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출근했을 때는 박기사가 부장을 상대로 막 떠드는 중이었어.
- 설에 영천 집에 갔는데 구십이 넘은 어머니가 아직도 힘이 장사라. 혼자 트랙터를 몰고 다니는 거야. 혼자서 농사도 짓고 소도 먹이고 그래. 그런데 이번에 집에 갔더니 소를 또 열 마리나 들여놓으려고 하는 거요. 이백만 원인가 들여서 축사도 지어놓고. 내가 성질이 나서 노인네 일 못하게 할라고 마구를 때리 뿌샀지. 그러고 오니 동생들은 잘했다고 하는데 그저께부터 어머니가 전화해도 안 받아요.
- 그래 어머니 생각해서 잘했네.
부장의 말에 우리는 얼핏 동의했어. 그것이 아들로 태어난 이상 최선의 말과 행동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할까. 부장은 내가 알기에 어머니를 극진히 떠받드는 효자의 역할에 충실했어. 지금껏 그는 부모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점이 전혀 없었거든. 한 번씩 아버지 이야기도 늘어놓았어. 그는 아마 아버지를 많이 닮은 듯했어. 농촌 태생이라 나물이나 버섯, 약초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었고, 몸으로 하는 일, 전기공사나 도배, 용접 등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거의 없었어. 그러나 아내와는 잘살지 못했어. 방앗간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벌어서 아파트를 사기도 하고, 해운대에 술집을 운영하기도 했고, 젊은 여자와 동남아 여행을 갔다가 들키기도 하는 등 바람을 피우기도 했거든. 술집이 망하면서 그는 아내와 위장이혼을 한 듯했는데 아들과 함께 살도록 아내에게 아파트를 주고 빚을 모두 떠안았고, 신용불량자로 날품팔이처럼 칠 년을 살았어. 그러나 그것으로 마지막이었어.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방앗간을 하고 있었지만 합칠 마음이 없어 보였어. 나이 든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처럼, 그 시절,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살았지만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나는 못 가네, 나는 지금이 좋아, 이런 말을 하는 듯했지.
- 마구를 새로 지어놨다고? 그걸 큰아들이 와서 때리 부쉈으니 서운할 만도 하네.
손톱을 깎던 과장이 돋보기를 벗으며 말했어. 그렇다고 부술 일은 아니었는데, 몇 번이나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어. 효도라고 이름을 짓든 사랑이라고 이름을 짓든, 치사랑이든 내리사랑이든, 그 사람이 원하는 걸 해주는 게 제일 좋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말이지.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박기사는 상황을 전해주었어. 말이 없이 무거운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 늘 화제를 제공해서 어색함을 깨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 마을 이장이 친구인데 한번 어머니한테 가보라고 했더니 괜찮다고 하네. 내가 이번 주에 한 번 갔다 와야겠어.
그때 사장 아들 어니스트가 부르는 것이 멀리 보였어. 작업장과 계산대 간 거리가 좀 먼 편이라 잘 안 들리기도 했지만 입에 손을 댄 모습을 보면 확실했어.
- 예!
박기사는 소리를 지르며 아주 빠르게 달려갔어. 어떻게, 그것을 보고 금방 달려가다니, 내게는 놀라움이었어. 육십이 넘은 거국의 남자가 귀엽게 보인 것도 그랬어. 감탄하는 사이, 옆에서 부장이 나에게 한마디 했어.
- 가만히 보면 넌 선임하사 같아.
뭐, 나는 푸들이 되고픈 마음은 없었어. 막내라고 오후 네 시 무렵, 참 시간이면 컵라면을 끓이는 것도 내키지 않았어. 어떻게 제일 힘든 게 막내야? 많은 급여를 받는 사람들이 더 힘들어야지. 나는 나이나 서열에 따라 처신하는 것이 정해져 있는 사회에 불만이 많았어. 나이 들어 어른 대접 받으려고 하는 것도 좋아 보이지 않았어. 스스로 버스의 좌석을 젊은이에게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어. 얼마나 무례한 짓인가. 나는 세상에 불만이 많은 자다, 혼자 속으로 중얼거려. 말이 없지만 수만 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 나. 나는 당신이 아는 것처럼 온순한 사람이 아니야. 불평불만 세력 중의 하나였지만 말을 하지 않고 살았던 거지. 이게 파시즘이 아니고 뭐가 파시즘이야. 나는 사실 파시즘이 무슨 말인지 설명하기 힘들지만 내가 디디고 있는 땅에 솟아 있는 것들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지. 한번 시작하니 멈추기가 어렵네. 다시 속으로 중얼중얼. 백날 제도만 민주적으로 바꾸면 뭐 해. 대통령만 바뀌면 뭐 해. 이제는 이 사회가 바뀌어야 해. 나이가 적으나 많으나, 직급이 높으나 낮으나 존중이 없잖아. 예의를 지키며 살자구. 인간 대 인간으로.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고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개개의 인간으로서의 존중. 민주화 교육받은 세대의 후유증이었을까. 뭔가 머릿속에 정리된 것은 아니고 횡설수설에 불과했지만 혼자 중얼거려 보는 거지. 아무튼 나는 과거를 보존하려는 다수 속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가난한 자식이 그렇듯 외치는 거지.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거야. 좀 떠들고 보니 우습네.
아무튼 박 기사는 최대한 어니스트에게 충실해 보였어. 내가 보기에 육십 넘은 영감이 신병처럼 어니스트에게 깍듯한 것이 우스워 보였지만 일을 그만두고 나갈 때까지 그런 태도를 유지했어. 잔소리를 들어도 앞에서는 마음 상한 것을 드러내지 않고 일했으니까. 이것이 미덕이라고 우리는 배웠을까. 나이 어린 사장 아들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도 우스워 보였어. 그것을 볼 때마다 나는 어니스트가 한 말을 생각했어.
- 다른 곳은 모르지만, 여기는 나이순이 아닙니다. 짬밥 순입니다. (능력 순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렇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그런데 그렇게 힘차게 대답하고 뛰어나갔던 박기사가 돌아오기 무섭게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불평하는 거였어.
- 아유 더러워서 그만둬야지.
그전에도 박기사는 몇 번이나 그만둔다고 말하기는 했어. 그때마다 친하게 지내던 부장은 말렸고.
- 아, 쟤 동생은 더 해. 지금도 뭐라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지만 동생은 더 하다니까. 너 참 같이 일 안 해서 모르겠네.
말하던 부장이 눈이 휘둥그레진 나를 보았어. 그러면 부장도 알고 있었지만 말을 하지 않을 뿐이라는 이야기였어. 그는 알고 있지만 침묵하고 있을 따름이었어. 침묵하는 다수.
- 저야 뭐 압니까? 지금 그만두시면 퇴직금은 받습니까?
- 받아야지.