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산호 Aug 10. 2024

나의 공방일지 4

사소한 것이라도 달라지는 점은 없었어. 매일 과장이 누군가와 오랜 시간 동안 전화를 하는 것이 눈에 띄었고. 나는 이런 일을 쉽게 보아 넘기는 성격은 아니었어.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인류가 처음 생겨난 이후로 끝도 없이 되풀이되는, 이성이라는 것과는 상관도 없이 작동하는 불덩어리. 충동이랄까, 본능이랄까. 나는 드러내 놓고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흔히 하는 말처럼 새가슴이 되어 불안했어. 이런 것은 위험신호일까. 살아있다는 신호일까.

  아무튼 과장은 운전대에 앉으면 과속하고 있었어. 마치 다른 차와 경쟁을 하듯 급하게 차를 몰았어. 하긴 부산은 전국에서 가장 난폭하게 운전하기로 소문이 나 있기는 했지. 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바꾸면 바보라고 할 지경이었으니까. 경쟁에서 밀리면 죽는다는 느낌이 드는 걸까. 꼭 백 미터 달리기하는 상황이었어. 체면이고 염치고 지킬 필요가 없는, 원시시대 정글에서 벌어지는 사냥이나 전투였어. 몇백 년 동안 유교의 도리를 뼈에 새겼지만 유전자에는 전혀 흔적이 남지 않았어. 다시 원시시대로의 회귀. 그런 곳에서 운전대를 잡았을 때 속으로 떨지 않았다면 그것은 거짓말이야. 더구나 과속이라니,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었지. 만약 내비게이션이라는 것이 발명되지 않았다면 부산에서 운전하겠다는 생각은 아예 꿈도 꾸지 않았을 거야. 그전에는 어떻게 했나 생각해 보았어. 노포동 주차장에 승용차를 주차하고, 전동차로 갈아탄 후 시내에 들어갔어. 아, 그전에 사고가 있었구나. 누군가를 데려다주기 위해 부산 시내에 들어갔다가 오토바이를 친 적이 있어.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들어갈 골목을 찾고 있는데, 오른편에 바짝 붙어 달리던 오토바이를 보지 못한 것.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경찰서까지 갔다가 치료비 조로 얼마를 지불해야 했어. 그런 뒤로는 시내에 차를 몰고 들어가는 것을 꺼리게 되었을 거야. 

  후에도 나는 과장이 급하게 운전하는 이유는 뭘까, 생각했어. 조수석에 앉을 때마다 그 생각을 했으니까. 그것을 금방 받아들였다면 계속 생각할 필요가 없을 거야. 받아들인 구조에 맞게 내 자리를 찾아 움직이면 될 테니까. 조상들이 것이고, 부모의 것이고,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의 것이었지만 그게 내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어. 나는 보기에 순해 보이면서도 체제순응적인 인간이 아니었던 모양이야. 그래서 나는 이 세상에 맞지 않아. 내가 살아야 하는 곳은 저 하늘에 떠 있는 별이 아닐까, 심히 낭만적으로 생각해 보기도 했어. 그것이 현실과 동떨어진 몽상에 불과할지라도. 그래서 과장에 대한 생각을 놓을 수 없었나 봐. 보기와 다르게 성향이 급한 것일까. 일이 많을 때 빨리 배달해야 하는 구조 때문인가. 부장이나 어니스트 잔소리가 그렇게 하도록 몰아세우는 것인가.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과장이 급하게 운전하는 이유에는 한국인의 기질을 대표하는 사장이 한몫 하고 있었어. 아마 최우선 순위에 들었을 거야. 사장은 앞에서 말했지만 체구가 작고 피부가 하얀 사람이었어. 생각해 보니, 내 편견이지만, 피부가 하얀 사람은 성질이 급하고 무서운 데가 있었어. 내 가족 중에도 몇이 있었지. 행동이 굼뜨고 차분한 편인 내가 별스러울 정도였어. 그들은 내가 보기에 생각할 시간이 거의 없어 보였어.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누군가의 말을 들었을 때 생각하는 표정을 보기 힘들었어. 그들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없었지. 이미 알고 있는 대로 행동하거나 말하면 그만이었어.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그들은 이런 표현도 사실 쓰지 않아. 흑과 백이 분명하달까.  사장은, 어쩌면 내가 잘 아는 유전자였어. 나는 이들 사이에서 인정받거나 칭찬을 받을 일이 없었고. 그들의 성향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이해될 여지가 없었어. …옛날이야기에 말이야.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 …아주 천천히 그들이 숨넘어가도록. 나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졌어. 얼마나 성질이 급한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지경인 남자가 주인공이었지. 나는 내 가족 중 누구와 사장의 이야기를 섞어 혼자 줄거리를 지어내고 있었어. 그것도 아주 급하게 말이야. 그런 사람에게 맞추려고 하면 자연히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어. 꾸물거리다가는 금방 욕이 날아오니까. 빨빨리 안 하고 뭐하고 있어, 어서 지으라고. 이런 말일 거야. 어쩌면 나는 성질 급한 분을 달래기 위해, 나중에 이런 말을 덧붙일지도 몰라. …성질이 급해서 그렇지. 그가 나쁜 사람은 아니야. 그러나 이미 상처를 받아 피가 흐르고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표정을 지을 수는 없었어. 나는 자신을 속이고 있음을 깨닫게 돼.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는 것이지. 그러나 이것도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거였어. 금방 또 화를 풀고 웃어 주어야 되는 거였어. 그는 내 마음의 상처가 아물 때까지, 풀어질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거야. 

