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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을 읽는 100가지 방법

34. 대화의 기술

by 제이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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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은 삶에서, 일상에서 대화의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지 소설 속에서 보여주려 한다. 대화의 방식은 그 사람의 인격을 보여주는 가장 기본적인 지표가 된다.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줄 모르거나, 대화의 흐름을 차단하고, 맥락에도 맞지 않는, 들을 가치도 없는 말을 내뱉는 이가 있는가 하면,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하고, 마음을 움직여서 행동을 개선시키는 식의 대화 기술을 보여주는 이들도 있다. 루시 스틸, 존 대시우드 부인, 페라스 부인 등은 전자에 해당하고, 엘리너와 에드워드 페라스, 브랜든 대령 등은 후자에 속할 것이다. 루시 스틸은 마음이 불안하면서도 부드러움과 친절로 가장하여 상대가 자신을 부러워하게 만드는 인물이고, 존 대시우드 부인은 남을 깎아 내려서 자신의 위상을 높이려고 하는 인물이다. 페라스 부인은 자신이 미워하는 인물을 여러 사람이 있는 앞에서 창피를 주어 상처 입히는 인물이다. 그녀의 창피 계략에는 비교 전략이 있다. 가령 맘에도 없는 루시 스틸에게 일부러 과한 칭찬과 친절을 베풀어서 상대적으로 엘리너가 마음의 상처를 받도록 한다. 그러나 이런 방법을 엘리너는 다 궤뚫어 보고 있다.


엘리너는 이제 와서 이런 행동 때문에 불행해할 까닭이 없었다. 몇 달 전이라면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을 테지만, 이제는 그런 식으로 그녀를 괴롭힐 힘이 페라스 부인한테는 없었다. 그리고 스틸 양 자매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는 것, 자기를 깔아뭉개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차별 대우를 하는 것도 그녀에겐 재미있을 뿐이었다. 루시는 그야말로 환대를 받았는데, 모녀가 자기가 아는 만큼 알고 있었다면 다른 누구보다도 창피를 주고 싶어 환장하였을 바로 그 사람에게 하해 같은 친절을 베푸는 것을 보고 고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 반면 자기는 상대적으로 그들에게 상처를 입힐 힘이 전혀 없음에도 두 사람 다 무시의 표적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잘못 짚고 친절을 베푸는 것을 보고 웃으면서도, 그 친절이 야비한 어리석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이 들거나 그 친절을 지속켜 보겠다고 스틸 양 자매가 약삭빠르게 알랑거리는 것을 보노라면 네 사람 모두를 철저하게 경멸하지 않을 수 없었다.(306-307)


그녀는 페라스 부인의 친절로 루시의 기가 크게 살아난 것이 어이없었다. 자기 이해관계가 얽힌 데다가 허영심에 눈먼 나머지, 엘리너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베풀어졌을 것이 분명한 배려를 자신에 대한 찬사로 받아들였거나 아니면 그녀의 진짜 정체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주어졌을 뿐인 호의에서부터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라는 기대를 끌어낸 셈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그랬다는 것은 그 당시의 루시의 눈이 생생하게 말해 주었을 뿐 아니라 다음 날 아침 아예 드러내 놓고 자기 입으로 말하기도 했다. 엘리너가 혹 혼자 있을지도 모르니까 레이디 미들턴에게 따로 부탁해서 버클리 가에 내린 그녀는 자기가 얼마나 행복한지 토로할 수 있게 되었다. (313)


심지어 존 대시우드 부인은 대화를 하더라도 주변 인물들에게 들을 만한 가치도 없는 말을 이어가는 인물이다. 과시욕만 있을 뿐, 진정성있는 대화의 면에서는 상당히 부족한 인물이다.


정찬은 거창하였고 하인들도 많았다. 모든 것이 안주인의 과시욕을 말해 주었고 그것을 받쳐주는 바깥양반의 능력을 말해 주었다....실제로 대화의 면에서는 부족이 심각하였다. 존 대시우드는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말은 별로 하지 못했고, 그의 부인은 훨씬 더 심했다. 그러나 이런 점이 뭐 특별히 창피스럽지도 않았던 것이, 방문자드르이 대다수가 도토리 키 재기 꼴이었기 때문이다. (307)


페라스 부인이나 존 대시우드 부인은 특정한 의도를 품고 대화를 이어가기에 어쩌다 그들이 하는 칭찬에도 진심이 묻어나지 못한다. 그들의 말은 어설픈 칭찬일 뿐이다. 예를 들어 존 대시우드 부인은 엘리너가 그린 화열가리개의 그림을 칭찬하다가도 페라스 부인의 눈치를 보면서 이내 화제를 바꾸어 갑자기 모턴 양의 그림을 칭찬하기 시작한다. 메리언은 이런 어설프고 말도 안되는 칭찬을 보면서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한다.


"흐음." 페라스 부인이 말하였다. "아주 예쁘군." 그러고는 가리개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기 딸에게로 돌려주었다.

패니마저도 잠시 동안 자기 어머니가 너무 무례하다고 생각하였던 듯했다. 약간 얼굴을 붉히면서 즉시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정말 예쁘지 않아요, 엄마, 그렇지요?" 그러나 그런 후 다시, 자기가 너무 친절하였나, 너무 추켜주었나 하는 걱정이 확 들었는지, 바로 이렇게 덧붙였다.

"모턴 양의 그림 스타일에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 않으세요, 엄마? 그 아가씬 정말 기가 막히게 잘 그려요! 지난번 그린 풍경화는 얼마나 멋지게 그려졌는지!"

"멋지지, 암! 그러나 그 애야 못 하는 게 없지."

