, 라는 질문 앞에서 정말 단순하다. 그냥 좋아서, 하고 싶어서다. 꿈이 있고,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것에 대한 자존감도 나름 있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고, 현실에서 뜻대로 되지 않는 벽들과 부딪기고 찢기고 너덜너덜해져서야 자존감의 갈림길에서 헤맨다.


그때가 되면 '왜? 노력하면, 꿈은 이루어진다며? 왜 안되는데?'라는 짜증과 화부터 올라온다. 그 화가 어느 정도 무너져 내리며 나를 탓하게 될 때쯤 자신감마저 무너져 내린다.

보이지 않는 권력과 힘에 내 초라한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러워진다.




(나는 우리 부모님 덕에 일 갖고, 타인의 기회 가지고 장난 치는 사람들을 제일 혐오한다. 내가 혐오한다고 달라지는 세상 구조는 없다. 결국 무너지고 다치는 건 나다.)





아메리카노와 주말을 함께 했던 드라마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에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가 어제로 종영했다.

마지막 장면, 김부장이 세차장 소파에 두눈 감고 누워 그동안의 일들을 꿈꾸듯 회상하고 끝난다.



그리고 "김낙수 넌 왜 이리 쨘하냐."란 와이프 박하진의 대사가 참 가슴 깊이 울렸다.


우리는 왜 이리 쨘하게 사는 걸까?

답도 안 보이고 결과를 알 수 없는 삶의 길거리에서 걷고, 뛰고, 헤매고, 방황하고, 낑낑 대고, 마음대로 울지도 못하면서 왜 이리 아둥바둥 쨘하게 사는 걸까?


누가 알아준다고, 누가 그런 나의 손을 진실로 잡아 주기나 한다고.


10년, 20년 넘게 앞만 보고 달려도 내쳐지는 현실에서 누가 나를 알아나 준다고.


그 모든 것에 대한 정답을 알고 있다면, 밥 한 끼 제대로 챙겨 먹자고 아둥바둥 발버둥 치며 그렇게 쨘하게 살까 싶긴 하다.



우리 조금은 덜 쨘하게 살면 안될까?


그랬으면 좋겠다.


현금 부자 아닌 이상은, 온 국민이 이제 내 것 하나 가지는 것도 힘든 정부다. 현금 부자 아니면 대접 받기도, 한 계단 한계단 올라가는 보람도 꺾고 있는 정부다.

내가 노력해 집 한 채 사기도 힘들다. 살기 위해 마지막 희망인 내 명의 집도 팔기 힘든 시대다. 내 명의로 뭔가를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조금은 덜 쨘하게 살 수 있는 대한민국이었음 좋겠다.


내가 포기 안하고 노력하는 만큼은 얻어 내는 대한민국이었음 좋겠다. 나이 상관 없이, 경단녀이든 아줌마이든, 차별 없는 대한민국이었음 좋겠다. 남의 노력과 기회와 일 갖고 장난치지 않는 대한민국이었음 좋겠다.


그 기본적인 바램이 왜 이리 제일 힘든 현실인지 누가 납득 되는 답이라도 알려 주는 세상이었음 좋겠다.


때로는 얼음 가득한 아메리카노를, 때로는 뜨겁게 김이 올라오는 아메리카노를, 때로는 다 식어 버려 미지근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현실이라도, 최소한의 나의 노력과 나의 기회가 존중 받는 대한민국이었음 좋겠다.

keyword
이전 03화쓰디쓴 에스프레소의 그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