  나는 과장이 과속하는 건 사장이 원인 제공자라고 믿기도 했어. 사장 마음에 들게 일하려면 자신도 모르게 액셀을 밟게 돼. 그런데 어니스트는 되레 천천히 조심해서 갔다 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 천천히 갔다 와도 되니까 너무 속도 내지 마세요. 한 달에 몇 개씩 스티커 날아와요. 제발 천천히 다니세요. 

  이 말에 과장이나 부장이나 누구도 대답하지는 않았어. 그저 네, 알았습니다, 대답을 할 뿐이었지. 아들이라고 제 아버지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이 과속하는 걸 모를 리 있어? 옆에 사장이 없으니까 자꾸 그렇게 시키는 거지. 사고 나는 것도 그렇고 한 달에 몇 번씩 과속으로 딱지 끊기는 것도 막아보려는 것이지. 그런데 사장 아들도 성질이 만만치 않았어. 말만 그렇게 할 뿐이지 거의 날아다니는 수준이었어. 나는 그렇게 해도 사고가 나지 않지만 당신들은 그게 가능하지 않으니까요.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어. 

  이제 빠르기로 말하면 서러운 사람이 하나 남았어. 오십 대 후반의 부장이었어. 부장은 늘 술에 취해 있어서 일부러 운전을 기피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혼자 몰고 나갈 때 보면 사장 이상으로 성질이 급했어. 고속도로에서 시속 150킬로미터를 넘기는 것을 본 적도 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과장이 천천히 여유롭게 달린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을 거야. 주위 사람 누구도 얌전히 신호 지키지 않는데 혼자 그렇게 하기는 더욱 어려웠을 터. 특히 지는 게 죽기보다 싫을 수도 있고.

  그러고 보니 또 한 사람을 잊고 있었네. 바로 박기사였어. 과장보다 나이가 한 살 적은 홀아비였지. 과거에 화물차를 운전했다는 박기사는 한 번씩 이런 말을 했어. 

  - 과장님은 그래도 신호등하고 카메라가 있는 곳에서는 멈추기나 하지, 난 그렇게 안 해. 난 무조건 달리지. 신호가 있는 카메라가 있든 말이지. 

  그래서인지 과속카메라에 찍히는 차량은 박기사가 운전한 트럭이었어. 사장이 한 번씩 들고 오는 과속 위반 고지서에는 차량번호가 있을 뿐 운전자는 가리워져 있었어. 원래 얼굴까지 생생하게 나왔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사생활 보호라고 했나 하면서 운전자 모습이 사라졌어. 바람피우는 남녀 사생활도 중요하니까. 아무튼 그랬을 거야. 한 달에 몇 번인가 몰라. 

  - 안 내도 낼 돈을 이렇게 버릴 게 있어. 조심 좀 하고. 주차위반 딱지도 그래. 잠시 물건 내리는 것은 안 찍어. 

  그런 후 사장은 사무용 책상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는데 부장이 한마디 했어. 자주 했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한 번 이상은 있었어. 물론 사장이 돌아가고 난 후에 말이지. 

  - 제길 일을 하지 말라는 건지, 사정을 모르는 건지. 

  우리는 부장의 말에 공감했어. 이런저런 것 다 따지다가 보면 일을 할 수 없는 법이야. 그러나 과장이나 박기사가 냅다 밟을 때는, 인정하기 싫지만, 멀미 증세가 있는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어. 그러니 내가 빨리 달릴 수가 있겠어. 그때마다 나는 이정록 시인이 지은 시를 떠올렸어. 참 빨랐지 그 양반이라는 시였어.           

이전 04화 나의 공방일지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