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회복탄력성’이라는 단어를 엄마가 되고 나서 처음 알았다. 아이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육아서나 육아 관련 영상 등을 찾아보게 되었고, 보다 보면 드물지 않게 회복탄력성이 주제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회복탄력성에 대해 특별히 깊게 생각해본 것은 아니고, 회복탄력성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영재발굴단의 서연이 이야기를 우연히 보게 된 때부터 였다.
하나의 언어를 능숙하게 하기도 쉽지 않은 6세에 5개 국어를 꽤나 능숙하게 하는데, 심지어 모든 언어를 엄마가 직접 배워가며 가르쳤다는 서연이의 이야기는 당시 꽤나 화제가 됐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영재발굴단 서연이편이 방영되고 서연맘이 블로그나 책 등으로 한창 유명하던 시기에는 애엄마가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히 서연이를 알지 못했다. 나는 한참 후에, 아이를 낳고 육아 관련 정보들을 찾다가 우연히 영재발굴단 서연이 방영분을 보게 되었다.
사실 여러 나라 말을 잘한다거나 유달리 똑똑한 아이라는 점이 나에게 흥미로웠던 것은 아니다. 내가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상황인 것으로 보이는데, 아이가 어째서 행복하고 씩씩하게 자랄 수 있지?”라는 점. 오래 전에 본 방송이라 구체적인 부분은 잊었으나, 당시 영재발굴단 측 전문가는 서연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이유는 회복탄력성이 높기 때문. 일반적으로 많은 언어를 배우는 환경이 스트레스일 수는 있으나 서연이는 회복탄력성이 높아 스트레스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안 받거나 적게 받을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살면서 스트레스 받을 일이 얼마나 많은데!
정신적으로 건강한 아이로 키우는 것이 중요한 양육 목표인 나에게는 회복탄력성이 너무 매력적인 키워드로 다가왔다. 부침이 없는 인생이란 있을 수 없고, 살면서 누구나 수차례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기에, 나는 무엇보다도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음 같아서는 평생 아이에게 닥칠 모든 문제를 앞서 해결해주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는 튼튼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특히 “나”라는 존재를 처음으로 채워 나가는 영유아기가 바로 회복탄력성을 기르기 위한 교육에 힘써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회복탄력성을 기르기 위한 방법에 관해서는 수많은 글과 팁이 산재해 있으나, 오늘은 그 중에 내가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1. 부모가 좋은 롤모델이 될 것
아이에게 내가 먼저 회복탄력성이 높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모습을 자신이 지향해야 할 삶의 지표로 여긴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타고난 기질의 영향도 크겠으나,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에 대한 부모의 반응을 학습하여 따라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쉬운 일은 아니지만 회복탄력성의 관점에서 아이에게 좋은 롤모델이 되고자 한다. 스트레스 상황에 닥쳤을 때 그것을 바람직하게 해결하는 모습을 꾸준히 제시하는 것이다.
처음 아이와 블럭놀이를 시작했을 무렵에는 아이가 블럭을 쌓다가 무너지면 상당히 화를 냈었다. 한 두 개 블럭이 생각대로 쌓아지지 않으면 다 부셔버리거나 조금만 무너져도 그만두고 자리를 떠나버리기 일수였다. 별 것 아닌 일에 지나치게 과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아 초보맘인 나는 이러한 아이의 행동이 괜찮은 것인지에 관해 폭풍 같은 인터넷 검색을 했던 기억이 있다(당시에 항상 있던 일..). 그리고 같이 쌓던 블럭이 무너지면 아이의 반응이 어떻든 ‘아..좀 아쉽네. 하지만 괜찮아. 블럭은 원래 쉽게 무너지지. 언제든 다시 쌓으면 되는 거야!’라고 부러 더 괜찮은 듯 반응했다. 그리고 한참 뒤, 아이와의 블럭 놀이에 내가 더 몰입해서 크고 멋진 것을 만들겠다고 열정을 발휘하다가 블럭이 무너졌다. 순간 아쉬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아…’ 하고 탄식이 나왔는데, 아이가 먼저 “괜찮아! 다시 만들면 되지” 해주는 것이다. 순간 고마웠고, 기특했다. 엄마가 괜찮은 척 연기한 보람이 있구나!
