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사장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겠지. 처음 내가 일하러 갔을 때 만난 사장은 부드럽게 존댓말을 쓰는 사람이었어. 유심히 내 얼굴을 보더니 지난 세월을 통해 얻은 경험이나 직관으로 정체를 파악하려는 듯했어. 얼굴 피부는 하얗고 눈은 번뜩였는데 거기에 망설임이 조금 있기는 했지만 밀어붙이기로 한 것 같았어. 내가 육체노동에 미덥지 않은 모습이었는지 모르지. 그 빛이 사라지자, 어디 사는지, 애들이 몇인지 묻더니 언제부터 일을 시작할 수 있는지 물었어.
- 당장 내일부터라도 할 수 있습니다.
- 좋아요. 이번 주는 갔으니 다음 주 월요일부터 나와요. 일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하루 일하고 가는 사람도 있고, 몇 시간 일하고 가는 사람도 있어요. 일단 일주일만 해봐요. 돈은 내가 드릴 테니까요.
- 네.
- 일단 일주일만 해봅시다.
사장의 말투에서 나는 어디선가 많이 들었던 억양이라는 것을 깨달았어. 금방 알아낼 수 없었지만 어딘지 친근한 느낌이 들었지. 대체 어느 지방 억양일까. 가만 계산대에서 일을 보는 사장 아들도 그런 말투를 썼어. 물건을 팔기도 하고 일꾼들에게 배달을 지시하기도 하는 큰아들.
사장 큰아들은 키가 컸어. 아들과 아버지 키가 그렇게 다를까 싶었지. 어찌 보면 고릴라처럼 보였어. 많이 먹고 움직이지 않아도 살이 찌지 않는다는 고릴라. 아니 좀 덜 떨어져 보이는 영화 주인공 어니스트 같았어. 얼굴에 난 여드름 자국으로 곳곳이 패여 있었고. 이것은 작은아들도 마찬가지였는데 둘 다 좋은 차를 가지고 있었어. 어니스트는 하얀 싼타페를 몰았고, 한때 축구선수로 뛰었던 작은아들은 K9을 운전했어. 그것을 보며 하는 생각이란 뻔했어. 아버지를 잘 만나지 않았더라면 둘에게 그런 좋은 차는 언감생심이라는 거지. 아니야.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대부분 직장인이 쉽게 할부로 그런 차를 구입해 끌고 다녔으니까. 그런데 어니스트가 말할 때 한 번씩 보면 입술이 새파란 거야. 거기에 대해 같이 일하는 누구도 말한 적이 없지만, 그건 심장이 안 좋다는 증거였어. 내가 아는 네이버 지식에서는 말이지. 그것을 보자 처음에는 조금 안 됐군, 이렇게 생각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 하긴 그렇게 성질을 내고 저보다 나이도 많은 사람들을 돼지 새끼처럼 몰아대니 심장이 좋을 리가 있겠어.
지금도 생각이 나는군. 내가 MK주방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어니스트는 고객과 한판 싸움을 벌였어. 아, 이런 얘기를 한다는 걸 알면 어니스트가 몹시 섭섭해 할지도 모르겠어. 같이 일했던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만 이렇게 글로 옮기지는 않거든. 하지만 누구라도 말하지 않으면 아마 모를 거야. 내가 본인 이야기하는 거 말이야. 그렇지만 혹 베스트셀러라도 되면 그건 큰일이 될 거야. 아는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게 될 거니까. 그러나 그럴 일은 여간해서 일어나지 않을 거야. 로또가 당첨되는 것보다 소설이 베스트셀러 되는 것은 더 어렵거든. 그만하고, 혹시 그가 알게 되어도 아니라고 하면 그만이야. 비슷한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말이야. 각설하고, 어느 날인가 물건을 사간 손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찾아온 것이지. 어니스트는 노인네와 고함을 지르고 싸우더니 욕을 해대기 시작했어. 누가 잘못했는지는 몰라. 장사하다 보면 하루에도 열두 번씩 속에서 천불이 난다고 하는 말이 있기는 해. 별사람이 다 있고, 나이가 있으니 젊은 사람을 물로 볼 수도 있지. 갑자기 무슨 소리가 크게 나서 다들 일하다 말고 내다보았어. 물건을 패대기치는 소리였어. 보온고나 소독고가 아닐까 싶었는데 또 패대기치는 소리가 났어. 그때 지나가던 사람이 있었는지 몰라. 그랬다면 아마 큰 구경이다 싶어 보다가 부르르 화를 내는 어니스트를 보고는 질겁하고 도망을 갔을 거야. 그런데 온갖 소리로 매장 안이 떠들썩했지만 일하는 사람 누구도 앞에 나서지 않았어. 이상했지. 누가 보아도. 부장이나 과장도 몇 년씩 같이 일해서 누구보다 사정을 잘 알법한 부장이나 과장도 나서지 않았어. 키가 작은 노인네는 어이없는 표정을 몇 번 짓더니 그랬어.
- 네가 나이도 어린 데 그래도, 이렇게 욕을 하고 싸가지 없이 구냐?
그래도 소용이 없었지. 어니스트 입에서 금방 욕이 나왔어.
- 그러니까 꺼지라고 씨발놈아.
그나마 다행이라면 어니스트가 욕을 하고 고함은 질렀지만 주먹을 쓰지 않았다는 거였어. 나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일단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노인을 달래 보내려고 했어. 겁에 질린 노인네도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고. 그러나 그는 노인을 곱게 보내려 하지 않았어.
- 이거 부서진 쓰레기 가져가, 씨발놈아.
발로 지근지근 밟아 깨진 것을 어니스트는 발로 찼어. 나도 차마 말이 안 나왔어. 노인은 입술을 바들바들 떨며 도롯가에 세워둔 차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어니스트에게 잡혔어. 그는 물건을 차 안으로 집어넣은 후에야 돌아왔어. 그때 위층에서 가만히 서 있는 과장을 보았어.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고 말려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