메리앤은 이것을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이미 페라스 부인이 마음에 안들어서 죽을 지경이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이렇게 턱도 없이 엘리너를 뭉개고 엉뚱한 사람을 칭찬하는 것이 거슬러서 열을 내며 바로 이렇게 말하고 나섰다.

"굉장히 독특한 칭찬이네요! 우리한테 모턴 양이 대체 뭐죠? 누가 안다고, 누가 상관이라도 한대요? 지금 우린 엘리너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요." (310)


반면 엘리너와 메리앤의 대화는 서로를 통한 인격의 성장이 보이며, 서로를 향한 진심이 묻어 있다. 1부 10장에 나온 엘리너와 메리앤과의 대화를 살펴보도록 하자.


메리앤은 이미 윌러비와 지내면서 그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긴 상태이다. 사실상 연인처럼 행동하지만 윌러비가 메리앤에게 정식 구혼을 한 것도 아니고, 분명한 미래 약속을 한 것도 아니다. 메리앤은 모든 것이 사랑의 운명이라고 믿으면서 윌러비에 대한 마음이 단호함을 드러낸다. 당연히 언니로서 엘리너도 동생의 행복을 바란다. 하지만 상대의 신뢰도를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동생의 그들의 관계가 너무 빠르게 전행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엘리너는 동생과 대화를 하면서 동생의 감정적 태도를 나무라거나 하고자 하는 말을 직선적으로 내뱉지 않는다. 우선 동생의 생각과 행동을 공감해 주면서 대화를 이끌어 간다. 윌러비가 공짜로 말을 주겠다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 전후에 이들 자매가 나누는 대화는 공감, 문제 제기, 메리앤의 반발, 이성과 감성이 균형을 이룬 엘리너의 조언, 문제 정리의 흐름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메리앤." 그가 떠나자마자 엘리너가 말했다.

"내 생각에 말야. 한 번의 아침 만남으로서야 넌 참 잘하더구나. 거의 모든 중요한 문제에 대한 윌러비 씨의 의견을 벌써 확인했거든. 쿠퍼와 스콧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았고, 이 시인들의 아름다움에 응분의 평가를 하고 있다는 확신도 얻었고, 또 포프에게 정도 이상의 찬사를 바치고 있지 않다는 것도 속속들이 알게 되었지. 그러나 이렇게 모든 주제를 다 써먹어 버리면, 앞으로는 어쩔래? 길게 만나게 될텐데 말이야. 좋아하는 화제가 곧 바닥나 버릴테고, 다음번에 만나서는 회화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그분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으로 족할 것이고, 그 다음에 만나서는 결혼에 대해서, 그러고 나면 더 이상 물어볼 것도 없을거야."(66) 공감


메리앤이 아주 신이 나서 하는 소리가, 윌러비가 말을 한 필 주었다는 것이다. 서머싯셔 장원에서 그가 직접 키운 말로, 여성이 타기에 아주 안성맞춤이라고 했다. 말을 가지는 것이 어머니의 계획에는 없던 일이었고, 혹 어머니가 이 선물을 기화로 마음을 바꾸는 경우에는 하인이 탈 말을 또 한 필 사야 하고 그 말을 탈 하인도 구해야 하며 말들을 들일 마구간을 지어야 할 판임을 고려하지도 않고서, 그녀는 덜컥 그 선물을 받아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마음이 들뜰 대로 들떠서 언니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엘리너는 별로 잘 알지도 못하고 기껏해야 아주 최근에 알게 된 사람한테서 이런 선물을 받는 것이 과연 예의 범절에 어울릴까 생각 좀 해보라고 했다. (80) 문제제기


"잘못 알고 있어, 엘리너" 하고 그녀는 열이 나서 말했다. "내가 윌러비를 잘 알지 못한다니.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건 맞아. 그러나 언니와 엄마난 빼면 이 세상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아는 사람이야. 친해지는 데는 시간이나 기회가 문제가 아니야. 성격이 전부야. 서로 교분을 트는 데 칠 년도 부족한 경우가 있고, 칠 일이면 족한 경우도 있어. 윌러비한테가 아나리 차라리 오빠한테서 말을 받는 편이 더 예의범절에 어긋하는 잘못을 범한 꼴이 될 거고. 오래 같이 살았지만 존 오빠에 대해서 내가 뭘 알아. 그렇지만 윌러비에 대해서는 오래전에 판단이 끝났어. (80) 메리앤의 반발(감성의 논리)


메리앤은 동생의 기질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민감한 문젱에 대해서 반대해 보았자, 자기 소견에 더 집착하게 될 것이 뻔했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한 동생의 애정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혹 하인 수를 늘리자는 것에 동의라도 하는 경우 마음 약한 어머니가 감당해야 할 불편함을 알아듣게 설명해 주었더니, 메리앤은 금방 수그러들었다. 그리고 괜히 그 제안을 들먹여서 어머니가 혹여 이렇게 도를 넘은 친절을 받아들일 유혹을 느끼지 않게 하겠다고, 다음번에 윌러비를 만날 때 사양하겠다고 약속하였다. (80-81)감정과 이성이 균형을 이룬 엘리너의 조언


위 대화는 소설의 일부이지만, 계속해서 다른 장에서도 비슷한 방식의 대화가 엿보인다. 예를 들어, 엘리너와 브랜든 대령의 대화, 엘리너와 에드워드 페라스의 대화 또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대화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서로 성장해가는 엘리너와 메리언의 모습이야 말로 제인오스틴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대화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 이런 대화는 서로간에 계속해서 신뢰를 쌓게되는 대화이다. 서로의 말을 끊지 않고 조용히 경청하다가 상대의 의견을 조심스레 물어보고, 감정보다 이성적 태도를 유지하면서 차분하게 대화하는 모습, 다시 한번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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