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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례짱 Nov 09. 2023

3) 진료 중에 레모나 냅다 주는 수의사

아 아이가 먹을 건 아니고요, 보호자님 드시라고 가져왔어요.

 심리상담은 일주일에 한 번씩, 내 상태에 따라 상담 간격을 조절해 가며 총 3달 정도 진행되었다. 


 상담 초반에 내 심리검사결과지를 들고 오신 상담선생님께 "기가 많이 죽어 계신 것 같아요. 이 상황에서 출근을 계속하고 계신다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하세요. "라고 위로를 듣고 왈칵 눈물이 나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저런 말을 하면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진료 볼 때 활용하려고 머리에 입력하고 있었던 건 비밀. )


 상담을 진행하면서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고 나를 좀 더 완성된 수의사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일들이 중간중간 생겨났다.


 바로 지금 기억이 나는 에피소드는 외이염으로 계속해서 2주에 한 번씩 병원에 내원하는 10kg가 넘는 큰 코카스파니엘 친구와 그 보호자님에 대한 이야기이다.


강아지는 사람과 달리 이도가 수직 이도와 수평 이도로 나뉘어 있어서 외이염이 잘 발생한다.


 외이염이 있는 강아지들은 귀를 만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귀청소를 가정에서 하시기가 매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의 보호자님은 귀청소를 매일 열심히 해주시는 감사한 분이었다. 굉장히 침착한 느낌의 여자 보호자님이셔서 약간 방심(?)을 하고 있었는데, 계속된 치료에도 아이가 호전이 없자 하루는 눈물을 잠깐 보이신 적이 있다.


 '비상사태 비상사태, 지금 내가 수의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우선 프로토콜을 머리에 입력한 대로 휴지를 뽑아서 드리자. 아앗, 왜 진료실에 물티슈 밖에 없는 거야. 휴지, 젖은 휴지 말고 마른 휴지를 찾자. 마른 휴지가 어디에 있었지? 처치실에 있었지. 그래 처치실로 가자. 휴지 여기에 있구나 휴.. 됐다. 그런데 휴지로는 위로가 부족하지 않을까. 어 여기 레모나 있다. 레모나도 같이 드리자. 됐어 이제 다시 진료실로 뛰어들어가!' 

적용사항에 '앞에 있는 사람이 울 때'도 있었더라면..  (출처: 경남제약)

 헐레벌떡 들어가 레모나랑 휴지를 건넸다. 


 보호자님은 이미 눈물을 다 닦고 진정이 끝나신 지 오래되어 보였다.


 "하하, 제가 좀 늦었네요. 우선 이거라도.."


 갑자기 레모나를 건네니 보호자님께 살짝 당황의 기색이 느껴졌지만, 이내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진료실을 나가셨다. 나는 진료실 문이 닫히고 한참을 진료실에 앉아 혼자 생각했다.


 '바보야 레모나는 정말 오버했어. 연습했던 따뜻한 한 마디나 건넬 것이지 비타민은 냅다 왜 드린 거야. '

그날 심난해서 해 먹었던 꿀떡 떡볶이. 정말 맛있었다.


 언젠가 위의 이야기를 상담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그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요?"라고 질문을 드린 적이 있다.


  "표현이 좀 서툴러도 마음은 충분히 전달됩니다. 보호자님은 그걸 다 아셨을 거예요. 제가 이런 얘기드리면 얘가 또 상담사라서 듣기 좋은 얘기 해주는구나 하시겠지만~ 아닙니다. 진짜예요~"


 (물론 선생님의 말처럼 의심 한 스푼 넣었지만) 선생님의 말을 꼭꼭 씹어 음미하면서 표현이 서툴러도 마음은 충분히 전달된다는 그 명제를 머릿속에 넣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다음날 출근해서 그 보호자님께서 내원하셨길래 환자 차트를 켰는데, 새롭게 차트에 업데이트된 특이사항이 보였다. 뭐, 내 휴무일날 오셨다가 내가 없다고 돌아가셨다고? 그리고 내 출근날 맞춰서 다시 오셨다고?


어, 진짜로 뭐가 통하나 봐.

저것은 참인 명제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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