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글자로 묶어두기

매일글쓰기 11: 책을 기억하는 방법

by 여름

기억의 한계를 실감하는 요즘이다. 시간을 들여 책을 읽었음에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모래처럼 머릿속이 텅 비어 있다. 한해한해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일이 더 잦아진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앨범 속 사진처럼, 책의 내용을 차곡차곡 오래 간직하고 싶다. 그래서 기록하기로 했다. 마음에 닿았던 문장, 오래 기억하고 싶은 구절을 공책이나 노트북에 옮겨 적는다. 언제 다시 꺼내볼지 기약이 없지만 내 공간에 쌓인 책의 흔적을 보면 든든해진다.


블로그에 책 리뷰 포스팅을 남기고 있다. '간단한 줄거리와 느낌, 오늘의 문장'을 적어두면 책을 조금 더 가까이 읽은 것 같아 뿌듯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느껴지는 의미가 있다. 월말에는 독서 결산을 한다. 북적북적 앱을 이용하면 매달 읽은 책의 양을 책장의 높이와 아기자기한 캐릭터로 표시된다. 열심히 읽은 달에는 책장이 높아서 괜스레 으쓱하게 된다. 올해의 기록을 보니 '복숭아'가 자주 보인다. 다음 달에는 '찐고구마'만큼 읽어보자고 마음이 바쁘게 달려간다.


읽고 정리하고 기록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마구잡이로 떠오른 생각을 보기 좋게 다듬어 꺼내어놓는 일이 번거롭고 힘들게 여겨져서다. 그럼에도, 남겨두지 않으면 곧 희미해져 버릴 테니 수고로움을 눌러가며 애써 글자로 꼭꼭 묶어두게 된다. 그렇게 쌓인 기록들이 나를 지지해 주는 힘이 된다.


오늘도 책과 함께 공책과 연필을 준비한다. 반짝이는 문장을 만나면 잠시 멈춰서 연필을 들고 메모한다. 책을 읽는 시간이 기록과 함께 더 단단하고 깊어지고 있다. 언젠가 이 글을 들여다보며 오늘의 마음을 떠올리는 날이 오겠지? 어쩌면 '쓴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이자 지금을 더 소중히 보내는 또 하나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올해의 독서 기록



이미지: Pixabay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일기, 사실주의에서 추상화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