블럭놀이는 상당히 사소한 일이지만, 작은 어려움을 잘 극복하는 것이 결국 큰 어려움 역시 잘 극복하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많은 작은 극복의 경험들이 결국 아이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지 않을까. 아이의 옆에서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고, 바람직한 반응과 극복의 예시를 보여줄 수 있도록 앞으로도 연기를 열심히 해보는 것으로.
2. 아이의 모든 수요를 해결해주지 않을 것
- 모든 리스크를 부모가 앞서 제거하지 않을 것
이 두 가지는 비슷한 이야기인 것 같아서 하나로 묶어서 정리해본다. 이는 결국 아이에게 작은 도전을 계속하게 하고 스스로 도전과제를 극복할 기회를 주라는 의미로 생각된다. 꼭 회복탄력성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아이가 점차 부모로부터 독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이의 수요를 모두 해결해주지 않고, 모든 리스크를 앞서 제거해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사실 굉장히 당연한 이야기인데, 나같이 성격 급하고 걱정도 많은 부모에게는 이러한 원칙을 지키는 것이 의외로 쉽지 않다.
한국에서는 엄마나 아빠가 놀이터의 기구 위까지 올라가서 아이를 케어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뉴욕에서는 기어다니거나 아직 혼자서는 걷지 못하는 정도의 아이를 붙잡아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웬만해서는 엄마나 아빠가 놀이터 시설 위에 올라가는 경우를 볼 수 없다. 놀이터 위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어린아이가 어찌할 바를 몰라 얼어버리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것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데, 그래도 항상 엄마나 아빠는 쉽게 올라가 아이를 데려오지 않는다. 어느 쪽 발을 어디에 딛으면 되는지, 어느 손을 어떻게 잡으면 되는지 소리칠 뿐이다. 결국 해도 해도 안되면 물론 올라가 데리고 오지만, 그것은 아이에게 혼자 해결해 볼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준 다음이다.
나는 아직도 아이가 높은 곳에 올라가면 마음이 두근거리고 내 키보다 높은 사다리를 올라가면 떨어질까봐 엉덩이를 받쳐주고 싶은 마음을 참기 어렵다. 날쌔고 큰 아이들이 거칠게 놀면 내 아이가 치일까 봐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다. 하지만 조만간 아이는 놀이터를 벗어날 테고, 더 이상 나는 아이의 엉덩이를 받쳐주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다짐해본다. 조금 더 지켜보기로, 조금 더 기다리기로.
3. 바람직한 방법으로 아이를 칭찬할 것
마지막으로 이 내용을 정리하고자 한 이유는 내 입장에서 이것을 지키기가 참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칭찬하라’는 것은 많은 육아 전문가들이 공통적인 의견이다. “너 정말 잘한다!”라고 하면, 아이가 애초부터 잘하지 못하는 것에는 흥미를 쉽게 잃거나 모든 것을 잘해야 한다는 결과 중심의 사고를 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과정이나 노력을 칭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정말 좋은 이야기인데, 실생활에서 그러한 칭찬을 하기가 쉽지는 않다. “엄마, 나 레고로 이런 집을 만들었어!”하면, “와 정말 멋진 집이다! 레고 정말 잘한다!”라는 소리가 먼저 입에서 튀어나온다. 너 정말 레고를 열심히 하는 구나, 이 부분은 꼼꼼히 만들어보았구나. 오랜 시간 그만두지 않고 해냈구나..? 과정과 노력을 칭찬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가끔은 대체 뭐라고 해야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는 경우도 있다. 과정과 노력을 칭찬하려면, 보통 그 과정을 지켜봐야 가능하다. 결과물만 보고 그 뒤에 숨겨진 아이의 노력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나는 아직 더 내공을 쌓아야 하는 것 같다. 그래도 항상 노력해본다. 가끔은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너무 크게 상심하지 않는 아이로 자라길 바라며. 원하는 일은 재차 도전해보는 아이가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적는 와중에도, 내 아이의 앞날에는 한 치의 어려움도 없었으면, 항상 행복과 행운이 가득했으면 하고 바라지는 것을 어쩌지는 못하겠다. 그래도 알고 있다. 앞으로 점점 더 아이는 내 손과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성장할 것이고, 나는 아이의 삶 중 상당 부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나의 역할은 아이가 도전하고 돌아와 쉴 안식처이면 충분할 것이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아이로 자라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